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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위협이 되지 않을 때는 온다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04.30 22:59
▲ 죽음을 극복한 사건은 성서를 통해 무수히 이야기 되고 있다. ⓒGetty Image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49)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대한 논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언제부터인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일찍이 이사야는 죽음 곧 죽음의 힘이 영원히 멸망당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을 말했습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낼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시 49,15). 성서는 에녹이나 엘리야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보도합니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렇기에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고 죽음은 조롱을 당하기에 이릅니다(호 13,14). 이 말은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는 말로 바울이 받아들입니다(고전 15,55).

죽음은 아직 그 세력을 떨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 힘을 잃었습니다. 그 힘을 완전히 상실할 때가 올 것입니다. 부활의 때입니다.

죽음이 여전히 슬프고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그리고 현재 누구나 죽음의 그늘 아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여진 부활은 나중에 부활이 있을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나 알 수 있는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것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누가 그 사건에 참여할 수 있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지 몰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 소망을 갖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소망은 거꾸로 오늘 우리의 삶을 이끌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 삶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하는 삶이며 그가  보여주신 삶입니다. 부활의 소망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입니다.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양식과는 충돌할 수 밖에 없는 삶을 그 소망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성서가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해도 매우 어렵고 좀처럼 상상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부활의 몸은 예수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만질 수 있고 고난의 흔적들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우리의 몸과 닮아 있기는 하지만, 변화된 몸이어서 우리의 몸과 다릅니다. 그래서 그것은 신비이고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그 사건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아가는 오늘이기를.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과 세계로 들어가는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책임적인 삶을 사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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