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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그리스도교 갈등의 시작이슬람과 그리스도교 (1)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2.05.10 00:38
▲ Mohammed kaaba, 「The story of Muhammad's role in re-setting the Black Stone」 (1315) ⓒWikipedia

이슬람은 그리스도가 지금까지 대결해야 했던 여러 종교들 가운데 가장 심하게 그리스도교로부터 비난받고 왜곡된 종교이다. 6세기에 시작된 이슬람의 정복전쟁에서부터 1683년 오스만 터키의 비엔나 포위에 이르는 1,000년 이상을 유럽 그리스도교는 이슬람과 무슬림을 그리스도교와 서구 문명 최대의 적으로 간주했다.(1)

이슬람에 대한 이해, 세계의 이해의 시작

지금도 ‘이슬람’이라는 단어는 곧바로 ‘테러’(2), ‘알라신’, ‘한 손에 꾸란을, 다른 한 손엔 칼을’, ‘침략과 약탈’, ‘일부다처’, ‘아라비안나이트’, ‘차도르로 얼굴을 가린 여성’, ‘여성할례’, ‘원유’, ‘호메이니’, ‘사담 후세인’, ‘아라파트’, ‘가다피’ 등등 셀 수 없을 만큼 부정적인 이미지와 중첩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런 부정적 이미지들은 이스라엘과 미국 중심의 언론과 정보를 통해서, 특히 그리스도교와의 충돌의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것들이다.

그러나 세계 4대 문명권 가운데 3개의 문명권(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이 이슬람에 속해 있고, 그 어느 종교인보다 더 많은 13억이라는 세계 최대의 종교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국제연합에 가입하고 있는 정회권국만 55개에 달하는 세계종교가 이슬람이다.(3) 이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의 오래된 종교를 배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슬람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고, 정보 또한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있어 이슬람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와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어떻게 두 종교가 서로 만났으며, 그런 만남이 왜 충돌의 역사로 변했는지,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어떻게 서로를 오해했는지를 검토하려고 한다. 또한 두 종교 사이에 공존의 역사적 경험은 없었는지, 앞으로는 어떤 상호이해와 공존, 나아가 상생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는지를 모색하려고 한다.

무함마드와 유다교, 그리스도교의 충돌

이슬람(4)의 창시자 무함마드(570-632)가 40세(610년)에 히라 산 동굴에서 신 체험을 한 후, 유일신과 임박한 심판을 선언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유다교인이거나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다. 무함마드 자신도 자신이 단순히 종래의 계시종교인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선양자라고 생각했고, 유다교와 그리스도교가 가르치고 실천하는 것과 같은 내용의 진리를 전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5)

당시 다신사회였고, 다양한 신들에 대한 순례자들로부터 주된 수입원을 가지고 있었던 메카는 당연히 유일신을 선포하는 무함마드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유일신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유다교인과 그리스도인들은 처음에 무함마드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유다교인들은 무함마드에게 계시되었다는 내용이 성서와 일치하지 않고 누락된 부분이 많다고 생각되면서부터 무함마드에게 비판적이 되었다.

특히 부유한 유다교 지도자들은 무함마드가 전통적인 히브리 예언자들을 믿기는 하지만, 성서구절을 학문적으로 해석할 줄도 모르고 성서를 인용할 때도 실수투성인 이상하고 불쾌한 사람으로 여겼다. 더구나 무함마드는 하나님이 만든 율법을 세상에 전파할 도구로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또한 그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결함은 무함마드가 예수를 권위 있는 예언자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었다.(6)

유다교인들의 부정적인 태도는 무함마드로 하여금 유다교인들이 성서의 계시 내용을 수정했다는 심증을 굳히게 했다. 그는 자신에게 계시된 내용만이 진실에 부합하며, 자신이 직접적인 계시에 의거해서 전하는 신앙이 유다교인이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신앙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의 신앙이 곧 이스마일(이스마엘)을 통해 아랍인들의 선조이기도 하며, 또 메카의 성소인 카바 성전을 세웠다는 아브라함이 신봉했던 순수한 신앙이다.(7) 선조들의 별에 대한 신앙을 거부한 하니프 아브라함이 최초로 세운 순수한 유일신교가 유다교인이과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훼손되었으며, 이제 이슬람 속에서 되살아나야 하는 것이다. 이슬람이 아브라함과 이런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인식이 당초 예루살렘으로 향했던 예배의 방향을 메카 쪽으로 바꾸게 했다.

메카 정복이 이제 필연적이 되었고 8년에 걸친 메카 정복전쟁의 와중에서 세 개의 유대인 부족이 제거되었으며, 그 중 일부는 몰살당했다.(8) 이런 역사적 경험이 종교적 원인 외에도 유다교인으로 하여금 이슬람에 대하여 적대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9) 무함마드가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에 적대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정치적이고 실제적인 이유였다.

즉 그의 새로운 이슬람 공동체의 생존 보장과 내적인 강화 때문이었다. 메디나에서 유다인들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함마드에게 유다인들은 매우 위협적이었던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무함마드와 그의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무함마드는 그리스도인들을 간접적인 위협요인으로 구분하였다. 무함마드는 그리스도인들이 위협적으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계약을 통해 그들과의 관계를 조정했다.

이슬람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전반적인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무함마드는 유다인 부족들의 영향력을 약화시켜야 했고,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의 활동 가능성 역시 제한해야 했다. 마침내 결정적인 명령이 내려졌는데, 그것은 유다인과 그리스도인들을 정복하여 이슬람 공동체의 관리 아래 두라는 것이었다(꾸란 9,29 참조). 왜냐하면 이슬람은 신 안에서 유일하게 참된 종교이기 때문이다(꾸란 3,19; 48,28;5,3 참조).(10)

무함마드는 처음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친근감을 가졌던 것 같다. 무함마드의 초기 제자들이 다신 신앙을 가진 메카인들에게 박해를 받아, 그리스도교적인 에티오피아로 피신하였을 때(615년)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11) 그런데 야스리브 주변의 수도원에 기거하는 그리스도교 수도사들 역시 무함마드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무함마드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는 이들도 그를 무지한 이단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예언자를 자칭하는 이 사람이 예수를 인정한다고는 하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려 들지 않으며, 하나이신 하나님은 아들이 있을 수 없다고 우겼기 때문이다. 미묘한 신학논리에 정통한 수도사들에겐 삼위일체를 잘못된 가르침이라 부정하는 무함마드를 받아들일 여지가 전혀 없었다.(12)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메시지를 부각시키면서, 자신이 보내심을 받은 예언자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한, 또한 자기 공동체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 상황에 따라 무함마드는 그때그때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다른 태도를 취했다. 무함마드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태도는 우호(꾸란 5,82)와 적대(꾸란 9,29-35 참조)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흔들렸다.

미주

(미주 1) 안네마리 쉼멜, 『이슬람의 이해』, 김영경 역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1999), 9.

(미주 2) 테러와 폭력 행위를 하는 이슬람 과격파는 이슬람 권내에서 거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상실하고 있고 집권 가능성도 희박한 5% 미만의 소수집단이다. 특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반인륜적 행위는 가장 반이슬람적인 행위로 이슬람권 내에서도 비난을 받고 있다. 이희수, “공존과 충돌의 역사를 통해 본 이슬람”, 「신학사상」 제51호 겨울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2001), 21.

(미주 3) 이희수, “공존과 충돌의 역사를 통해 본 이슬람”, 20-21. 아랍이 전체 이슬람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 미만이다. 나머지 70%의 이슬람은 아시아에 분포해 있다.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의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전역, 중국에 이르는 아시아 최대의 종교는 이슬람이다.

(미주 4) ‘이슬람’이라는 단어는 신의 의지에 완전히 복종함을 뜻하며, 그렇게 복종을 실천하는 사람을 ‘무슬림’이라고 한다. 무슬림은 살람(평화)이라는 단어와도 관련이 있는 어간 slm의 제4 능동분사형이다. 안네마리 쉼멜, 『이슬람의 이해』, 25.

(미주 5) 쉼멜, 『이슬람의 이해』, 27.

(미주 6) 토마스 이디노풀로스, 『예루살렘』, 이동진 역 (서울: 그린비 2002), 308.

(미주 7) 무함마드가 메카를 정복했을 당시, 메카의 카바(어원적으로는 입방체라는 뜻) 성전에는 이스마엘과 함께 있는 아브라함의 초상과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초상이 걸려 있었으며, 이 초상들 곁에는 3백이 넘는 우상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제딘 겔루즈, 『코란』, 이인철 역 (서울: 영림카디널, 1998), 16.

(미주 8) 이디노풀로스, 『예루살렘』, 309.

(미주 9) 쉼멜, 『이슬람의 이해』, 28.

(미주 10) 루드비히 하게만, 『그리스도교 대 이슬람: 실패한 관계의 역사』, 채수일·채해림 역 (서울: 심산 2005), 27; “신과 최후 심판을 믿지 않는 자들과 투쟁하라. 신과 신이 보내신 예언자가 금지한 것을 지키지 않는 자들과 투쟁하라. 진리의 종교에 속하지 않는 자들과 투쟁하라. 그들이 천한 자들로서 세금을 바칠 때까지 투쟁하라.”(꾸란 9,29-35), 루드비히 하게만, 같은 책, 30-31 참조.

(미주 11) 하게만, 『그리스도교 대 이슬람』, 29.

(미주 12) 이디노풀로스, 『예루살렘』, 308-309.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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