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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를 정죄하는 이들과의 논쟁은 엄밀한 성서 해석에서부터허호익 교수의 『동성애는 죄인가?』(개정증보판, 동연출판사, 2022) 서평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 승인 2022.04.20 15:27
서평을 쓴 이성훈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명일한움교회 담임목사이다.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M.Div. 학위를 취득했고 한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구약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허호익의 『동성애는 죄인가?-동성애에 대한 신학적․역사적 고찰』의 1판이 3쇄까지 출간된 데 이어, 이달 초에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었다. 소위 보수적으로 분류되는 교단에 속해 있으면서 동성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를 한국 개신교계에 제시하였다는 점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또 여전히 그 고민이 끝나지 않았고, 계속되는 고민과 연구의 흔적을 개정증보판 안에 담았다는 점은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본받을 만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초판과 개정증보판의 달라진 점

▲허호익 대전신대 은퇴교수

개정증보판의 구성은 1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1부는 동성애 비판에 사용된 성서 본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다루며, 2부는 대략 11세기 이후 역사 속에서 동성애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3부와 4부는 동성애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고, 5부는 현대 사회에서 동성애가 어떻게 대해지고 있는지를 다룬다. 6부는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가 동성애를 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개정증보판 머리말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1판에 비해 1부 ‘성서와 동성애’의 분량이 크게 늘었다. 사도 바울과 관련한 단락으로, 본래 3장에 있던 ‘바울의 악덕목록과 남색 및 탐색’은 내용에 맞게 4장으로 옮겨져 로마서 1장 뒤에 다루어진다. 또 1판에서는 한 문단에 그쳤던 유다서 1장에 관한 해석이 추가되었으며, 베드로후서 2장의 해석은 새롭게 추가되었다.

유다서 1장의 ‘다른 육체를 따르는 것’에 관한 문제와 베드로후서 2장의 ‘무법자들의 방탕한 행동’에 관한 문제는 동성애 논쟁에 있어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1판에는 제외되었던 듯 하다. 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유다서와 베드로후서 두 본문도 중요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해석이 개정증보판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유다서와 베드로후서의 해석이 새롭게 추가되었다면,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사건’에 대한 해석은 개정증보판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히브리어 ‘야다(ידע)’에 대한 설명이 확장되었고, 나그네 환대에 관한 설명도 더 보충되었다. ‘소돔과 고모라 사건’을 처음으로 동성애 사건으로 규정한 유대인 철학자 필로(Philo, 기원전 35-기원후 45)의 해석도 1판에 비해 더욱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 책은 한국 개신교계가 동성애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자료이다. 저자가 상당히 많은 정보를 책 안에 담아놓았기 때문에 동성애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이 책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내용 대부분이 정보의 나열이기 때문에 생기는 아쉬움도 있고, 저자가 개정증보판을 내며 가장 힘쓰고 있는 성서 해석의 부분에서도 아쉬움은 있다.

동성애 문제가 교회의 큰 화두로 놓여있는 지금 시대에 이 책의 가치는 상당히 높다고 평가한다. 이 책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하기에, 칭찬을 늘어놓기보다는 오히려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사회 현상에 관해 다룬 부분보다는, 모든 신학의 근간이 되는 성서 해석 문제를 다룬 1부에 대해서만 평해보려고 한다.

고정 관념에 대한 비판이 먼저

우선 저자는 성서 해석에 있어서 성서가 전하려고 하는 핵심에 집중한다.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사건’과 이와 거의 유사한 형태인 사사기의 ‘기브아 사건’은 나그네를 향한 환대와 배타적 폭력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올바른 해석이다. 두 사건의 핵심이 ‘나그네 환대’에 관해 다루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독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서는 그 사건을 다룸에 있어서 ‘동성을 향한 성적 폭력’을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동성’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점이다. 이는 제1부 4장 ‘신약성서와 동성애’에도 잘 나타난다. 이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약간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느낌도 없잖아 있지만, 그럼에도 독자들이 ‘폭력’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폭력’보다는 ‘동성’에 집중한다. 이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남성이 상대 남성에게 굴욕적인 폭력을 가했다는 점이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이 같고, 성서에 나타난 표현이 이 둘의 성관계를 암시할 수 있다는 점만 바라본다. 이들은 자신의 고정관념을 전제한 상태에서 성서를 바라보기 때문에 성서의 핵심을 왜곡시킨다.

실제로 이 책의 초판이 발행되었을 때, 소위 보수 교단 신학교의 한 교수는 이 책에 대한 반박 서평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본문은 분명히 ‘동성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적었다. 그는 이 책을 반박하면서 이에 대한 비판 근거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저 저자의 해석은 소수 학자의 의견일 뿐이며, ‘성서에는 동성애가 잘못된 행태라고 나타나 있다’라는 말만 한다.

저자가 ‘동성을 향한 성적 폭력’이 상대를 가장 수치스럽게 만드는 폭력의 형태였음을 밝히고 있음에도 이런 반박이 나온다는 점을 본다면, 저자가 먼저 해야 할 작업은 이들의 고정관념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또 성서에 대한 더 세부적인 해석 작업이 수행되어야 한다. 이들의 고정관념이 개입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해석 작업이 불가결하다. 성서가 ‘동성을 향한 성적 폭력’의 문제를 왜 소재로 삼고 있는지, 이것이 어떤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밝힐 필요가 있다. 

‘소돔과 고모라 사건’과 ‘기브아 사건’이 초기 민담 형태 그대로 전해졌기에 고대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지, 전승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가나안 정착 시대의 현상을 반영하게 되었는지, 왕정 시대에 발생한 문제가 포함되었는지에 대한 주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앞서와 같이 아무런 해석도 없으면서 자신의 고정관념을 성서 해석의 도구로 삼아, ‘성서는 동성애를 폭력이라 말한다’라고 하는 한심한 반박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 허호익 교수의 『동성애는 죄인가』가 개정증보판을 내고 더욱 풍부한 해석을 담았다. ⓒ동연출판사

성서 책들의 구체적인 시대상에 대한 언급

같은 맥락에서 성서 해석에 있어서 본문이 어느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제1부 3장은 레위기의 성결법전에 나타난 성적 문제와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데, 성결법전의 형성 시기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상당히 모호해 보인다. 이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구약성서 본문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도 한데, 특히 1부 3장은 독자에게 혼란을 줄 요소가 많다.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여전히 오경을 모세가 기록했다고 말한다. 오경을 모세가 기록했을 경우, 레위기의 성결법전은 출애굽 당시 시내산에서 받은 법률이 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저지를 범죄를 예지하셨고, 예지를 바탕으로 법을 만들어주셨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그대로 기록한 책이 오경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레위기에 나타난 동성애 문제를 비판적으로 볼 가능성은 없어진다. 하나님 예지의 산물이며 명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오경은 예언서보다 후대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신학적으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레위기의 법은 하나님께서 예지하신 산물이 아니라 가나안 정착 이후, 또는 왕정 시대, 더 나아가서는 바벨론 포로 후기의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가 이런 최근의 성서신학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점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저자의 글 속에서 성결법전이 가나안 정착 이후의 상황을 담고 있다는 늬앙스를 발견할 수 있기에, 이를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또 이후에 다뤄지고 있는 왕정 시대의 성전 창기 문제까지 생각해본다면, 성결법전이 왕정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이야기인지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성서 본문의 해석을 다루려면, 특히나 동성애 문제와 같은 사회 현상을 다루려면, 성서가 언제 기록되었고, 어떤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확실한 생각이 바탕에 놓여야만 한다. 이 책에는 그러한 점이 상당히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만약 저자의 확고한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이 책에서 적절히 표현되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

이 점이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예지와 명령을 저자가 거부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또 성서가 왜 동성 간의 폭력적 성행위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지, 수많은 문란한 성행위를 왜 죄악으로 규정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그저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고,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었기 때문에 법에 대한 적용도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 외에는 도출해 낼 수 없다.

시대상을 담은 해석

▲이성훈 목사

마지막으로 저자가 이야기하는 대로 지금 시대는 상황이 바뀌었다는 면에서 보았을 때, 이 책에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이후로 동성애를 죄악으로 규정하는데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 것은 출산의 문제이다. 동성애자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며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는 이들이라는 점이 계속해서 지적되어 왔다.

지금 시대에 있어서 출산하지 못하는 사람은 죄인인가? 창세기 1장 28절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또는 그 복을 받지 못한 존재들인가? 최근 이성애자들 간에도 난임의 문제가 커지고 있다. 결혼 연령이 높아져 감에 따라 난임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난임이 아니더라도 지금 시대 속에서 아이를 갖는 일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최근의 젊은 부부 중에는 자녀 계획을 갖지 않는 이들도 많다. 대부분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애초에 결혼을 안 하는 분위기도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들을 모두 죄인으로 규정해야 하는가? 아무리 어려워도 자녀를 둘, 셋씩 갖는 이들만 하나님의 명령을 잘 수행한 이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동성애 문제를 다룰 때 출산의 문제가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면, 지금 시대에 있어서 출산의 명령과 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다루어야만 한다. 최소한 창세기 1장 28절에 대한 해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동성애를 비판하는 이들은 여전히 동성애자들을 향해 출산할 수 없는, 단지 성적인 관계만을 추구하는 이들이란 비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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