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꾸란’과 이슬람의 그리스도교 이해와 태도이슬람과 그리스도교 (2)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2.05.17 01:15
▲ 이슬람 경전인 『꾸란』 ⓒWikimediaCommons

꾸란에서 이해된 그리스도교

< 1 > 꾸란의 형식과 내용

꾸란은 동사 ‘카라아’의 동작을 나타내는 여러 형태의 명사들 중 하나인데, 현대 아랍어 동사 ‘카라아’는 ‘읽다’, ‘해독하다’의 의미로 통한다. 그러나 어원학적인 뜻은 훨씬 광범위한데, ‘낭송’, ‘암송’, ‘복창’의 뜻으로 풀이된다.(1) 무슬림에게 꾸란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며, 무함마드는 단지 그것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 꾸란은 하늘나라에 ‘잘 보존되어 있는 서판’에 담겨 있는 꾸란의 원본이 드러난 것으로 ‘오직 정결한 자만이’ 만지거나 낭송할 수 있다.

꾸란은 단순한 한 권의 책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슬림은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린다:

‘주여,
꾸란의 보석으로 저희들을 치장해 주시고
꾸란의 은총으로 저희들을 축복해 주시고
꾸란의 영예로 저희들을 영예롭게 해주시고
꾸란의 예복으로 저희들을 입혀 주시고
꾸란의 중재로 저희들이 낙원에 들게 해주시고
꾸란의 명예를 위해 저희들을 이 세상의 악과
저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시고
..............
주여, 
당신의 자비와 친절과 은총을 통해
꾸란으로 하여금 이승에서는 저희들의 동반자가
무덤 속에서는 벗이
부활의 날에는 친구가
(저승으로 가는) 다리 위에서는 등불이
낙원에서는 동반자가
(지옥에서는) 유황불을 막는 가리개가
그리고 모든 선행의 길잡이가 되게 해 주소서!(2)

꾸란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므로 무슬림에게는 이것을 다른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랍어 외의 언어로 번역된 꾸란은 단지 의미에 대한 설명, 여러 해석 중의 하나로 여겨질 뿐이다.(3)

오늘의 형태로 꾸란이 엮어진 것은 무함마드 사후 20년이 지난 후, 그의 대를 이어 3대 칼리프가 된 무함마드의 사위인 할리파 우스만 시절이었는데,(4) 꾸란은 시대 순에 따라 편집된 것이 아니라 각 장(수라)의 길이에 따라 배열되었다. 주로 초기의 임박한 심판의 날에 대한 경고를 그 내용으로 하는 초기의 단편적 계시들이 꾸란의 뒷부분에 수록된 것은 이 때문이다.(5)

무함마드의 계시체험은 그의 예언자로서의 전반기와 후반기에 차이를 보인다. 후반기에 들어서 운문 형식은 줄어들고 종말론적인 격렬한 경고는 의례나 제도적인 문제에 대한 가르침으로 대체되었다. 새로운 신앙공동체의 지도자로서 무함마드는 이제 신생 공동체의 정치적, 사회적 기반을 다지기 위한규약과 법률들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6)

아랍어로 쓰여진 꾸란은 114 수라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 수라들은 6536 또는 6600절로 나뉘어져 있고, 세는 방법에 따라 그 수는 달라진다. 수라의 길이도 일정하지 않은데 286절에 이르는 가장 긴 것이 있는가 하면(2장), 3절로 이루어진 가장 짧은 것이 세 개(103,108,110장) 있다. ‘수라’의 어원은 ‘성벽’을 뜻하는 ‘수르’에 있는데, 범위, 즉 특성이나 개성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성벽으로 둘러 싼 것을 말한다.(7)

< 2 > 꾸란에서 이해된 그리스도교

꾸란은 15개 수라에 걸쳐, 그리고 꾸란 전체 6226절 중에서 93절에서 예수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8)

꾸란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사실로 인정한다. 예수는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잉태시킨 ‘말씀’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유일신이며 절대자인 하나님은 아들이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들이 있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은 결혼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분이야말로 알라이시며, 유일한 분, 알라이시자 영원한 분, (누구를) 낳지 않고, (누구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오직 한 분으로 그분에 견줄 자 없다’(꾸란 112,5).... 알라를 찬송하라. 알라께서는 자식들을 가지시는 일 없이, 그 왕권을 공유하는 자도 없고, 굴욕 때문에 보호자를 필요로 하는 일도 없으시다(꾸란 17,111).... 그렇기 때문에 알라와 그 사도들을 믿어라. 결코 삼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삼가라) 알라는 유일한 신이다(꾸란 4,169-171)”.(9)

그러나 꾸란은 예수를 무함마드 이전 시대에 마지막으로 부름받은 위대한 예언자이자 (인류의 병을 고치는) 치유자였고, 신성한 지위를 결코 탐하지 않는 사랑과 가난과 겸손의 사표였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꾸란은 인정하지 않는다. 수라 4-157에 의하면, ‘그들은 예수를 죽이지 않았으며, 그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느니라.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이니라’. 

무슬림은 그리스도인이 십자가 사건에서 이해하는 대속론적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이슬람에서는 원죄의 개념을 모르므로 대속의 필요성은 더욱 인정될 수 없었다.(10)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사이의 유사성도 꾸란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유일신 신앙과 창조론, 마리아 이해, 천사론, 종말론 등에서 그렇다.(11) 그러나 이슬람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교리와 성육신 교리가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한다.(12)

이슬람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태도

< 1 >

이슬람은 유다교나 그리스도교 등 다른 종교들에 대하여 인두세나 토지세를 내는 한, 종교적 자유를 허용했다. 개종은 오히려 원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세원의 감소를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이슬람 사회에서 공납의 액수도 비잔틴이나 페르시아의 수탈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었으므로 이슬람 제국 아래에서 그리스도인과 유다교인들은 상당한 종교의 자유와 경제적 기득권을 향유할 수 있었다.(13)

이슬람은 유다교, 그리스도교, 조로아스터교 등을 ‘책의 종교’로 인정하면서, 그 추종자들이 무슬림을 개종시키려고 하지 않는 한 비교적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고, 이런 관용 때문에 피정복지에서의 빠른 동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트로이 전쟁이 벌어졌고, 헤로도토스, 아낙사고라스, 헤라클리투스가 태어났고, 안티오키아, 타르소 혹은 니케아 등의 이름으로 그리스도교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이 지역에서 불과 3세기 남짓한 기간에 두 가지 문화유산, 즉 그리스도교와 라틴어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도 - 비록 약간의 폭력과 강제 개종이 없지 않았고 순교자들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 16세기 초의 인구조사에서 아나톨리아의 전체 가정 중 무슬림 가정이 92%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런 과정이 동화에 의한 것이었음을 입증해 준다.(14)

이른바 피보호민(딤미)을 위한 보호협정은 ‘이슬람 지배 계층에 복종하며, 이슬람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합의된 공물과 세금, 토지세와 인두세를 바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이슬람 국가는 피보호민의 생명을 보호하며, 그들에게 부여된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는데, 피보호민의 권리는, 종교와 제의의 상대적인 자유, 각 종교공동체 내부의 행정과 재판의 상대적 자율성의 보장, 생업이 제한되는 피보호민들의 재산은 생업이 이슬람법과 모순되지 않는 한에서 침해받지 않는데 있다.(15)

< 2 >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는 칼리프였다. 비잔틴 황제는 다섯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반면 서유럽 왕국들은 그런 서열에 끼지도 못했다. 유럽인들에게 오리엔트는 경이와 엄청난 부의 땅이었음에 반해, 무슬림들은 그리스도교 유럽에서 동경할 만한 것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슬림은 유럽인들을 당연히 덜 문명화된 사람들로 간주했다. 이븐 유바이르(Ibn Yubair)는 메시나(Mesina, 이탈리라 시칠리아 지바의 도시)에서 ‘악취와 오물로 가득 찬’ 모습을 보았으며, 많은 교회들 또한 ‘더럽고, 볼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유럽의 도시들만 더럽게 본 것이 아니라 유럽인들도 지저분한 존재로 보았다. 한 여행가는 유럽인들이 ‘일 년에 한두 번밖에는 목욕을 하지 않으며’, ‘옷은 거의 빨지 않고 걸레가 다 될 때까지 걸치고 다닌다’고 말하고 있다.(16)

3-3. 이슬람이 그리스도교를 신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이라크의 네스토리아 교회의 대표인 디모데라는 성직자가 781년에 알 마하디라는 칼리프와 이틀 동안 한 대화록에 잘 나타나 있다. 무슬림은 그리스도교가 십자가를 숭배하는 것, 그리스도인이 할례를 받지 않는 것, 하나님이 여자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주장하는 것, 어떻게 남자 없이 동정녀가 아들을 낳을 수 있는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영원한 하나님은 시간 안에 탄생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일 수 없으며, 또한 죽을 수도 없다고 무슬림은 생각했다.(17)

미주

(미주 1) 아제딘 겔루즈, 『코란』, 이인철 역 (서울: 영림카디널, 1998), 11; 무슬림의 소망은 꾸란을 가능한 훌륭하게 낭송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틸라와트(낭송)의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게 되었는데, 꾸란은 일반적으로 그레고리안 성가를 연상시키는 영창조로 낭송된다. 안네마리 쉼멜, 『이슬람의 이해』, 김영경 역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1999), 51-52. 무슬림은 꾸란을 읽거나 낭송하는 것이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그러므로 꾸란을 읽는 행위 자체가 성례라고 주장한다. 쉼멜, 『이슬람의 이해』, 73.

(미주 2) 쉼멜, 『이슬람의 이해』, 110-111.

(미주 3) 쉼멜, 『이슬람의 이해』, 45-46.

(미주 4) 안 마리 델캉브르, 『마호메트: 알라의 메신저』, 은위영 역 (서울: 시공사, 1997), 118; 꾸란이 문자로 기록된 것은 660년의 일이다. 피터 브라운, 『기독교 세계의 등장』, 이종경 역 (서울: 새물결, 2004), 274.

(미주 5) 쉼멜, 『이슬람의 이해』, 47.

(미주 6) 쉼멜, 『이슬람의 이해』, 29.

(미주 7) 아제딘 겔루즈, 『코란』, 이인철 역 (서울: 영림카디널, 1998), 41.

(미주 8) 이희수, “공존과 충돌의 역사를 통해 본 이슬람”, 「신학사상」, 제51호 겨울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2001), 44.

(미주 9) 토마스 이디노풀로스, 『예루살렘』, 이동진 역 (서울: 그린비, 2002), 329-330.

(미주 10) 쉼멜, 『이슬람의 이해』, 108.

(미주 11) 전재옥,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만남”, 「신학사상」 제51호 겨울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2001), 47.

(미주 12) 전재옥,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만남”, 54.

(미주 13) 이희수, “공존과 충돌의 역사를 통해 본 이슬람”, 32.

(미주 14) 조셉 폰타나, 『거울에 비친 유럽』, 김원중 역 (서울: 새물결, 1999), 87.

(미주 15) 루드비히 하게만, 『그리스도교 대 이슬람』, 채수일 역 (서울: 심산, 2005), 32-33.

(미주 16) 폰타나, 『거울에 비친 유럽』, 84-85.

(미주 17) 전재옥,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만남”, 50.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