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고난 받은 ‘그리스도’인가, 해방자 ‘예수’인가메델린의 해방자 예수 (3)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2.04.24 15:49
▲ 남미의 고난 받는 예수에 대한 숭배는 이데올로기적이다. ⓒGetty Image

지난 글에서 우리는 메델린 문서의 그리스도론은 “해방으로서의 구원”의 이해로부터 출발되었음은 언급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도 메델린 문서의 구원의 이해로부터 출발하여 그리스도를 해방자로 이해하고 있다. 해방신학의 해방자로서의 그리스도 이해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실천적 행위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메델린 문서와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한 그리스도를 발자취를 따라 살아가는 삶의 실천으로부터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은 출발한다. 즉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은 억압받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자리와 가난한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현실 안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인해 발생한다. ‘해방자 예수’는 교리적인 주석학의 노력으로 도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음과 같은 해석학적 노력의 결과로 나타난다.

1.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억압의 현실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해방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오늘의 삶이 현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의 해방적 사역에 영감을 준다.

2. 이러한 교회의 해방적 프락시스는 교회로 하여금 신약성서의 예수의 프락시스에 대하여 성찰하도록 돕는다.

3.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은 그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그리스도는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4.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은 종교의 오용을 고발한다. 종교의 오용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가난과 억압 앞에서 자괴감과 저항에 대한 포기를 유도함을 경고한다. 이러한 종교의 오용은 라틴아메리카 가톨릭교회 내에서의 ‘성자 형상’의 사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성자들을 향한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종교심은 대단하다. 성자숭배 사상은 이들 민중 사이에서 대단한 인기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숭배심은 상대적으로 약화 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예수는 성자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토착민들과 농촌 사람들만이 성자 앞에 촛불을 밝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식층들도 상당수가 이러한 성자 숭배사상에 젖어 있다. 그래서 기적의 마리아 상이나 혹은 파두아의 성 안토니오 상 앞에 촛불을 밝히고 경배하는 모습을 어디서나 쉽사리 찾아 볼 수 있다.

각 도시는 도시마다 그들을 지켜 주는 수호성자를 모시고 있다. 그래서 그 해당 성자의 축일에는 온 마을이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그 성자의 상을 메고 온 마을로 순례의 행렬을 가지기도 한다. 태어나는 아이들은 그 생일에 따라 그 날에 해당하는 성자의 이름으로  작명을 사기도 한다. 1932년과 1935년 사이에 파라과이에서 출생한 1,101명의 사람들의 이름을 조사한 결과 872명(79%)이 성자의 이름을 그리고 112명이 마리아와 관계된 이름 그리고 나머지가 기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성자들의 기도는 가장 효과적인 기도로 알려져 있다. 사탄과의 싸움에서 그리고 자신들의 일상적인 삶속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성자들의 중재기도는 가장 큰 효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물론 성자는 하나님과 예수에 비하여 능력이 떨어지나 그러나 인간과 그리고 인간의 필요에 더욱 친근하게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성자란 그의 능력으로 기적을 자주 베푸는 성자이다. 성자로 하여금 기적을 일으키게 하기 위하여 성자의 상 앞에 헌물을 하여야 한다. 혹은 성자의 상을 만지거나 하는 신체적인 접촉을 가져야 한다. 유명한 성자의 상의 경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만져 어느 부분은 거의 닳아 있을 정도이다.

이에 대하여 소브리노는 가톨릭교회의 고난 받는 그리스도의 형상과 성자의 형상 숭배 및 순례 행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종교적 행사는 매우 추상적이고 비역사적인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조장하기 때문이다.(1)

또 다른 한편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 숭배는 라틴아메리카 가톨릭교회의 가장 전통적인 신앙예식이다. 십자가의 고난의 예수 그리스도 숭배는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서 정복 초기부터 그 모습을 보여 왔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선포한 예수 그리스도는 탄압받는 그리스도였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고통당하는 예수만을 소개함으로서 토착민들로 하여금 초라한 모습의 예수와 자신들의 처지를 동일시하게끔 만들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소개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가운데는 부활한 예수, 다시 사신 예수, 우리를 권하고 해방시키는 예수, 승리하는 예수 모든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급격한 삶의 변화 윤리의 변화를 요구하는 예수의 모습은 상실되어 있었다. 성서의 통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에게는 생소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십자가의 고난의 예수는 고난 받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로의 예수로서의 기능을 한다.

십자가의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난과 억압의 현실 속에서 그들에게 생존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그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억압의 현실을 대항하여 저항하도록 하지는 못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해방 신학자들은 이러한 예수의 모습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은 후안 루이스 세군도(Juan Luis Segundo)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대한 분석에서 영감을 찾는다. 세군도는 ‘우상적 신앙’과 ‘무신론적 신앙’의 위험에 대하여 경고한다. ‘우상적 신앙’은 ‘무신론적 신앙’보다 더 위험하다. 세군도는 우리에게 실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때 우리는 어떤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가?”(2)

세군도의 질문은 많은 해방 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질문은 해방신학의 그리스도의 형상에 대하여 물음을 던졌다.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것일까? 이런 의미에서 해방자 예수의 형상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형태의 그리스도 따름이 진정한 따름일까를 가늠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은 역사적 예수의 삶을 중요시 여긴다.

역사적 예수, 특히 예수의 프락시스와 관련된 탐구는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 형성에 있어서 방법론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의미에서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은 예수의 역사와 오늘의 현실의 예수공동체의 역사를 연결함으로서, 다시 말하면 두 개의 이야기의 만남으로부터 출발되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해방 신학자는 가난한 자들과 그의 해방을 향하는 신앙 없이 그의 신학을 전개할 수 없다. 또 다른 한편으로 작은 자들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우선적 선택을 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간직하고 있었던 예수를 따르는 교회에 대한 신앙 없이는 신학을 전개할 수 없다. 해방 신학자들은 예수의 프락시스와 관련하여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 업적들을 면밀히 참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해방 신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신학적 주제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별 볼일 없는 작은이들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나라는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 형성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판단 기준이 된다. 이들에게 교회 혹은 역사가 예수에게 덧붙였던 다양한 이름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예수의 삶은 하나님이 그에게 맡겨 주신 사명, 즉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측면에서 해석되어진다. 하나님을 아바라 지칭했던 예수의 영적인 경험이 핵심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경험한다. 자신만의 개인적인 아버지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아버지로 경험한다. 그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쳤고 하늘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병든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그리고 죄인들을 사랑하고 돌볼 것을 가르쳤다.

우상적 신앙의 사람들과는 다른 참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예수의 가르침과 삶은 결국 바리새파 사람들을 비롯한 당시의 종교기득권층들과 갈등관계를 만들어 냈으며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은 종말론적으로 형성되어진다. 예수가 그의 프락시스를 통하여 선포했던 하나님나라는 ‘예수 따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지평선으로 작동한다. 역사의 종말의 때에 우리는 심판에 직면할 것이다. 종말의 때는 영원한 나라가 회복되는 시기이다. 그때는 고통 받았던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회복되는 때이다.(마태 25:31~46) 부활은 억울하게 그리고 불법적으로 심판 받았던 사람들에게 정의가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해방 신학자들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을 향한 질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예수의 십자가상의 하나님을 향한 외침과 역사 안에서 고난 받았던 사람들의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질문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질문은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에 의해서 제기된다. 보프는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에게 어떻게 십자가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3)

해방신학은 오늘의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발견한다.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고통 받는 종을 본다. 십자가를 지고 고통 받는 그는 진정한 우리의 구원자이다.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은 “십자가에 못 박힌 민중”에서 그의 해석학적 위치를 발견한다.(4) “십자가에 못 박힌 민중” 안에서 비로소 십자가의 예수를 이해한다.

하나님의 가난한 예수와의 완전한 동일화는 해방(구원)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해석학적 원리이다. 예수의 개인적인 죄를 넘어서 사회적인 악에 의해 억압받고 고통 받는 피해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함에서 출발하여 해방(구원)은 역사적 구원의 지평을 시작한다. 이것이 기독교적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는 인간, 즉 “우주적 형제인간”으로 왔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자리에서부터 인간과 하나님 그리고 인간과 자연, 전 우주적 화해의 사역을 시도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메델린 문서와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의 관계에 대하여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

1. 메델린 문서와 해방 신학이 말하고자 하는 그리스도론의 중심은 “예수는 해방자”라는 것이다. 메델린 문서가 비록 ‘해방자 예수’라는 단어를 분명하게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구원을 해방으로 이해함으로서 ‘해방자 예수’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메델린 문서와 해방 신학은 구원을 종말론적이며 동시에 역사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최종적인 해방으로 이해하고 있다. 메델린 문서와 해방신학이 예수에게 부여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호칭은 ‘해방자 예수’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해방자’이다.

2. 해방으로서의 구원사역의 첫 번째 그리고 우선적인 수혜자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메델린 문서와 해방 신학은 예수를 우선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동일시한다. 성육신은 단순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가난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예수는 사람, 가난한 사람으로 이 땅에 왔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우선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의 교회를 향하여 가난한 교회가 되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메델린 문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삶을 언급하는 유일한 지점이 예수가 가난하게 살았다는 부분이다. 메델린 문서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의 가난한 삶이다. 예수는 인간으로서 가난하게 살았다.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에서 예수의 가난과 예수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가난하게 살았다는 사실은 해방신학의 모든 신학적 전제와 내용들을 형성하는 구조적 원리로 작용한다.

여기서 우리는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 따름”에 대한 의미와 내용을 새롭게 강조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인식론적으로“예수 따름!” 없이 진정한 예수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메델린 문서가 발표된 지 올해로 만 50주년이 되었다. 메델린에서 개최되었던  제 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를 통하여 발표된 메델린 문서는 해방 신학의 출발을 알렸다. 메델린 회의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목회적 실천행위(pastoral practice)의 새로운 여정을 열었다는데 그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빛에 비추어서 라틴 아메리카의 어두운 현실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하고 가난한 역사적 현실에 발을 디디고 해방을 향한 목회행위를 실천하도록 촉구하였다. 메델린의 새로운 목회적 프랙시스의 전통은 그 후 개최된 푸에블라(Puebla),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그리고 아파레시다(Aparecida) 주교회의를 통하여 이어져 갔다. 해방신학은 메델린의 전통을 이어 받아 가난한 삶의 역사의 현장에서 목회적 실천행위를 지속해 오고 있다.

50년이 지난 지금 라틴아메리카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50년 전 메델린 문서가 지적했던 불의하고 억압적인 현실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훼손되는 현실을 지속되고 있다. 오히려 오늘의 현실은 욕망과 소비의 모습으로 더욱 잔인하고 참혹하게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해를 가하고 있다. 50년 전의 메델린의‘해방으로서의 구원’과 해방신학의 ‘해방자 그리스도’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오늘도 유효하다.

미주

(미주 1) Jon Sobrino, Jesucristo liberador(해방자 예수), Madrid: Trotta 1991, 26~33

(미주 2) Juan Luis, Segundo, Nuestra idea de Dios(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 Buenos Aires Carlos Lohlé 1969, 22.

(미주 3) Leonardo Boff, 「Cómo predicar la Cruz hoy en una sociedad de Crucificados”」, Nuevo Mundo 1988, 81-96.

(미주 4) Jon Sobrino, Jesucristo liberador, 321.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