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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가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배타성의 의미칼 바르트의 빛의 론 ⑶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2.04.16 15:59
▲ 바르트가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배타성은 근본주의로 회귀가 아니다. ⓒGetty Image

참 증인이시고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

바르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낮추는 참 하나님(CDⅣ/1)인 동시에 높이 올려져 하나님과의 사귐 속에 들어간 참 인간(CDⅣ/2)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이 두 방향의 운동은 각각 그의 제사장과 왕의 직무와 상응하고 포괄한다. 화해론의 “구체적인 내용”과 “내적인 변증법”을 이룬다(CDⅣ/3-1, 4,5).

그러나 그리스도의 화해의 사역은 또한 세 번째, 혹은 형식적인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계시’의 특징을 지니는 그리스도의 예언자의 직무이다(CDⅣ/3-1). 이것은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이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안에서 일어난 화해의 사역을 어떤 자 혹은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유일한 진리로서 표현하고 드러내고, 계시한다는 것을 말한다(CDⅣ/3-1, 8).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화해’를 이렇게 정의한다:

“화해는 그 자체로 말이 없는, 어둡고 닫혀진 사건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그것은 말을 하는, 밝게 열려진 사건이다. 그것은 단번에 그 자체를 객관화하고, 드러내고 알리면서 사건이 된다”(CDⅣ/3-1, 9).

바르트에 의하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증거”(CDⅣ/3-1, 11)이다. 그는 생명의 진리와 빛(요 1:4이하)으로서 화해의 사역을 성취하는 그 자신의 존재와 행동을 선언하고 알리는 하나님의 참 증인, 말씀 그 자체이다. 바르트는 “가장 단순하지만 그러나 매우 어려운 그리스도론적 진술”이라고 말한바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시다”는 진술과 함께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존재방식과 인간의 존재방식으로, 그러나 위격의 연합 가운데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이것은 하나님과 세계의 공존의 기초와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 생명은 형식적이고 내용적인 측면을 갖는다.

형식적인 것은 그가 “참 하나님과 참 인간으로서, 주님과 종으로서, 그의 존재의 행위의 모든 특이성 안에서 살아 계시다는 것이다”(CDⅣ/3-1, 42). 내용적인 것은 그의 생명이 화해, 인간의 모순의 극복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구원의 역사이다. 전체로서의 역사를 결정하고 모든 특별한 역사들을 포함하는 그것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관계하는 구원의 도래와 사건을 나타낸다”(Ibid.). 이것이 바로 바르트가 말하는 “중보자의 영광”이다. 하나님과 인간으로서 화해를 이루는 이 생명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에 대한 참 증인”(CDⅣ/3-1, 46)이 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그의 부활을 통해서 그가 주님과 종이라는 것과 그러한 분으로서 그가 성취한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화해를 확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다고 말할 때, 이것은 부활하신 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이 부활의 사신, 즉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다는 사실은 그 자신만이 그 자신에 대한 참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오직 그 자신만이 독단적으로 그 자신과 그의 생명에 대한 지식의 근거를 주고, 야기하고, 만들고, 실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에 대한 “모든 지식과, 그러므로 모든 신앙과 신앙고백을 위엄 있게 선행한다”는 것을 뜻한다(CDⅣ/3-1, 45). 그래서 바르트는 화해론 제3권의 주제는 『교회 교의학』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그 자신에 대한 참 증인”인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우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밖을 향한 운동의 현상과 열매들에 관심하기보다는 특징적으로 근원 자체, 곧 그의 예언자적 직무에 있어서 그 그리스도론적 근거에 관심을 갖는다.(1)

생명의 빛이며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 예수 그리스도

바르트는 ‘화해론’ 제3권을 시작하면서 맨 처음에 전체의 주제로서 바르멘 신학선언을 진술한다:

“성서의 증거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고, 살든지 죽든지 그것만을 신뢰하고 그것에만 순종해야 한다”(CDⅣ/3-1, 3).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사역에 대해 말하는 ‘화해론’ 제3권에서 모든 자연신학을 배제한다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선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분명하게 바르트의 그리스도론적 집중을 대하게 된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가 “빛의 근원”(CDⅣ/3-1, 46)이고, 세상의 유일한 ‘빛’이라는 진술이 의심과 반대를 불러일으키는 자극적이고 거북한 진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그밖에 더 이상 아무 것도 말해질 수 없고 말해져서도 안 된다는 확신 속에서 이를 논의한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 유일무이한 생명의 빛, 단 하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는 자유”이기 때문이다(CDⅣ/3-1, 90).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 이것은 결코 다른 어느 것에 적용될 수 없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진술이 그 고백을 하는 사람이나 교회 혹은 기독교의 절대성을 합리화하는데 사용된다면,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술은 다른 종교들 위에 있는 기독교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독단적인 주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론적 진술이다.

따라서 바르트에 의하면 문제의 진술의 배타성은 단지 기독교적이 아닌 예언들과 세상의 빛들만을 제한하고 상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또한 기독교인들과 교회의 예언, 가르침과 교리들도 마찬가지로 제한하고 상대화시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어떤 절대 권위와 함께 그들 자신의 예언, 교리와 신념으로 결코 맞설 수 없는 분이다”(CDⅣ/3-1, 91). 그 배타적인 주장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과 경쟁하는 다른 모든 말들의 무효성에 관해 말하는 것은 그것이 “우선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독교의 영역에서 타당하기 때문에 타당할 뿐이다”(Ibid.). 그러므로 바르트가 여기서 주목하는 말은 세계종교들 가운데 있는 기독교의 교리나 가르침, 이런 저런 교회의 선포나 고백, 있는 그대로의 성서의 말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본질을 이루는 말씀” 그 자체이다(CDⅣ/3-1, 108).

바르트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배타성에 대하여 분명히 한 뒤에, 성서와 교회와 세상에 다른 참된 말들, 빛들과 계시들이 있다는 것을 시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라는 것은 성서, 교회와 세상 안에 그들 나름으로 주목할 만한 다른 말들, 현실적인 다른 빛들과 다른 계시들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성서와 교회 밖에서 말해진 모든 말들이 거짓 예언의 말이고, 그러므로 가치가 없고, 헛되고 타락한 것들이라거나, 세상 안에서 나타나고 빛나는 모든 빛들은 그 자체로 거짓 빛들이라는 것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계시들이 필연적으로 거짓 계시들이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진술은 단순히 다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말씀이며, 오직 그분만이 하나님의 빛이고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이다”(CDⅣ/3-1, 97).

그러므로 제기되는 문제는 다른 모든 참된 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말들인가를 분석하고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말들이 유일한 참된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되는가를 밝히는 것이다(CDⅣ/3-1, 110).

바르트는 우선 어떤 말들이 참된 말들일 수 있는가를 판별하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과 가능한 한 정확히 일치하고 상응해야 한다.” 둘째, “있는 그대로의 이 말씀을 삭제하거나 혹은 첨가, 변경하지 않고서 증거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 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참여하고 상응하고, 증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에, 그 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도록 그것들을 정하고, 일깨우고, 불렀다”는 것이 분명하게 말해져야 한다(CDⅣ/3-1, 111). 성서와 교회의 선포는, 그 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해진 말씀과 “객관적으로 일치하고 상응하고”, “단지 그 말씀을 증거하고”, “생명의 빛이 그 말들 안에서 빛나기 때문에” 진리이고, 바르트는 이런 점에서 성서와 교회의 선포들은 “하늘나라의 비유들”이 된다고 말한다(CDⅣ/3-1, 114).(2)

하늘나라의 비유들은 아주 평범한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 비유를 말하는 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 말들은 완전히 변형되고, 하늘나라의 직유가 된다. 그래서 “신약성서의 비유들은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 곁에, 또한 그 말씀에 의해 피조되고 결정되고 정확히 그 말씀에 상응하고, 완전히 그 말씀을 섬기고, 그러므로 그 말씀의 능력과 권위를 향유하는 다른 참된 말들이 있을 수 있는 질서의 원형과 같은 것이다”(CDⅣ/3-1, 113).

미주

(미주 1) J. Thompson, Christ in Perspective, 111.

(미주 2) 바르트는 여기서 『교회 교의학』 CDⅠ/1과 CDⅠ/2에서 논의했던 하나님의 말씀의 삼중적 형태론을 상기시킨다. 성서와 교회의 선포가 참되다면, 그것은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과 경쟁하거나, 그것을 보충하려고 하거나 그 말씀보다 우월한 것이 될 수 없다. 그 유일한 말씀과 그 말들의 관계는 섬김의 관계이고, 그 말들이 이런 관계 속에서 말해졌기 때문에, 그 말들은 가치를 갖고 참된 말들이다(CDⅣ/3-1, 114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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