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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휴먼(Heumann)의 ‘휴먼’(Human) 되기날라리 기자의 [기자수첩]
정리연 | 승인 2022.04.15 15:35

“너 아프니?”

친구와 함께 사탕을 사러 가던 여자아이에게 지나가던 낯선 아이가 물었다.

“너 아파? 아. 프. 냐. 고!”

8살 아이는 움츠러들었고 혼란스러웠다. 어딘가로 숨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자신이 아프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매일매일 즐거운 보통의 어린아이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았다. 스스로 아픈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낯선 아이의 물음에 그런 확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차별을 누구 만드나

‘나는 아픈 사람인가?’

물론 다르긴 했다. 형제나 친구들과 달리 어떤 학교에도 갈 수 없었다.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게 많았다. 계단을 걸어 올라갈 수도 없고, 문을 열 수도, 길을 건너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다르다는 걸 항상 알고 있었지만 온 세상이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건 몰랐다. ‘사람들은 내가 세상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주디스 휴먼이 8살 때 겪은 이야기다. 이 사건을 통해 주디는 자신의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와 사람들의 시선을 인식한 거 같다. 유대교 회당은 계단이 있어도 아빠가 안아 올려주면 되니까 들어갈 수 있는데, 왜 학교는 그럴 수 없는 거지? 누군가가 들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 다른 이유, 그 진실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한 주디.

이 책에는 주디가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부딪쳤던 평생의 사건들 중 몇 가지만이 기록되어 있겠지만, 이 몇 가지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배제와 혐오, 차별을 겪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비장애인 학생들과 경쟁해 고등학교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해서 단상에 올라 상을 받는 게 당연한 관례였는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학교 교장은 그렇게 하기를 거부했다.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교사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신체검사에서 탈락했다. 그저 2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던 주디는 이에 항의해서 결국 교사로 인정을 받게 되었지만, 굴욕적이고 모욕적인 사회의 대응과 처리 방식은 비장애인이라면 겪지 않았을 것이다. 교자 자격 승인을 위한 신체검사에서 의사가 의사는 휠체어를 탄 주디에게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어떻게 보는지, 보조 기구를 사용해서 걷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이 얼마나 치욕적이고 불쾌한가! 이런 부당하고 모욕적인 대우를 받아도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애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결국엔 미국에서 장애인법에 서명하게 한 주디와 동료들의 시위, 조직과 연대. 주디의 말처럼 이는 함께 하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지,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디에서 시작한 하나의 작은 파동이 얼마나 큰 파도를 일으켰나!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20여 년간 투쟁했던 주디와 동료들의 모습은 정말 혁명적이면서 놀라울 뿐이다.

중심 거리를 휠체어로 막기도 하고 연방 정부 건물 점거 농성을 했다. 건물이 봉쇄되고 전력이 끊겼을 때는 유리창을 통해 수어로 자신들의 상황을 알렸다. 더 많은 언론과 사람들이 알기 시작했다. 더 많이 연대하고 지지하기 시작했다. 다른 큰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뿐이니까.

83개의 대리석 계단, 하룻밤 동안 기어 올라갔다

▲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의회의사당 앞 83개의 대리석 계단을 기어 올라가고 있는 장애인들 ⓒGetty Image

그 후로도 한참 후, 1990년 3월 주디와 동료들은 워싱턴 DC 의회의사당 앞에 있었다. 중앙 출입구까지 83개의 대리석 계단이 있었다. 그들은 휠체어에서 내리고, 목발을 던지고, 다른 이동 보조 장치를 내버려 둔 채 계단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한 사람씩 두 번째, 세 번째 계단으로 몸을 끌고 올라갔다. 누군가는 등을 대고 또 어떤 이는 배를 댄 채로 움직였다.

“누구도 당신이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요.”

뇌성마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레스토랑 이용을 거부당한 제니퍼는 팔꿈치와 무릎을 이용해 계단을 기어올랐다. 시위대가 계단 위까지 올라가는 데 하룻밤이 걸렸다. 모두 60명이 넘었다. 4개월 뒤 미국 하원은 마침내 미국장애인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1990년 7월 26일, 태양이 떠올랐고, 하늘은 푸르렀고, 잎이 무성한 찬란한 여름날이었다.

“우리는 부끄러운 배제의 벽을 마침내 무너뜨릴 것입니다.”

백악관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미국장애인법에 서명했다.

마침내 시간이 왔다. 서부 연안에서 동부 연안에 이르기까지, 공화당과 민주당 소속의 대통령 다섯 명을 거치며 거의 20년 가까이 투쟁한 끝에 강력하고 포괄적인 시민권법을 만들어냈다.

겉으로 난 상처와 피, 땀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내면의 상처와 좌절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때마다 그들을 일으킨 힘은 뭐였을까.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거 같다. 사회의 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은, 주디스 휴먼의 ‘휴먼’되기, 그뿐이었다. 혁명의 시작이었고 존재하게 하는 힘이었다.

『주디스 휴먼』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과 사건을 전부 나열할 수는 없지만, 다른 누군가도 읽으면서 나처럼 분노했다가 안심했다가 억울했다가 슬퍼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핫이슈로 떠오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활동들을 떠올리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토록 외치는 한국에서의 ‘휴먼’되기에 마음과 손을 모으면 좋겠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사랑과 평화를 꿈꾸는 자들이 많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는 난 사회 운동가도, 장애인 활동가도, 영향력 있는 사람도 아니다. 평범한 시민이다. 전에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동경하기는 했지만,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냥 묵묵히 있었다. 지금도 어떤 능력이나 상항이 나아진 건 아니지만, 생각이나 마음은 좀 달라진 거 같다. 꼭 나서서 하지 않더라도 내 자리에서 작은 날갯짓이 될 수 있는 건 뭘까, ‘이거라면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대답을 얻을 수 있기를 고민해본다. 누군가 얘기했듯이 “혁명은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그 세계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니까!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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