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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델린 문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론메델린의 해방자 예수 (2)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2.04.17 14:14
▲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 이전에 메델린 문서의 그리스도론이 있었다. ⓒGetty Image

콜롬비아의 메델린에서 개최되었던 제2차 CELAM 회의는 라틴아메리카 신학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메델린 회의는 기금까지의 라틴아메리카 신학의 유럽신학의 의존성을 극복하는 역사적 동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철학에 의지하던 신학적 전개를 사회학으로 전환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메델린 회의는 새로운 목회행위 실천의 탄생을 보여주는 회의로 기억될 것이다. 메델린 이후의 라틴아메리카 신학은 기존의 신학에서 탈피하여 차츰 고유한 모습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페르난도 타피아 미란다(Fernando Tapia Miranda)는 메델린 회의의 결과로 나타난 라틴 아메리카 신학의 특징을 몇 가지로 소개한다.(1)

그에 의하면 메델린 회의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비추어(말씀성찰) 현실을 이해하고(관찰) 목회적 행위실천(행동)”의 전형적인 라틴아메리카 목회실천을 확정지었다. 그 뿐만 아니라 메델린 회의는 라틴아메리카 교회로 하여금 가난한 자들에 대한 선택에서부터 출발하는 성서읽기와 신학하기, 해방신학의 발생, 기초공동체를 비롯한 민중교회의 형성, 해방적 교육과 교회의 예언적 행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메델린 회의는 라틴아메리카 교회로 하여금 수많은 순교자들과 고난 받는 이들을 만들어 냄으로서 수난의 길을 걷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메델린 회의는 라틴아메리카 교회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나는 이번 글에서 메델린 문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론을 분석함으로서 라틴아메리카의 그리스도론의 특징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메델린 문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어떤 그리스도인가?

파올로 파리제(Paolo Parise)는 메델린 문서에서 확고한 형태의 그리스도론은 나타나지 않다고 주장한다. 메델린 문서는 라틴아메리카 교회의 목회방향을 보여주는 특정한 형태 그리고 독립적인 항목으로서 그리스도론을 전개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올로 파리제는 메델린 문서는 줄기차게 그리고 일관성을 가지고 특징적인 그리스도론을 그의 문서 전체를 통하여 전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1. 메델린 문서는 전체적인 전개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실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계획의 일관성을 보여준다.(2) 하나님의 계획은 그의 구원 사건을 통하여 보여지고 있는데 구원은 인간 생명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발생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구원은 이 세계 안에서 시작되며 그리스도의 최종적인 승리로 인한 역사의 종말에서 완성된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발전과 정복, 그리고 세계의 변화 등은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현존의 전제이며 부분이다.

2. 메델린 문서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된 인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인간의 존엄성의 출발점이며 종착점이기도 한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존엄성의 궁극적인 근거이며 진리 자체이다.(미주 3) 이 점에서 메델린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따르고 있다. (Gaudium et spes, 22)

3. 메델린 문서에서 주목할 것은 구원에 대한 개념의 전개이다. 메델린 문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해방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Salvation in Christ Jesus as Liberation).(4) 해방으로서의 구원의 개념은 매우 성서적임에도 불구하고 메델린 회의 이후 마치 그것이 라틴아메리카의 고유한 이론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것은 아마도 “라틴아메리카의 목회실천의 출발점은 불의한 제도와 사회의 결과로서 대 다수의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이 당하고 있는 억압과 가난으로 얼룩져 있는 비참한 라틴아메리카 현실이 되어야 한다.”라는 메델린 문서의 선언에 기인할 것이다.(5)

4. 메델린의 그리스도는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현존하는 가난한 그리스도”이다. 메델린 문서는 “교회의 가난” 부분의 7항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한 것뿐만 아니라 ‘부유한 자이면서도 스스로 가난한 자’가 되셔서 가난하게 사셨고 그의 선포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가난의 상징으로서 교회를 세우셨다.”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말씀이 단지 사람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말씀은 가난한 자가 되었다.”

5. 예수의 사역의 중심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주제는 메델린 문서에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않지만 그러나 확고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6) 하나님의 나라는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고려되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미래적인 측면이 강하나 그러나 분명하게 현재에서 시작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고난의 사역 안에서 그리스도와 동일시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온전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한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헌신과 노력은 계속되어져야한다.

6. 메델린 문서는 예수의 사역은 복음선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가 수행해야 할 핵심적인 사역이다. 교회의 사역의 중심은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에 있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의 기쁜 소식 자체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현실은 이러한 예수의 사역의 정당성을 확고히 해주고 있다.(7)

메델린 문서와 라틴아메리카 신학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신학자들은  메델린 문서가 직접적으로 그리스도론을 전개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그리스도론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메델린 문서에서 보이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을 중요시 여긴다.

이들 신학자들 가운데 존 소브리노(Jon Sobrino)를 언급할 수 있다. 소브리노는 그리스도의 “형상”의 전망으로부터 메델린 문서의 그리스도를 해석한다. 소브리노는 라틴아메리카 가톨릭교회 내에서 전개되고 있는 왜곡된 그리스도에 대하여 비판한다.(8) 그는 라틴아메리카 가톨릭교회가 소홀히 취급했던 “해방자로서의 예수”를 회복한다. 그는 메델린 문서가 구원을 해방으로 이해하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9)

소브리노는 메델린 문서가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을 “무지, 배고픔 억압과 가난”으로 뒤 덮여 있는 대륙임을 지적하고 이러한 모든 악한 상황은 인간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불의와 증오의 결과라고 인정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왜냐하면 메델린 문서의 지적은 해방으로서의 구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가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해방으로서의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 만을 주장했던 라틴아메리카 가톨릭교회의 목회 사역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역은 단순한 ‘자비 베품’에 있지 않다. 그의 사역은 해방을 향한다.

소브리노는 메델린 문서에서 “편파성의 원리(principle of partiality)”를 발견한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가 됨으로서 가난한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우주성이 반드시 그의 ‘공정성(impartiality)’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반대로 성육신에 대한 신앙은 오히려 그의 ‘편파성’ 다시 말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선택적 행위’(편파성, partiality)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브리노는 메델린 문서가 라틴 아메리카 현실에서 파괴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형상’에 대하여 더 이상 깊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메델린 문서가 불의의 피해자 안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좀 더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음에 대하여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10)

이에 반해 구스타보 구띠에레스(Gustavo Gutierrez)는 메델린 문서의 ‘그리스도론’에 대하여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에 의하면 메델린 문서는 라틴아메리카의 그리스도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죄로부터의 해방자 예수’에 대하여 언급할 때 메델린 문서의 내용을 인용한다. 그는 메델린 문서는 죄를 개인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으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유용하다고 지적한다.

메델린 문서는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을 ‘죄의 상황’으로 이해하고 있다.(11) 그는 ‘죄의 상황’은 억압적인 구조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구조’로부터 비롯되는 역사적인 사회적 악을 의미한다. 그것은 ‘민중을 억압하고 노예로 삼는 사회적 악’을 의미한다. 죄는 ‘근본적인 소외’이다 그러므로 죄로부터의 해방은 정치적 해방을 의미한다.(12)

구스타보 구띠에레스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그리고 모든 죄의 결과로부터 급진적인 차원에서 우리를 해방한다. “근본적인 해방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는 이러한 의미에서 메델린 문서를 인용한다.

“때가 이르자 하나님은  인간들을 모든 죄악의 굴레와 노예 됨,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불의와 증오의 결과로서의 무지와 배고픔, 가난과 비참함 그리고 억압으로부터 해방하려고 그의 아들을 사람이 되게 하셨다.”(정의, 3항. 요 8:32~35과 비교해보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죄를 극복한다. 해방은 우리의 모든 기대와 상상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선물이다.(13)

구띠에레스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실현은 종말론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해방은 역사 안에서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이며 선물이다. 역사 안에서의 해방의 과정이 모든 억압과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의 죄악의 뿌리를 완벽하게 제거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함께 이루어진다.

그러나 역사적 해방 사건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의 성장과 도래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러기에 온전한 해방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정치와 역사 안에서 보이는 모든 해방적 행위는 하나님 나라의 성장을 의미하며 구원의 사역이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온전한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14)

바닐도 루이스 주뇨(Vanildo Luiz Zugno)는 라틴아메리카 그리스도론의 출발점을 역사적 예수에 대한 추구에서 발견한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적 예수로부터의 출발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메델린 문서가 “구원을 해방으로 이해”하는 것에 대하여 높게 평가한다. 구원을 해방으로 이해하는 것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경험하고 있는 가난의 현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결정적인 구원의 전제적인 실현을 의미한다.”(15)

바닐도 주뇨는 “메델린 문서는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서부터 출발하는 그리스도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것은 비참한 현실로부터의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의 그리스도론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뇨에 의하면 메델린 문서의 그리스도론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현존을 예배 안에서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의 증언 속에서 그리고 불의하게 소외되고 착취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안에서 발견하는 데 있다.(메델린 문서, 평화 3항)

주뇨에 의하면 메델린 문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현장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현장으로 이해한다. 가난한 삶의 현장은 그리스도 현존을 분별하는 가장 핵심적인 원리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가난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16)

까를로스 이그나시오 곤살레스(Carlos Ignacio Gonzalez)는 메델린 문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언급하기 위하여 시대의 징표들을 해석하고자 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메델린 문서에서 시대의 징표에 대한 해석을 분명하게 발견하지는 못하고 있다. 메델린 문서는 이에 대하여 산발적인 해석을 시도하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시대적 징표에 대한 해석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그나시오 곤살레스에게는 메델린 문서는 시대의 징표를 분별하고 해석함으로서 라틴아메리카의 그리스도론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한다.(17)

위에 언급한 수명의 라틴아메리카 신학자들의 메델린 문서에 대한 언급에서 드러났듯이 메델린 문서의 그리스도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해방적 그리스도론이다. 전통적인 가톨릭교회의 구원론과 그리스도론이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메델린 문서는 오늘의 상황에서 진정한 죄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메델린 문서는 죄는 가난하고 비참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 노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외면한 채 이해될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러한 진정한 죄에 대한 이해로부터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은 해방적 방향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메델린의 그리스도는 인간의 역사에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의 역사 안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 존재한다. 그것은 시대의 징조 속에서 해방의 구원이라는 구체적인 사역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역사 안에 현존하며 역사 안에서 활동하고 계신다. 메델린 문서가 말하는 그리스도는 해방자 예수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분이시다. 가난한 사람들을 해방하는 그리스도이다.

미주

(미주 1) Fernando Tapia Miranda, algunos frutos de la conferencia de Medellin a 50 anos de su realizacion(메델린 50년이 남긴 몇 가지 열매에 대하여), cuaderno de telogia, 2108년 4월.

(미주 2) 메델린 문서의 서론의 2, 4 그리고 5항, 정의 4항과 5항, 평신도 운동  8,9, 12항, 교회의 가난의 6항.

(미주 3) 메델린 문서, 서론 1 항, 정의 4항 교육 9항.

(미주 4) 메델린 문서에서 구원의 의미로 사용되는 ‘해방’은 모두 27차례 나타나며 그 중에 10 차례는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관련 속에서 언급되고 있다.

(미주 5) Paolo Parise, Cristologie delle Conferenze generali dell’episcopato dell’America Latina e Caraibi da Rio de Janeiro ad Aparecida, Roma: Pontificia Universidad Gregoriana 2010, 70.

(미주 6) 메델린 문서 정의  5항, 예식과 예배 2항, 사제들에 관하여 27항과 30항, 수도사들에 관하여 2, 3 그리고 4항.

(미주 7) 메델린 문서 정의 3항, 교육 6항, 청년 5항 민중 목회 12, 15항, 평신도 운동 14항, 사제에 관하여 28항 교회의 가난 9항.

(미주 8) Jon, Sobrino, Jesucristo liberador(해방자 예수), Madrid: Trotta 1991, 29~33.

(미주 9) 메델린 문서는 정의 3항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들을 모든 노예됨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육신으로 오셨다.”

(미주 10) 존 소브리노, Jesucristo liberador(해방자 예수), 36.

(미주 11) 메델린 문서, 평화 65항과 71항.

(미주 12) 그는 해방의 3가지 차원에 대하여 언급한다. 정치적 해방, 인간의 역사 안에서의 해방 그리고 죄로부터의 해방과 하나님과의 온전한 소통이 그것이다. Gutiérrez, Gustavo, Teología de la liberación. Perspectivas. Sígueme: Salamanca 1990, 224.

(미주 13) 같은 책, 223-224.

(미주 14) 같은 책, 225.

(미주 15) Vanildo Luiz. Zugno, “Sobre la cristología en los documentos de las cuatro conferencias”. 「Cadernos da ESTEF」 2009, 23~51.

(미주 16) 위의 책, 51.

(미주 17) Carlos Ignacio González, Seguir a Jesús en América Latina. Rutas de las cuatro Conferencias generales del Episcopado Latinoamericano. México D.F.: Obra Nacional de la Buena Prensa 2006, 30.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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