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Sermonday
출예루살렘 하라갈릴리 어느 산에서의 만남(출 19,1-6; 마 28,16-20)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04.28 15:33
▲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갈릴리산에서의 만남은 시내산에서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만남과 동일하다. ⓒGetty Image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처음 만나셨던 곳이 호수 주변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곳도 바로 그 근처가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뜻밖에도 그곳이 갈릴리의 어떤 산이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여전히 어느 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겐 그곳이 산이라는 사실 자체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출애굽기 본문이 가르쳐줍니다. 두 본문은 내용면에서 깊은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일차 목표지는 하나님의 산 곧 ‘시내산’입니다. 이 산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처음 언급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내도록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모세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기에 그는 하나님께 내가 뭐길래 그런 일을 하겠냐고 반문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안심시키시듯 하나님 자신이 반드시 그와 함께 계실 것을 보증하시고 하나님이 그를 보낸 증거는 출애굽 후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하나님 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제안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로 거룩한 백성이 되고 동시에 세상 나라들에 대해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제안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이유는 세계가 다 그의 소유이고 이스라엘은 출애굽 과정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제안은 아무 조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와의 계약을 이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그들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主)이시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애굽에서의 노역으로 신음했었는데 이제 자신들이 세상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나라가 된다니, 상상만 해도 벅찬 감격이 밀려올 일입니다. 먼 옛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온 세상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들이 이를 기억한다면 그들은 그 말씀이 우리에게서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했을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세상 나라들을 하나님 앞에서 대변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뜻이 그 가운데서 이루어지도록 일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소유인 세상 모든 나라들을 잇는 일종의 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어떤 나라에게 그와 같은 역할이 부여될 수 있겠습니까?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애굽’이라는 강대국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은 세상의 꼴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그와의 관계에서 세상 모든 나라들의 첫째가 되게 하려 하십니다. 꼴찌가 첫째 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인 것 같습니다. 버려진 돌을 모퉁이의 주춧돌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와의 계약을 이행하는 것뿐입니다. 그렇지만 양자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계약의 내용이 곧 그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그의 백성이 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란 혈연이 아니라 계약에 기초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세례 요한이 그에게 온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이에 비춰 이해될 수 있습니다. 회개는 계약관계의 회복입니다.

이로써 출애굽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됩니다. 지난 날 그들은 애굽의 폭력적인 권력에 의해 ‘노예’로 애굽 왕을 섬겼지만 지금부터는 하나님과의 계약에 의해 그의 세계 계획안에서 ‘제사장’으로 세계와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 아는 대로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 계약을 파기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계약을 새롭게 하시고 새 일을 계획하십니다. 바로 갈릴리 어느 산에서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 하셨고, 제자들은 약속의 산으로 갔습니다. 마치 출애굽 하듯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예루살렘이 애굽처럼 폭력의 자리로 기록되는 순간입니다. 거기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 하시듯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렇게 하십니다.

세계의 주이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셨으므로 예수는 지금 우주 통치자의 자격으로 그 산에 서 계십니다. 시냬산의 하나님처럼 제자들을 불러내신 곧 해방시키신 갈릴리산의 예수입니다. 또한 시내산에서 모세를 만난 하나님이 그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신 것처럼 예수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에 의지하여 제자들은 예수의 부재 속에 혼란과 좌절을 겪던 지난 시간들을 훌훌 털어낼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 속에서 제자들이 어떻게 생각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같고 또 한편으로는 모세 같습니다. 갈릴리산의 제자들은 시내산 아래 서있던 이스라엘처럼 미래의 제자들을 대표하여 거기 서있습니다. 그 점에서 제자들은 ‘제사장 나라’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교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의 ‘기능적’ 의미도 드러납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었던 것처럼 하나님과 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약 당사자로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계약의 내용인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 곧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미래의 계약자들인 믿는 모든 제자들에게 책무로 주어집니다. 이 일은 세대를 거듭하며 반복·지속될 것입니다.

믿음은 계약사건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갈릴리산 사건 그리고 그 원형인 시내산 사건을 경험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애굽이든 예루살렘이든 우리를 지배하던 ‘폭력의 장소’를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그의 계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생명과 정의와 자유, 평화와 공의와 사랑을 낳는 계약의 말씀을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새기셨습니다.

그 마음이 가는 대로 살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삶으로 믿음의 계약이 실행되기를 빕니다. 믿음의 백성 가운데 계약의 열매들로 기쁨이 넘치고 평강이 흐르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목사(백합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