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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이슬람에 대한 오해이슬람과 그리스도교 (3)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2.05.24 15:51
▲ Sultan Omar Ali Saifuddin Mosque (Brunei) ⓒGetty Image

무함마드에 대한 오해

그리스도교, 특히 중세 유럽 그리스도교의 이슬람과 무함마드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었는지는 무함마드의 이름 표기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무함마드를 보통 ‘마호메트’라고 불렀는데(무함마드에 해당하는 스코틀랜드어 ‘머하운드’가 악마를 의미하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그를 일종의 ‘최고 신’이라고 생각했으며, 무슬림들은 무함마드의 황금상에 경배한다고 말 할 정도였다. ‘황금 마홈상’(황금으로 만든 무함마드의 조상)이라는 용어는 19세기 초 독일 낭만파 시에 이르기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우상숭배를 철저하게 배격했고 스스로를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시종이며, 일개 인간일 뿐이라고 했던 무함마드가 이렇게 왜곡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교 세계가 언어에 무지했기 때문이었다.(1)

무함마드에 대한 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의 또 다른 비난은 그가 여러 명의 첩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15년 연상의 첫 부인인 하디자와 결혼한 후(595년), 하디자가 죽기까지 오직 그녀에게만 충실하였다. 무함마드는 하디자와의 사이에 자이나브, 로카야, 파티마, 움 쿨툼 등 연달아 딸을 낳았다. 물론 사이 사이에 아들이 있었지만 오래지 않아 다 죽고 말았다.

아라비아 사회에서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것처럼 큰 치욕은 없다. 더욱이 아라비아 전통은 무제한으로 중혼을 허락하였고, 부자들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얼마든지 노예로 사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하디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른 처첩을 두지 않았다.(2) 물론 하디자 사후, 무함마드는 아홉 여자의 남편이 되었지만, 이는 과부와 고아를 돌본다는 측면에서 또는 정치적 의도나 사막의 계율에 따른 것이었고, 무함마드는 이 여인들을 철저하게 평등하게 대했다.(3)

여성의 지위에 대한 오해

이슬람 이전의 여성의 지위와 비교하면, 이슬람 법규는 엄청난 발전을 의미했으며 적어도 법조문상으로는 여성이 자신이 지참한 재산이나 스스로 번 재산을 관리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

물론 혼인법은 남성에게 네 명까지의 정실부인과 원하는 만큼의 첩을 허락하고 있다.(4) 그러나 이런 법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세계에서 일부다처의 경우는 생각하는 것만큼 흔하지 않다. 이 경우 남편은 모든 부인을 한결같이 대해야 하나, 그것은 비록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어려운 일이다. 모든 부인을 물질적인 배려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애정이나 정서적인 배려에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공정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건은 결국 일부다처의 금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5)

여성이 머리에 베일을 쓰는 풍습에 대해서도 그리스도교는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머리를 베일로 가리는 풍습은 유다교나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도 널리 행해진 관행으로서 원래 고상하고 품위 있는 몸가짐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점차 여성들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억압적 도구가 되었고, 유산상속의 경우처럼 꾸란의 가르침이나 강령에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관념들이 지배하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6)

지하드

일반적으로 ‘거룩한 전쟁’이라고 불리는 ‘지하드’는 ‘하나님의 길에서 전력을 기울인다’, 곧 ‘특정한 목적을 위해 기울이는 열성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이슬람 신도들에게는 특별히 도덕적, 종교적 완성을 위해 기울이는 자기자신에 대한 노력을 의미하고, 공식적인 의미로는 이슬람의 포교를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방위를 위해 벌이는 무장행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도 또 하나의 다른 원칙, 곧 성서에 등장하는 종교들, 성서의 인물들을 숭상하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용인해야 한다는 원칙과 결합해서 나타난다.(7) ‘거룩한 전쟁’이란 개념은 자신의 군사원정을 그렇게 불렀던 십자군으로부터 유래했으며, 이슬람 고전에는 이런 단어가 없다.

메디나에서 계시된 약간의 수라는 진정한 신앙을 위한 전쟁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주로 침략자나 배교자들을 상대로 한 전투로 이해할 수 있다. 수라 9-29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하나님과 최후의 날을 믿지 않고, 하나님과 예언자가 금한 것을 금하지 않고, 참된 신앙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자들은 성서를 가진 백성이라 하더라도 공손하게 인두세를 낼 때까지 투쟁하라’.(8)

개종

이슬람은 다른 종교인들에 대하여 비교적 관대하다. 그것은 꾸란 수라 2-257에서 언급된 것처럼, ‘종교에는 강제가 없다’는 명시적인 말씀 때문이다. 특히 유다교인과 그리스도인, 조로아스터교인 등 계시된 경전을 가진 사람들은 ‘아흘 알-키탑’(성서의 백성)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살해해서도 안되고, 강제로 개종시켜도 안되며, 다만 일정한 세금을 내도록 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무슬림들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를 갖게 되며, 무슬림은 그들을 ‘딤미’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딤마(보호)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 딤미들은 인두세(지즈야) 외에도 일정한 토지세(하라즈)를 내야 했고, 무슬림과 구별되는 색깔의 옷을 입어야 했다.

강제적인 개종은 예나 지금이나 극히 드물다. 실제로 무함마드 사후 백 년 동안에 개종 권장은 없었으며, 700년경에는 그러한 일들이 법으로 금지되기 도 했다.(9) 초창기에는 개종을 오히려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딤미들에게 부과되는 특별세가 재정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비무슬림이라고 해서 직업적 제약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들 중에는 궁정에서 고위직에 오른 인물들도 많았다. 그리스도인이나 유다교인은 의사, 재정전문가, 사무행정가 등으로 발탁되기도 했다.(10)

그러나 배교행위는 극형에 처해진다. 배교자(무르타드)는 ‘하나님의 노여움과 엄벌을 각오해야 한다’(수라 16/108 등)고 꾸란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에 대한 믿음이 가슴 속에 확고하기만 하다면, 강제력에 의한 배교는 대부분 배교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언자를 비방하는’ 범죄가 사형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는 수세기 동안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이다.(11)

미주

(미주 1) 안네마리 쉼멜, 『이슬람의 이해』, 김영경 역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1999), 10.

(미주 2) 안 마리 델캉브르, 『마호메트: 알라의 메신저』, 은위영 역 (서울: 시공사 1997), 36

(미주 3) 델캉브르, 『마호메트: 알라의 메신저』, 105-106.

(미주 4) 꾸란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만일 너희가 고아들을 공평하게 대해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결혼을 할 것이니, 너희가 마음에 드는 여인으로 둘, 셋, 넷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을 공평하게 대해 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긴다면 한 여인으로 족하니라 …”(4:3).

(미주 5) 쉼멜, 『이슬람의 이해』, 95.

(미주 6) 카렌 암스트롱, 『신의 역사 I』, 배국원·유지황 역 (서울: 동연출판사, 1999), 279-280 참조.

(미주 7) 델캉브르, 『마호메트: 알라의 메신저』, 87.

(미주 8) 쉼멜, 『이슬람의 이해』, 102-103.

(미주 9) 암스트롱, 『신의 역사 I』, 281; 토마스 이디노풀로스, 『예루살렘』, 이동진 역 (서울: 그린비, 2002), 300-301.

(미주 10) 적어도 1차 세계대전까지 중동의 이슬람 사회는 소수민족에 대한 지위인정과 다원주의적 공존에 익숙해 있었다. 2천여 년 간 아랍인과 유대인이 상대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함께 공존해 온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이희수, “공존과 충돌의 역사를 통해 본 이슬람”, 「신학사상」, 제51호 겨울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2001), 43; 피터 브라운, 『기독교 세계의 등장』, 아종경 역 (서울: 새물결, 2004), 287; 토마스 이디노풀로스, 『예루살렘』, 317.

(미주 11) 쉼멜, 『이슬람의 이해』, 104-105.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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