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네 자리에서 일어나라부활을 체험할 때(로마서 6:11-14)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4.24 15:19
▲ 부활은 자리가 바뀌는 것이다. ⓒGetty Image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성서 일과에 따른 이번 주간의 말씀은 에스겔 11장 14-20절, 시편 118편 14-29절과 133편, 요한복음 3장 1-15절, 로마서 6장 3-14절입니다. 시편 118편이 종려주일부터 3주간 계속 선정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의 구원과 부활 신앙에 적합한 본문으로 판단되었던 것 같습니다.

에스겔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지금은 비록 바벨론에 포로로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에스겔의 선포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에는 조건이 붙어있습니다. 이스라엘 안에 있는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을 제거하라는 명령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회개하고 바르게 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새 영을 주시며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118편은 이런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시이고, 133편은 하나님께서 영생의 복을 허락하셨음을 찬양합니다.

요한복음 3장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이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를 여쭙니다.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대답하시며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오셨기에 세상의 악을 비추십니다. 악을 행하는 이들이 자신의 악을 버리고 진리의 빛을 따른다면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지만, 여전히 악을 쫓으며 살아간다면, 심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6장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면서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죄에게 종노릇 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고 말합니다.

이 본문들은 우리에게 죄와 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죄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일어나는 사건임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이 담긴 복음성가에도 그런 가사가 나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 가사는 오해의 소지가 많습니다. ‘누구든지’라는 부분입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을 수 있기에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입니다.

지난 주일 말씀에서 마가복음에 나타난 제자들의 침묵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은 이후 침묵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지도, 참된 진리를 전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이적을 행하셨을 때는 침묵하라 하셨어도 침묵하지 않던 이들이 부활 사건 앞에서는 침묵했음을 비교해서 생각했습니다.

이적은 눈에 보이는 대단한 사건이고 우리에게 즉각적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건이기에 사람들이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활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겠고 부활 사건이 우리에게 즉각적인 도움이 되는 사건도 아니었기에 제자들이 침묵했을지도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지금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줍니까? 우리는 도대체 왜 부활을 믿으며 예수님을 따릅니까? 지금 우리 삶에서 부활은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이는데 왜 그것을 따르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지난 주일에 저는 예수님의 부활은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어떤 순간이라도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보여주신 사건이 부활 사건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오늘 로마서 본문을 통해 부활 사건의 또 다른 의미를 전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부활의 의미를 전합니다. 이번 주일에는 이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담으시고 모든 죄가 사라지도록 만드신 사건이 아닙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마법처럼 의인이 된 사건이 아닙니다. 왜 이런 식의 이야기가 교회 안에서 선포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죄인이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죄인을 구원하셨다는 말씀에 대한 오해로 보입니다.

오늘 로마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부활에도 똑같이 연합하였기에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은 죄인이었던 우리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바라보고 그것을 인정하며 뉘우침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동참합니다. 뉘우침만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죽음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뉘우쳤던 죄를 다시 범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죄의 길을 걷지 않습니다. 그것이 참된 회개이고, 회개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게 됩니다.

어떤 주석가는 이런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비유에 등장한 탕자가 아버지의 환대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온 이후, 다시 탕자의 행동을 한다면 어떨까? 전에도 나를 용서하고 환대해준 아버지는 또다시 나를 환대해 주리라 생각하며 또다시 탕자의 행동을 하면 어떻게 되겠냐는 물음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탕자는 다시 용서받지 못할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자식이 잘못했을 때, 부모가 끝까지 용서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탕자의 아버지는 또다시 탕자를 용서하리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할 것 같습니다. 그 탕자가 잘했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이런 식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해주시리라는 생각입니다. 때로는 이 정도 죄는 죄가 아니라고 부정하며 죄를 범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 정도는 봐주실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하며 죄를 범할 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죄악된 삶을 벗어버린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 죄의 길을 걷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 안에만 거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범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몸의 사욕을 따르는 사람이고, 죄 아래 속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성도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교회에서 내쫓아버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를 용납함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죄인이 될 수 있기에 내쫓으라고 말합니다.

죄의 문제

우리는 용서의 하나님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죄에 관대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전하는 말씀은 결코 죄에 관대하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심판의 이야기는 모두 우리의 죄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언제나 우리에게 회개하고 죄에서 멀어지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결코 죄를 범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용서하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죄를 범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후가 될지 현실에서 심판받게 될지는 하나님만이 아시겠지만, 죄악된 길을 걷는 사람은 결국 심판받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시대라도 더 편한 방식을 생각하게 되는 듯합니다. 지금 우리가 끊임없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하면서 죄를 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에서도 죄에 대해 편한대로 생각하는 일들이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서 3장 8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이는 당시 어떤 사람들이 했던 이야기로 보입니다. 악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이 선이라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악을 행하는 것이 옳지 않겠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합니다. 끊임없는 용서가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는 악한 이들을 심판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 이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천국에 간다면, 그냥 죄를 범하면서 살다가 죽기 전에 회개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회개와 구원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회개는 변화입니다.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이를 실천하는 게 회개입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며 회개하시는 일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회개가 목회자 앞에서만 고백되고, 결국 하나님과 1:1 관계에서만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자신이 잘못을 범한 사람들을 향한 사죄 행위로 이어져야만 그것이 회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을 체험하는 삶

지난 주일 부활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모호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악한 길을 걷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길,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의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날마다 부활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어떠한 잘못을 계속 저지르고 있었다가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그 잘못을 더 이상 행하지 않는다면, 잘못을 행하고 있지 않는 나의 삶 자체가 부활의 증표입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계속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거짓말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 사람의 삶이 부활 그 자체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우리에게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변화된 우리의 모습이 십자가와 부활을 날마다 증거합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죄의 길을 걷는다면,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여전히 멀리 있는 사건이며, 의미를 알기 어려운 추상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부활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며, 그의 길을 걷고 그 은혜 안에 살아가기에 부활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이 부활의 증표가 되길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의 삶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함께 바라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삶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성도의 참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으로 전하는 복음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전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는 부활을 체험하고 계신 여러분에게 이미 내려지고 있을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