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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쓰는 일기장과 화해의 마을, 헤른후트헤른후트에서 온 편지 (1)
홍명희 선교사 | 승인 2022.05.27 15:05
▲ 헤른후트 마을 조성 300주년을 기념해 함께 쓰는 일기책을 담은 나무상자 ⓒ홍명희

독일 사람들은 데모를 좋아하는 민족이라 해야 할까? 내가 살았던 큰 도시에서도 월요일이면 끝도 없는 데모행렬에 차들도 막히고 그랬다. 그런데 그 데모의 이슈가 늘 네오 나치와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이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네오 나치들은 주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외국인들에게 뺏겼다고 생각하는 피해 의식이 있다. 그래서 독일은 독일 사람에 의해 새롭게 건국하자는 주의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애국자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애국주의가 편파적이고 결국은 그 당시 나치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 많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조그만 헤른후트 마을에도 월요 데모가 시작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남편의 휠체어를 밀고 씩씩대고 우리 집 터전의 삐그덕 거리는 나무 대문을 들어 설 때였다. 바로 첫 집에 사시는 할아버지 큐흘러 목사님은 나를 불러 세우면서, 큰일 났다는 듯한 소식을 전해주신다. 당신이 어릴 적 경험했던 나치들의 행렬이 트라우마로 남으셨기에 월요 데모가 하필이면 바로 이 길로 지나가는 게 정말 못마땅하신 모양이다.

물론 그 중에는 여러 좋은 뜻을 담아 평화의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을 줄 모르나, 마을은 결국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게 되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지역은 구 동독지역이고 늘 소위 빨갱이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늘 나뉘어진 경험들을 했었다. 이제 이 새로운 통일 민주국가가 된 구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에도 다시금 갈려야하는 아픔이 내 마음까지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이 분들은 아이들을 앞세워 촛불을 켜고 조용히 걸으며 시위를 한다. 다행이었다. 큰 도시에서는 방화를 하거나 무력이 오고가기도 한다.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때, 월요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다시 보듬으려면 오랜 세월이 지나야한다는 생각이 들자, 점점 정이 떨어져 한국으로 도망할까 하는 맘도 왜 나지 않았을까…

그러나 오늘 나는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단 한명의 한국 사람의 처신이 이들에게 남겨질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하는 나 또한 애국자로서의 책임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이 마을에 사는 한 사람의 한국사람이라는 것이 대표적인 성격이 있기에 늘 행동에 조심스럽다.

이렇게 마음이 뒤숭숭할 때 즈음, 예쁜 나무상자를 들고 에리카가 찾아왔다. 이 상자 안에는 이 마을이 300주년이 되어, 함께 쓰는 일기책이 들어있으니, 함께 참여해서 일기를 적어 후세에 길이 남길 것이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참여하겠다고 받아놓고, 열어보기가 겁이 난다. 열게 되면 써야하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망설였다. 일기를 공유한다는 게 가능한가… 내가 쓴 것이 길이 남을 텐데, 흉이나 잡히지 않을까 하는 겁부터 났다.

내 마음이 이렇게 쪼잔한 줄 몰랐다. 여전히 망설여졌다. 주님… 어떡할까요 하며 던지는 하소연을 하며 나는 나도 모르게 바닥에 베개를 깔고 엎드렸다. 내 어릴 적에 본 아버지는 거실에서 꼭 이런 자세로 신문도 읽으시고, 또 많은 일을 처리하셨다. 부전여전 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 이 자세가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튼 엎드려서, 무언가를 하려니, 남편이 평화로운 얼굴로 나를 신기한 구경거리가 생긴 듯 쳐다본다. 멀쩡한 책상을 놔두고 이상한 퍼포먼스를 하는 아내가 신기한 가보다.

▲ 헤른후트 마을 300주년 음악회 ⓒ홍명희

드디어 나무 상자를 열었다. 두꺼운 노트와 필기도구들이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이 일기장은 특별히 365일을 향하여 빼곡히 1월 1일부터 시작해서 여러분이 글을 쓰셨다. 대부분 300주년을 축하한다는 내용과 매일의 소소한 이야기들이었다. 남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쓰고 싶은 마음이 불쑥 나왔다.

나는 우선 한글로, 헤른후트 마을의 300주년을 축하한다는 축전을 썼다. 그리고 나서 한국 사람으로 이 마을에 첫 등록하여 살고 있다는 소개를 했고, 나의 고향 친구들은 이 마을에 오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별로 변하지 않게 잘 가꾼 노력에 감탄한다고 썼다. 또한 산책길에서 만나는 헤른후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일이 내게는 큰 기쁨이라는 이야기며, 앞으로도 마을에 더 알아가야 할 많은 분들에 대한 기대도 썻다. 맨 마지막에는 누구처럼 안녕 하라, 헤른후트여! 하고 마무리 했다. 다행히  일기에는 누구도 월요 데모에 대해 이러쿵 저라쿵 얘깃거리로 삼지 않았다.

이렇게 서로의 삶을 나누고 하다보면 나뉘인 것보다 함께 하는 부분이 더 많다고 여겨질 수 있으리라 희망도 해본다. 일기상자를 들고 얼른 윗 층에 사시는 길레 할머니에게 전해 드렸다.

이렇게 상자는 일 년 내내 이 집 저 집으로 다니며 재미있는 얘깃거리를 싣게 될 것이다.

헤른후트 마을이 시작되고 몇 년 되지 않았을 때에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있었다. 폴란드와 체코 등의 개신교도들인 모라비안들이 헤른후트에 자기들 형제단의 신앙적 전통을 가져오면서 헤른후트 사람들과 마찰이 크게 났던 것이다. 진젠도르프는 일일이 주민들을 찾아가 성경구절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화해해야한다는 대답을 받아내었다. 그리고는 한 날 한시에 아랫마을 베르텔스도르프 교회에서 화해의 성만찬을 들자고 약속했다.

약속한 날 헤른후트 사람들은 천천히 걸어 내려가면서, 이미 화해의 무드를 조성하게 되었다. 예배실에 들어서자마자  성령이 그날 임했다고 한다. 8월 13일 하루 종일 성만찬과 함께 회개와 축제 같은 예배를 내내 드리게 되었다. 이 사건은 마을이 다시 하나가 되는 큰 사건으로 지금까지 그날만 되면 전부 아랫마을로 걸어 내려가 예배를 드린다. 올해에는 더 기대가 된다. 월요 데모로 인해 갈려진 마음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이니까… 그날이 기다려진다.

홍명희 선교사는 장신대 기독교 교육학과 졸업 후 독일 튜빙엔에서 실천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복민(福民) 교육원 섬겼고, 현재는 슬로바키아 및 독일 헤른후트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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