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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가 아니라 이해선악을 분별하는 지혜(열왕기상 3:7-10)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5.01 15:13
▲ Luca Giordano, 「The Dream of Solomon: God promises Solomon wisdom」 (1694-1695) ⓒWikipedia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이번 주간 성서 일과에 따른 본문은 열왕기상 3장 5-14절, 시편 4편, 요한복음 4장 31-38절, 골로새서 3장 1-11절 말씀입니다. 네 본문은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면서도 한 가지, 같은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3장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솔로몬의 일천번제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일화입니다. 예전에 이 본문에 대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는데, 이 본문은 솔로몬의 정성이 하나님께 닿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성껏 드린 일천번제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원했던 지혜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많은 복을 내리셨습니다.

시편 4편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우리가 삶으로 의로운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요와 평안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골로새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세상 속에서 악한 마음을 버리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4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신 이후의 상황입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마친 사마리아 여인은 마을로 돌아갔고, 그 사이 마을에 갔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돌아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드실 음식을 가져와서 드렸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의 양식은 다른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일이 자신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본문은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행할 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며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번 한 주간은 본문들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서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으며,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의 입맛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킬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진 생각들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거나 곡해할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열왕기상에 나타난 솔로몬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는 왜 솔로몬의 요청을 좋게 보셨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승인

예전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본문의 말씀을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보통 교회에서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이야기할 때면 흔히 솔로몬의 정성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 정성에 응답하셨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인지 일천번제라는 이름이 붙은 헌금도 있습니다. 월정헌금과 다르게 천 주 동안 정한 만큼의 헌금을 내는 방식입니다. 거의 20년 가까운 기간이 되기 때문에 상당히 큰 기도 제목이 있는 분들이 그 기도 제목을 놓고 헌금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새벽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어떤 교회에서는 천 일 동안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에 참석하신 분들에게 시상을 하기도 합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하나님 앞에 우리의 정성을 보인다는 개념이 깔려있습니다. 지극 정성이면 하나님께서도 감동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한다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맞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솔로몬의 이야기는 그런 맥락에서 읽으면 안 됩니다.

솔로몬은 왕자의 난을 치룬 후 스스로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은 12지파의 인정을 받고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무력을 통해 유다 왕국을 세웠고, 나머지 이스라엘을 점령한 후에 지파 장로들의 승인을 받아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경우에는 형제들 간의 왕위 다툼을 한 후에 그냥 왕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백성들의 승인도, 12지파 장로들의 승인도 받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이 솔로몬 왕위 등극 이후에 첨가되어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백성에게 승인받은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 직접 승인받은 왕이라는 점을 오늘 본문이 말해줍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을 이야기합니다. 다윗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어갈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는 남왕국 유다에서는 중요하게 여겨진 왕조 이데올로기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 훗날의 이야기인 열왕기하 11장의 남왕국 여왕 아달랴와 제사장 여호야다의 반역일 것입니다.

이 본문이 솔로몬의 왕위를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사건이라고 본다면, 일천번제는 사실 이상한 이야기가 됩니다. 본문에는 솔로몬이 번제를 드린 기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가 매일 세 차례씩 번제를 드렸는지, 하루에 한 번 번제를 드렸는지, 절기 때마다 번제를 드렸는지 알 수 없습니다.

기간을 최소화 시켜서 생각한다면, 솔로몬이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번제를 드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솔로몬은 1년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 됩니다. 이 부분이 이상하다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승인이 솔로몬 등극 후 1년이나 뒤에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솔로몬은 최소 1년간 하나님께 왕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우리가 솔로몬의 정성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본래 솔로몬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셨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래는 인정하지 않으셨지만, 그의 일천번제로 인해 마음을 돌리시고 그를 인정하셨다고 말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일천번제라는 표현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역사가가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번제를 드렸다는 표현을 과장되게 표현했을 뿐입니다. 혹은 솔로몬에 관한 민담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일천 번이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과장된 이야기가 첨가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열왕기의 흐름상,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왕위를 승인받았다는 역할을 합니다. 또 이 본문은 지혜로운 왕 솔로몬이 탄생한 배경 설화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인정하시고 승인하신 이유는 그의 제사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요청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 있습니다. 창조 때에 선악을 아는 능력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능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기에 선과 악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선악과 이야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를 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신과 인간을 구분하는 가장 큰 속성 두 가지인, 지혜와 생명을 나무로 표현하였고, 사람이 그 중 하나인 지혜를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창세기는 초기 형태의 열왕기보다 늦게 기록되긴 했지만, 성경 처음에 선악과를 먹은 사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있었는데, 솔로몬이 이를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흡족해 하셨다는 점은 조금 이상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창세기 2장에서 선악과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표현됩니다. 이때 ‘안다’는 말은 히브리어 ‘다아트(דעת)’가 사용됩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는 다아트의 동사형이 ‘야다(ידע)’가 사용되기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얻은 능력은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분하는 능력 자체입니다. 선함과 함께 악함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악을 알게 된 사람은 점점 악한 일을 행하기 시작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그렇고 노아의 홍수 사건이 그렇습니다. 사람은 점차 악을 추구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이 요구한 능력은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이때는 히브리어 ‘빈(בין)’이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무엇인가를 알아차리고 파악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해하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요구한 것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왕의 권위로 멋대로 판단하지 않을 능력, 누군가의 거짓 증언에 휘둘리지 않을 능력, 뇌물을 받고 굽어진 판단을 내리지 않을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한 백성이 악한 이들에 의해 고통 받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요구했습니다.

사람은 이미 악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가르치시고 법도를 알려주셨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악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갑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구분해야 하는 재판관 역시도 악에서 벗어나지 않고 굽은 판결을 내리는 일이 많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은 이런 악을 분간할 수 있기를 원했고 요구했습니다. 자신이 악에 빠지지 않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또 솔로몬의 요청 속에는 선한 삶을 살면서, 악에 의해 피해 받는 이들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만을 위한 간구가 아니라 선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위한 간구였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다음에는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그 이야기에 나타난 사람들은 창녀 두 사람입니다. 이들은 당시 사회에서 약자로 분류될 수 있는 이들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나타내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사회 약자라는 점, 한 사람은 분명하게 악한 의도를 가지고 나타난다는 점은 솔로몬이 원했던 지혜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권력자가 권력에 취해 그 힘을 마음대로 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에 따라 선과 악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 그래서 선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능력을 솔로몬은 구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셨고 더욱 큰 복을 주셨습니다.

이제 열흘쯤 뒤에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새로운 대통령에게 이런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피해 보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잘 이끌어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또 우리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보통 어린아이들에게 안수 기도를 할 때나, 어린아이들을 위한 기도 제목에는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주세요’라는 말을 많이 듣고 보게 됩니다. 보통 ‘다윗의 용맹함을 주세요’와 함께 나란히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지혜는 어린아이들에게 필요한 지혜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악에 찌들어있는, 우리의 편의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내 마음대로 이용하는 우리 어른들에게 필요한 지혜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악에 물들지 않도록, 선악을 올바르게 분간하지 못해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한 주가 되셨으면 합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선악을 아는 능력은 사람이 점점 악을 행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악이 무엇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악을 행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그런 악함에 물들지 않고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또 그리스도인의 선을 행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뿐만 아니라 더 많은 복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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