상단여백
HOME 생활 칼럼
끝까지 자신을 지켜준 창성이에게 감사를 배웠다내 삶의 감사 ⑷
박연숙 | 승인 2022.04.14 16:16
▲ 서울대학교 아동병원 집중치료센터(사진은 본 칼럼과 무관함을 밝힌다) ⓒ서울대학교 아동병원

그렇게 자주 병원에 드나들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큰아들 창성이에게 이상이 있다는 것을 임신 8개월에 알게 된 후로 병원은 아주 친숙한 곳이 되었다. 누구나 꺼리는 곳, 하지만 그곳에 배움이 있었다는 것을 세월이 흐른 지금 깨닫는다.

창성이가 태어났을 때 건강 상태는 아주 좋지 않았지만, 임신 중에 보였던 복수는 다 빠진 상태였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살 희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창성이가 있던 곳은 신생아 집중치료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산소호흡기와 여러 가지 줄을 달고 두 달이 넘게 있었다.

집중치료실 앞의 분위기는 항상 무거웠다. 하루에 두 번 면회가 가능한 아기들을 보기 위해 부모들은 마음 졸이며 집중치료실 앞을 서성거린다. 예정일보다 훨씬 일찍 나온 이른둥이들, 이 모습 저 모습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아기들을 잠깐씩 바라보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하는 부모들의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맞은편에서 건강한 아기들을 면회하는 부모들을 가끔 보기도 하는데 부러운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집중치료실에서 나와 수술실로 향하는 아기들을 향해서는 응원의 눈길을 보내곤 한다.

기다림 끝에 시간이 되면 가운을 입고 소독을 한 후 아기들에게 달려간다. 이것저것 담당 간호사들에게 묻기도 하고, 아기들에게 속삭이기도 하고, 애써 눈물을 참으며 기도의 손을 모으기도 한다. 함께 있고픈 마음에,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20분의 면회 시간이 끝나면 다시 만날 기약을 하고 돌아온다. 생명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 소중한 줄 몰랐다. 손잡고 싶고 안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안타까움이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부모들의 눈가에 눈물로 맺혀있다.

집중치료실 안은 생명의 몸부림으로 열기가 가득하다. 각종 기기의 소음과 간호사들의 분주한 손놀림이 치료실에 생기를 더한다.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큐베이터 안에서 삶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아기들의 모습이 신성해 보인다. 그 울음소리에 담긴 고통과 아픔을 대신할 순 없지만 하루속히 건강한 모습으로 나와서 사랑하는 부모의 품에 안기게 되길 기도할 뿐이다.

시부모님도 자주 창성이를 면회하러 오셨다. 아픈 창성이를 위해 오실 때마다 기도해 주신 시부모님이 정말 고마웠다. 나이 많은 며느리 탓이라 생각할 법도 한데 그런 마음은 읽어 볼 수 없고 힘내라고 격려해 주시고 여러 가지로 위로가 되어주셨다. 지인들에게 알려서 기도도 부탁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렇게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 분들이 계셔서 지금의 창성이와 내가 있는 것 같다. 시부모님이 멀리 지방으로 이사해야 해서 자주 오시기 힘들어졌을 때,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창성이를 한 번 안아보실 수 있도록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간호사의 배려로 창성이가 인큐베이터에서 나와 할머니 품에 안기는 순간 창성이는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면회하러 가면 항상 자고 있던 창성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머니를 바라보았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도 그 감격을 기억하신다고 한다.

제왕절개 수술 뒤 4인실에서 일주일 정도 있었는데 그동안 같은 병실의 산모들이 여러 번 바뀌었다. 앞 침대의 아기 아빠가 아기를 보고 와서 “우리 아기는 공부 쪽은 아닌 것 같아. 잠만 자네”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 함께 웃었다. 옆 침대의 젊은 산모는 아기를 보고 와서 “우씨. 댔다 못생겼어”라고 투덜거렸다.

그들의 불평마저도 부러웠다. 건강하기만 하다면 좋을 텐데…. 산소호흡기를 끼고 사투를 벌이는 창성이를 생각하니 건강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다. 병원에 있으면 건강한 사람이 제일 부럽다. 그러다가 막상 건강해지면 또 다른 바람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출산 후 일주일 정도 지나서 나는 혼자 퇴원했다. 그리고 특별히 산후조리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매일 병원에 출퇴근했다. 혼자 남겨진 창성이 생각에 하루 두 번, 20분간의 짧은 면회 시간이지만 놓칠 수 없었다. 언제쯤 함께 올 수 있으려나, 집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길 매일 바랐지만 여러 가지 검사와 수술, 병원 밖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두 달이 넘게 걸렸다.

먼저 퇴원하는 아기들에게 축하의 마음도 전하고, 나 대신 창성이를 돌보느라 수고하는 간호사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으로 병원을 오가는 동안 겨울이 깊어졌었다. 찬바람을 피하느라 꽁꽁 싸매고 다녔지만 병원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생에 대한 열망은 나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구나.

거의 매일 ‘코드블루’ 방송 소리가 병원에 울려 퍼진다. 차마 놓을 수 없는 손을 놓고 떠나야만 하는 이들에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보호자와 의료진들을 생각해본다. 창성이가 언제까지 내 곁에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나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함께함의 소중함을 날마다 기억하며 감사하면서.

박연숙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연숙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