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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정화“나의 말을 지켜 나의 백성이 되라”(에스겔 11:14-2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4.25 21:46
▲ 예언자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 안에 주어진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 예수님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신, 부활의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안도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안도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첫째,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지금의 삶은 잠시 사는 인생일 뿐이며,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은 우리를 안도하게 합니다.

둘째, 삶의 목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평생을, 세상이 추구하라고 하는 목적 때문에 고통스러워합니다. 늘 덧없는 것들을 추구하며, 영원하지 않은 것에서 영원한 것을 얻으려 하다 보니 허무합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런 목적을 향해 가지 않고, 다른 방향의 삶을 살게 되었기에 안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안도의 기쁨’도 잠시일 수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이 기쁨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끌려 내려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가죽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는 쏟아지고, 가죽 부대는 못 쓰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 

하지만 옛 삶의 방식은 쉽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포기하도록 만듭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에너지가 쓰입니다. 새로운 시도는 늘 두렵습니다. 그래서 편한 옛 삶의 방식으로 돌아갈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려달라고 부르짖어 하나님이 이집트로부터 구원해 주셨지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다시 노예로 사는 게 좋겠다.”고 고백한 것을 기억합니다.

이런 옛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저항을 뚫고 새 가죽이 되어야 합니다. 새 가죽이 되어야 한다는 건,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새사람이 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헌 가죽의 상태에서는 어떤 방법을 써도 새 가죽이 될 수 없습니다. 헌 가죽을 버릴 때 비로소 새 가죽을 가질 수 있습니다. 헌 가죽을 버리는, 옛 삶의 방식을 청산하고자 하는 엄청난 결단이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4:22-24의 기록입니다.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의 생활을 보내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옛 삶의 방식,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기 위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에스겔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다시 새사람이 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흩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흩으셔야만 했던 이유는 에스겔 11:10-1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0 너희가 칼에 쓰러질 것이다.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의 국경에서 심판하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11 이 성읍은 너희를 보호하는 가마솥이 되지 않을 것이며, 너희도 그 속에서 보호받는 고기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의 국경에서 심판하겠다. 12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내가 정하여 둔 율례대로 생활하지 않았으며, 내가 정하여 준 규례를 지키지 않고, 오히려 너희의 주위에 있는 이방 사람들의 규례를 따라 행동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야 했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방 사람들의 규례를 따라 행동했습니다. 이들의 이런 삶의 방식을 벗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심판의 방식을 택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심판을 더 정확히 표현하면 ‘정화의 시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변하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소유를 빼앗고 흩으셨습니다. 벌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정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16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일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비록 내가 그들을 멀리 이방 사람들 가운데로 쫓아 버렸고, 여러 나라에 흩어 놓았어도, 그들이 가 있는 여러 나라에서 내가 잠시 그들의 성소가 되어 주겠다.’ 하여라. 17 그러므로 너는 포로가 된 동포들에게 이르기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러 민족 속에서 너희를 모아들이고, 너희가 흩어져 살고 있는 그 여러 나라에서 너희를 모아,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겠다.’ 하여라.”

멸망이 아닌 정화의 시간이 필요했기에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아닌 이방 땅으로 흩어져 있는 동안에도 성소가 되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정화의 시간’은 새사람이 되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입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바로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 옛사람을 벗어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고난과 고통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 구원해 주셨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코 옛사람을 벗어 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침묵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물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물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물을 뒤집어야 합니다. 그럼 물 밑으로 가라앉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됩니다. 이렇게 수면 위로 올라온 것들을 걷어내야 깨끗한 물이 됩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시간이 정화를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을 뒤집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며 기다리시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면 위로 올라온 것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걷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정화의 시간을 거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생활 동안 그리고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을 때 수면 위로 올라온 불순물들을 제거합니다. “18 그들이 그곳으로 가서, 그 땅의 보기 싫고 역겨운 우상들을 그 땅에서 다 없애 버릴 것이다. 19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일치된 마음을 주고, 새로운 영을 그들 속에 넣어 주겠다. 내가 그들의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 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

삶에서 불순물들(옛 습관, 옛 삶의방식) 제거하는 과정은 마치 자신의 굳은살을 떼어내는 것처럼 아프고, 힘든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단하고 살을 제거할 때 하나님은 새 살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욥의 이야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욥은 흠이 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욥을 인정하며 사탄에게 “너 이런 사람 본 적 없지?”라고 질문할 정도였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다.

“9 그러자 사탄이 주님께 아뢰었다. ‘욥이,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10 주님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울타리로 감싸 주시고, 그가 하는 일이면 무엇에나 복을 주셔서, 그의 소유를 온 땅에 넘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11 이제라도 주님께서 손을 드셔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치시면, 그는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저주할 것입니다.’ 12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네게 맡겨 보겠다. 다만,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아라!’ 그 때에 사탄이 주님 앞에서 물러갔다.”(욥기 1:9-12)

이런 과정속 에서 욥은 모든 소유를 읽어야 했습니다. 극심한 질병을 얻어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고백을 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친 이후 욥은 깨닫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욥기 42:5)

당대에 의인이었던 욥이었지만 모든 것을 잃고, 고난과 고통이 지나가고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욥은 이렇게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부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정화의 과정은 누구도 피할 수 없음을 욥기는 상징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고난이 지나간 자리에 하나님은 욥의 상처를 치료하시고, 부드러운 살이 다시 살아나도록 하셨습니다.

“20 그래서 그들은 나의 율례대로 생활하고, 나의 규례를 지키고 그대로 실천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래서’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피할 수 없는 과정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새사람, 새부대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율례대로, 규례대로 살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2:36-39 본문에서도 오늘 본문과 같은 형식의 선포를 들을 수 있습니다. “36 이제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는 이 도성을 두고, 전쟁과 기근과 염병을 만나서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들어간 도성이라고 말하지만, 37 똑똑히 들어라. 내가 분노와 노여움과 울화 때문에 그들을 여러 나라로 내쫓아 버렸다. 그러나 이제 내가 그들을 이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이 곳으로 데려와서 안전하게 살게 하겠다. 38 그러면 그들이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39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한결같은 마음과 삶을 주어, 그들이 언제나 나를 경외하여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까지도 길이 복을 받게 하겠다.”

이렇게 반복되는 본문들은 이런 정화의 과정이 언제나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반드시 필요함을 알려줍니다. 우리도 새부대, 새사람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우리는 이미 겪고 있습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우리가 놓지 못하고 집착하고 있는 것들이 삶의 문제로 떠오를 때가 있지 않습니까? 부모와의 문제, 자녀와의 문제, 돈의 문제, 관계에서의 문제, 건강의 문제 등등 이 문제들은 정화하기 위해 떠오르는 문제들입니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유 할 수 있을 때 세상의 법칙과 목적대로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옛사람을 벗기 위해 우리가 겪어야 할 과정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지금 성도님의 삶을 통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기려 하지 말고, 극복하려 하지 말고, 그 문제들을 놓아버림으로써 자유롭게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스도인답게 살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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