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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먹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내 삶의 감사 ⑹
박연숙 | 승인 2022.05.04 00:47
▲ 본 이미지는 칼럼과 관계가 없음을 밝힙니다.

“5ml 우유를 주사기로 입에 넣었는데 3ml는 입가로 흘러내리고 2ml 정도 들어간 것 같아요.”

간호사의 말이다.

“네….”

인큐베이터 안에서 창준이는 가슴 윗부분에 연결한 중심정맥과 콧줄과 입으로 각각 영양을 공급받고 있었는데 대부분 중심정맥을 통한 것이었고 입으로는 거의 먹지 못해서 콧줄을 통해 우유를 넣었다. 그나마 들어간 우유도 위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 몇 차례 금식을 반복했다. 내시경 검사 결과 십이지장이 바늘구멍만큼 좁아져 있어서 음식물이 제대로 내려가지 못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좁아진 부분을 제거하고 위아래를 연결하는 수술이라고. 3kg도 채 안 되는 체구니 십이지장은 얼마나 작을까? 그것을 자르고 연결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의사에게 이것저것 물으니 본인도 열 중의 하나를 아는 지식으로 하는 거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나머지 아홉은 인간의 손을 떠나 있는 것이다. 다 안다면 신이겠지. 의사와 하나님 손에 맡기고 나는 그 ‘열’이 하나로 모아져 수술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수술 후에 잘 먹을 수 있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만 같았다.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나오기까지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정말 입술이 마르고 애가 타는 시간이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불안한 마음이 들다가, ‘잘 되겠지’ 하고 위로도 해보고, 기도하다가, 시계 보다가, 수술 현황판 보다가 …. 영원처럼 느껴지는 긴 기다림 끝에 현황판에 ‘수술종료’가 뜬 것을 보았다.

보호자를 부르는 소리에 달려가니 창준이가 마취에서 깨어난 상태로 눈을 말똥말똥 뜨고 나타났다. 엄마의 안절부절못했던 모습이 무색하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수술을 받게 한 미안함과 잘 견뎌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뒤엉켜 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그 후로 우유를 먹는 양이 점점 늘어갔다. 나는 밥을 먹지 않아도 창준이가 잘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코넬리아 디 란지 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은 특별히 섭식에 장애가 있다. 환우 중에는 입으로 먹지 못해서 배를 통해 영양제를 맞으며 살아가는 아기도 있다. 엄마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다.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이라고 하는데 밥 못 먹는 자식을 보는 어미의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아프리카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아이에게 한 번 배불리 먹어보라고 독초인 줄 알면서도 먹이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이다. 먹을 수 있다는 것과 먹일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이웃을 조금만 둘러봐도 알 수 있다.

예전에 ‘라이언’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젊은 날, 내가 했던 생각과 같은 생각을 가진 주인공의 어머니를 보게 된 것이 인상 깊었다. 이미 세상에 아이들은 많다. 불임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아이를 갖는 대신 이미 세상에 온 아이 하나라도 제대로 돌보고 싶었던 주인공 사루의 양어머니 수 브리얼리. 그녀는 그렇게 부모 잃은 두 아이의 양어머니가 되어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가끔 법을 세우고 바꾸고 하면서 좀 더 구조적으로 복지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련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내 모습이 참 초라해 보인다. 아이 하나 제대로 기르는 것이 참 버겁기만 한 삶. 그런데 영화 속의 그 여인은 그런 내게 용기를 가지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하니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준 그 여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혼자서 편안히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길을 갈 수 있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되기를 선택한 여인. ‘어머니’로 살면서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 중에 하나이지 싶다. 내가 먹을 때보다 자식이 먹을 때 더 기쁘고, 내가 아플 때보다 자식이 아플 때 더 큰 아픔을 느끼면서 생명 돌보는 일이 법을 세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창준이가 먹지 못해서 금식을 반복하며 보낸 몇 주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그동안 참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감사의 문을 열게 되었다.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먹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수 있으며 돌볼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어머니로서 살아감으로 그 희생과 헌신의 기회가 주어졌음을 감사한다. 그 길에 겪게 되는 무수한 일들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 생명 나눔으로 내 인생의 의미가 깊어짐을 감사함으로 누리고 싶다.

박연숙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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