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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악마 사이》의 독일과 독일인 그리고 우리들‘헬무트 틸리케’의 《신과 악마 사이》를 독해하는 한 방법
이정훈 | 승인 2022.05.20 06:03
▲ 헬무트 틸리케의 역작 《신과 악마 사이》 ⓒ복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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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독일. 어떤 상황 한 가운데 독일은 존재했을까. 20세기 최악의 ‘악마’라 불리는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을 지배하고 있었다. 악마 히틀러의 시작은 어떠했을까.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히틀러를 히틀러로 만들었던 한 사건, 1920년 2월 24일, 뮌헨의 커다란 맥주홀 ‘호프브로이하우스’에 모인 2천 명에 가까운 그의 동지들에게 자신들의 운동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다. 일명 ‘나치’로 더 익숙한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약자로 NSDAP)이다.

독일 역사의 전면에 히틀러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사회적 계기가 필요했다. 1929년 이른바 ‘검은 목요일’로 시작된 경제대공황으로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업자 수가 6백만 명으로 불어난다. 배고픔의 시기가 도래한다. 이 당시를 묘사한 장면 중 하나는 화폐로써의 가치를 상실하고 종잇조각으로 전락한 ‘마르크화’를 집안 난방을 위해 땔감으로 집집마다 사용했다는 일화이다.

국가적 재앙 앞에 민주주의 정당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나치당은 18.3%의 득표로 독일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2 당이 된다. 하지만 연립내각에 입각하기를 거절하고 나치의 단독 집권을 요구한다. 히틀러는 1932년 4월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로 출마 1,340만 표(36.8%)까지 득표했지만 ‘파울 폰 힌덴부르크’(당시에는 장군이었다)에게 패한다.

7월 총선거에서는 37.3%를 득표해 압도적인 당세를 과시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연립내각 참가를 거절한다. 그러나 11월 총선거에서는 33.1%로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당세가 쇠퇴해지는 듯 했으나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자본가나 농업계를 비롯한 지배세력의 많은 사람들이 히틀러를 지지한다.

계속되는 경제와 정계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힌덴부르크는 1933년 1월 30일 히틀러를 총리에 임명한다. 그 후 보수파와 군부의 협력을 얻어 좌파 세력,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파 인사 등 반대파를 감금, 납치, 암살, 고문, 불법적인 재판과 처벌 등의 방법으로 탄압하고, 기존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능함을 강조해 히틀러는 엄청난 인기를 모은다. 1933년 7월 일당독재(一黨獨裁) 체제의 기틀을 확립한다.

1934년 8월 힌덴부르크가 죽자 국민투표를 실시해 총리가 대통령의 지위를 겸한다. 그 지위를 ‘퓌러 겸 국가수상’(Führer und Reichskanzler), 통칭 ‘퓌러’(Führer)라 했으며 보통 ‘총통’으로 불린다. ‘총통 히틀러’의 시대의 서막이 열린다. 그리고 올림픽 역사에 오점을 남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성대히 개최된다.

총통에 취임하기 이전부터 히틀러는 세계 정복의 야심으로 가득했다. 히틀러에게 이는 단순한 꿈이 아니라 실현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전 세계를 정복하면 전 세계의 수도에 해당되는 도시를 계획한다.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를 고용, 1938년 인구 1억 명의 세계의 수도 ‘게르마니아’를 ‘베를린’에 건설한다. 게르마니아를 조성하기 위해 슈페어는 오랜 역사의 문화적 흔적들을 모두 지우고 무려 7km에 달하는 직선도로를 건설한다. 도로 끝에는 300m가 넘고 18만 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돔의 국민대회당(Grosse Halle)을 세웠다.

급기야 1939년 9월 1일 히틀러는 그의 야망을 위해 선전 포고도 없이 폴란드를 침공해 전대미문(前代未聞) 혹은 미증유(未曾有)의 인간 학살이 자행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그렇다, ‘헬무트 틸리케’의 책, 《신과 악마 사이》(손성현 옮김 [서울: 복있는 사람, 2022])가 출간된 독일 상황은 이러한 격변의 시대 한 가운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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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케는 ‘서문’(1955년에 출간된 3판의 서문이다)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당하신 시험을 다루고, 인간이란 언제든지 시험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다루는 이 작은 책은 1938년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과 민감한 문제들을 너무 직접적으로 건드리지는 않으면서, 이데올로기적 폭정으로 인해 극심한 시험에 빠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굳건하게 하려는 마음이었다.”(19, 이하 괄호 안의 숫자는 이 책의 쪽수이다)

그렇다, 틸리케가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은 너무도 분명하다.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과 민감한 문제들을 너무 직접적으로 건드리지는 않으면서, 이데올로기적 폭정으로 인해 극심한 시험에 빠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굳건하게 하려는 마음”의 발로였다. 항간에 잘못 회자되는 것처럼 이 책은 설교집이 아니라 짧지만 그의 신학 저술이다.

틸리케는 서문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이것은 하나의 작은 조각에 불과한 이 책이 시대를 초월하는 무슨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황당한 생각 때문이 아니라, 그때와 똑같은 심판이 여전히 역사하며 그때와 똑같은 언약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것 때문이다.”(20)

겸손의 말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귀를 울리는 구절이 담겨 있다. “시대를 초월하는 무슨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황당한 생각 때문이 아니라, 그때와 똑같은 심판이 여전히 역사하며 그때와 똑같은 언약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틸리케는 자신의 책이 그 시대와의 대결에서 태어난 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히틀러와 나치의 광기, 그리고 전운(戰雲)이 감도는 그 시대와 틸리케는 대결하며 이 책을 저술했다.

그리고 틸리케의 이 한 구절에 또 눈이 멈췄다.

“고통의 성 예루살렘, 아직 막강하지만 이미 지쳐 가고 있는 로마 제국, 신흥 게르만족, 그 외에도 수많은 마을, 도시, 나라들이 지금 그런 모습으로 서 있다.”(130)

틸리케가 무시간적인 가치를 위해 이 책을 저술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충분하리라. 그렇기에 앞서 이야기했던 “신학 서적”이라는 말을 여기서는 수정해야겠다. 신학 서적이 무시간적 가치를 위해 쓰여지는 경우가 다반사이기에 그러하다. 틸리케의 이 책은 철저히 히틀러와 나치가 득세하던 광기의 시대를 ‘시험의 시대’로 지칭하고 ‘분석’하며 대결하고 있고, 이 광기의 시대를 돌파할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렇기에 틸리케의 이 책을 이 시대와 더불어 독해하지 않는다면 이 책의 독서는 실패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철저히 히틀러와 나치의 시대 독일과 함께 읽는다면 우리의 독서는 성공에 이를지 모르겠다. 틸리케 책에 ‘무시간적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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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악마 사이》라는 책 제목에서부터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가 본다. 책을 처음 대하자마자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였다. 루터는 《노예의지론》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그의 하나님과의 관계의 사건 가운데, 그의 구원이나 멸망의 사건에 있어서 어떠한 자유도 없는데,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세력이나 사탄의 세력 사이에 있다.”

틸리케는 충실하게 루터의 뒤를 잇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 이해에 있어서 그러하다. 이러한 전통 위에 틸리케는 책 곳곳에서 자신의 인간 이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한 구절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 시대를 풍미했던 현상학적 존재론의 향기를 맡곤 했다. 하이데거를 위시한 인간의 깊은 실존 이해를 추구했던 철학 말이다. 예수의 광야 시험을 이야기하지만 이 시험의 근본을 틸리케는 이렇게 이해한다.

“여기, 광야 한복판에서,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땅과 인간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진다.”(25-26)

그리고 자신의 시대를 이렇게 묘사하며 인간의 실존 이해를 넘어 사회 실존을 드러낸다.

“전쟁터가 된 세상, 하나님과 악마의 격전장이 되어 버린 세상을 통과해서 가신다.”(26)

광야 시험 사건을 이 세상과 인간을 사이에 둔 예수와 악마의 투쟁으로 해석한다.

“그 싸움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 곧 세리와 바리새인, 심령이 가난한 자들과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자들, 풍족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 프롤레타리아와 기업가,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 안정적이며 만족스런 삶을 사는 자들, 이 모든 영혼을 위해 싸우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 인하여 죽으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부활하고 또 싸우실 것이다.”(27)

틸리케는 예수의 광야 시험 사건을 일회성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 세상 어디에서든지 벌어질 땅과 인간을 둘러싼 이 투쟁은 늘 계속될 것이고 예수는 그때마다 싸우실 것이라고 단언한다. 인간과 땅을 위해 싸우시는 예수다.

그리곤 이렇게 쓰고 있다.

“그리스도와 악마가 대결하는 이 이야기는 사실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28)

틸리케는 예수의 광야 시험에서 그 시험이 인간에게도 닥쳐오는 현실이라고 강조한다.

“시험에 드는 세상은 저기 바깥에 있고 내 안에는 없다는 생각은 너무나 어리석다. 진정한 문제는 우리 자신이며, 우리 마음속의 바벨론이다.”(52)

그리고 틸리케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상학적 존재론 혹은 실존 이해와 이를 극복하는 길을 동시에 극명하게 보여주는 구절을 만났다.

“죽음과 고독을—어떤 환상에 빠지지 않은 채로—견뎌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뿐이다. 죽음과 지옥과 모든 권세를 이기신 그분 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는 것뿐이다. 우리가 광야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서 우리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아들이 보이신 방법, 곧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위해 싸우도록 하는 것이다.”(60)

틸리케는 인간 내면의 실존을 분석하며 형이상학적으로 흐를 수 있는 부분을 물질적인 차원으로 확대해 간다.

“예수의 시험은 정신의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너무나 구체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어쩌면 너무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현실적인 육체적 문제, 곧 굶주림의 문제에서 시작된 것이다.”(63)

“시험은 생각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구체적인 현실에서 생각이 나온다. … 굶주림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현실이다.”(70)

우리가 시험을 당하는 지점은 생계유지, 삶의 만족과 안정 또는 몰락, 굶주림 등과 관련된 핵심적인 부분이다. 바로 거기서 의심 가득한 생각, 언제라도 시험에 빠져들 만한 생각이 늪의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 신적 사유에 있어서 현실주의는 우리 몸의 실존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몸은 그분에게 중요하다. 또한 그분은 우리의 몸에—비유적으로—그만큼 중요하다. 영원한 말씀이 친히 육신이 되어,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자신을 단단히 묶어 놓지 않았던가? … 우리의 몸, 우리 삶의 현실, 먹고 사느냐 굶어 죽느냐를 다투는 현실, 이런 것이야말로 시험하는 자가 회심의 일격을 가하기 좋은 약점 중의 약점이다. 가장 시험에 빠질 만한 생각이 바 로 여기서 솟아오른다.(71)

틸리케의 이러한 목소리가 사뭇 다른 논조를 띠며 등장하는 구절이 있다.

“그(사탄)의 영향력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의 토대 위에 있을 때, 그리스도교를 긍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토대 위에 있을 때 가장 막강하다. 교회 안의 유혹자, ‘다른 길을 가르치는 자’가 그토록 위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76)

나는 이 구절을 그 당시 히틀러를 찬양하기에 바빴던 독일 그리스도교를 비판하는 것으로 읽었다. 히틀러를 하나님의 보내신 메시아로 찬양했던 독일 그리스도교 신학자들과 신자들의 내면을 향한 질타로 이해했다. 과하다고 비판 받을 수 있겠으나 그러한 비판은 달게 받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백미라고 해야 할까 하는, 이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철저히 개인적인 감상인데, 그 당시 히틀러의 반대편에 서 있던 이른바 “바르멘 신앙고백”에 함께 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과 궤를 같이 하는 하나님 이해를 언급한다. 그 당시를 풍미했던 주류 독일 신학자들의 신론을 비판한다.

“권능의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현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을 가지고 계산을 한다.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한다. 그 신을 이용하여, 본래는 위험스러운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종교적 고민을 진정시키기 도 한다(먹고사는 문제를 제외하면, 종교 문제만큼 인간의 역사를 채찍질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 없음을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권능의 신을 아편과 함께 섞는다.”(104)

이 외에도 틸리케가 분석한 인간과 실존 이해는 도처에 차고 넘친다. 이를 발견하는 과제는 독자에게 맡겨두려 한다. 물론 내 시각이 틀릴수도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루터에 관한 전기에 있어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하이코 오버만(Heiko A. Oberman)은 자신의 책 《Luther: Mensch zwischen Gott und Teuferl》 (Berlin: Pantheon Verlag, 2016) 서문의 흥미로운 구절 하나를 소개한다.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가톨릭적인’, ‘개신교적인’ 혹은 ‘근대적인’ 루터가 아니다. …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과 악마 사이에 있는 루터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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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무트 틸리케가 한국에서 통용되는 복음주의 신학자라면 그의 ‘시가’(담배) 사랑은 무엇으로 설명할 텐가. ⓒGetty Image

지금부터 쓰는 부분은 오로지 나의 상상이기에 번역자와 출판사에게 누(累)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먼저 독일어 원제는 《Zwischen Gott und Satan》이다. 단어 그대로 번역하자면 “하나님과 사탄 사이”이다. 

이렇게 번역하고 보면 독일어 제목은 굉장히 강렬하다. 한글 번역본 제목이 이러한 강렬함을 약화시킨 것으로 읽힌다. ‘하나님’을 ‘신’으로 번역한 것은 일반적인 번역어라 덜 아쉽지만 ‘사탄’을 ‘악마’로 해석한 것은 많이 아쉽다.

저자인 틸리케가 일반적인 의미에서 ‘악마’를 지칭하려고 했다면 아마도 ‘Teufel’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앞서 소개한 오버만의 책 제목처럼 말이다. 물론 ‘토이펠’도 기독교에서 통용되는 ‘사탄’의 뜻도 포함한다. 하지만 둘의 기원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토이펠’은 ‘고대 고지 독일어’ 즉 750년경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독일어의 일종으로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본다. 반면 ‘사탄’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에서 유래한 더 오래된 단어로 본다. 훨씬 더 기독교에 가깝다.

틸리케가 신학자이듯 그의 관심은 기독교에 있다. 책의 유통을 위해 순화시켰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저자의 의도대로 《하나님과 사탄 사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독자들에게도 더 강렬하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이 책의 독자는 기독교인이 대부분일 테니까. 혹여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더 분명하지 않을까.

하기야 이성의 발달과 과학 기술의 발전은 더 이상이 형이상학적 존재들을 상상할 수 없는 시대이니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이 책의 번역이 좋지 않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과정 섞인 이야기가 아니라 번역본을 읽으면서 이렇게 감동해본적이 드물었던 것 같다. 저자와 번역자를 가리고 책 본문만 보았다면 한국인 저자가 썼다고 해도 될만큼 훌륭한 번역이었다. 번역자인 손성현 박사의 번역 작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 책의 번역은 놀랍다. 언젠가 기회 닿는다면 훌륭한 책을 너무 잘 번역해 주어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5

이제 한국 신학계 일부에서 틸리케를 전유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하고 글을 마치자. 먼저 기독교 신학은 한국 혹은 더 넓게는 동양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서구 유럽에서 발흥하고 성장하고 발전했다. 한국은 수입자의 입장이다. 이 수입자의 입장이라는 말은 누가 어떻게 수입해 소개하느냐에 따라 현지에서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는 뜻을 포함한다.

가령, 서구의 한 신학자를 전공하고 돌아온 한국 신학자는 자신이 그 학자를 전공했기에 그 학자에 대한 존경심과 학문성에 탄복해 그의 주저들과 사상을 소개한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학자를 소개하는 방향에 있어 소개자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서구의 그 학자가 그 지역 내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 이 글의 중심인 틸리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틸리케와 관련해 이런 일화가 있다. 틸리케의 명성이 높아지자 미국 땅을 밟게 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미국에서 틸리케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신학자’가 아니라 ‘설교자로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국에 소개된 틸리케는 그의 설교집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양의 그의 주저는 일절 번역되지 않았기에 일어난 헤프닝이었다.

또 하나, 틸리케가 정말 한국 일부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런 구분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지만, 소위 보수적 혹은 복음주의 신학자였을까. 그의 스승들을 대차게 비판하고 그들과 갈라서 새로운, 아니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보수주의 혹은 복음주의 신학을 제창하고 정립한 신학자였을까.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틸리케는 그런 걸 바라지도 않았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틸리케는 철저히 자신의 시대를 비판하며 신학적 답을 내놓으려고 했던 신학자였다.

그러한 가운데 그의 스승이자 선배들을 혹독하게 비판했기에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을 뿐이었고, 특히 틸리케가 전후에도 그러한 성향을 버리지 않았기에 바르트를 위시해 그의 제자 중 하나인 ‘헬무트 골비처’에게 비판 받았을 뿐이다. 틸리케는 그가 속한 독일 신학의 계승자일 뿐이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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