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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 한밝 변찬린 성서해석의 사유 근거Ecce Liber: 한국 영성의 대폭발과 세계 성경해석 전통의 대전환 - 『선(禪),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문사철, 2022) (1)
이호재 원장(자하원) | 승인 2022.05.27 15:56
▲ 『선(禪),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 개정신판(2022)

왜 『선(禪),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을 읽어야 하나

『선(禪),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출판사로부터 전해 들었다. 변찬린을 세간에 알린  『성경의 원리』는 오히려 이 책의 사유적 준거를 바탕으로 꽃피고 열매 맺은 한 단면에 불과하다. 이 책은 평자와 깊은 사연을 가진 책이다.

대학 시절에 변찬린 선생의 댁에 찾아갔던 어느 날 검은 대학노트에 적힌 이 책의 원본에 눈길을 주자 변찬린 선생이 읽어보라고 주어 집에 돌아와 밤새워 읽은 기억이 있다. 뿐만 아니라 평자가 지은 변찬린 연구서가 나온 출판사에서 이 책을 출판하며 해제를 의뢰하기에 소중한 인연을 생각하여 흔쾌히 수락하였다.

변찬린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하면서 늘 아쉬웠던 점은 『성경의 원리』 4부작 이외에 다른 변찬린의 저작물이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변찬린을 성서학자 등 그리스도교의 이미지만 부각되고 있다. 변찬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선(禪),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과 『성경의 원리』 가 반드시 같이 읽혀야 한다.

전자를 읽지 않고 후자만 읽으면 세계경전의 큰 관점이 포착되지 않는 채 그리스도교의 경전을 해석한 ‘성서의 원리’로만 읽힐 가능성이 크며, 전자만 읽고 후자를 읽지 않으면 단순한 문명사가 혹은 영성가가 깨달음의 열매를 저술한 거대 영성담론으로만 오해할 수도 있다. 변찬린 연구자의 입장에서 변찬린의 사상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책을 반드시 읽혀져야 하며, 굳이 독서의 순서를 매긴다면 『선(禪),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을 읽은 후 『성경의 원리』 를 읽기를 권장한다.

한국 전통 종교의 왜곡과 한국적 신학의 부재 현실

한국의 다원적 종교전통에 외래종교인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것은 삼백 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폭발적인 양적 교세 성장으로 한국 종교시장의 주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구신학의 성서해석학적 전통을 바탕으로 형성된 천주교와 개신교가 한국에 전래되어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뿌리내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종교문화적 공간은 화이세계관에 의해 굴절되고, 그리스도교 세계관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 특히, 무맥(巫脈)에 의해 선맥(僊/仙脈)은 은폐되고 있다. 종교적 신앙측면에서 동이족의 신선신앙은 방사에 의해 중국의 제도도교로 변질되었고, 성서의 변화사건과 부활신앙은 서구 신학자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오해되고 있다. 창발성이 결여된 무교적인 수동적 기제에 바탕을 둔 토착화 신학자들은 유교와 불교와 무교의 맥락에 따라 각자의 신학을 다양한 모델로 유형화하고 있는 것이 한국신학의 현주소이다.

한국신학은 선교신학의 입장에서 한국 종교문화가 그리스도교에 의해 완성되어야 한다는 성취론이 내재화되어 한국 종교전통을 환원론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토착화 성과물인 풍류신학은 ‘풍류=선(僊)’의 도맥이 경시되어 풍류를 오해한 무교신학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 신학자가 다양한 특정 신학을 주창하지만 통전적인 성서해석을 할 수 있는 ‘신학’은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신학자가 교단신학과 선교신학이 내면화되어 우리의 삶의 정황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새로운 성서해석을 한다는 것은 발상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적 성찰을 해야 한다. 세계 신학계의 동향에 밝은 김흡영은 이렇게 내부보고를 하고 있다.

나는 최근 들어 세계 굴지의 출판사들로부터 한국 성서해석학에 대한 글을 요청받고 있다. (중략) 얼마 전에는 세계 성서학계에서 가장 크고 권위 있는 학회인 성서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SBL)로부터 한 저술 프로젝트에 서구적이지 않은 한국의 독특한 성서해석학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담당 편집자는 글을 요청하며 안병무의 민중 성서해석학조차도 불트만의 성서신학에 많이 의존했기에 한국적이라 보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했다. 그래서 몇몇 원로 성서학자들에게 연락해보았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심지어 한 중견 성서학자는 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한국 성서학자는 그런 것을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편집자인 미국 한인 2세 성서신학자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듣기 민망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한국 성서신학자들의] 실제 글들을 읽어보면 대부분의 각주와 출처는 전통적인 백인, 서양, 유럽 중심의 성경 연구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심지어] 일부 글에는 한국인이나 한국인 디아스 포라의 정체성, 역사, 맥락, 문화, 공동체 및 전통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성서연구와 한국 성서해석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요? [지금처럼] 유럽 중심적 기반, 그러니까 서구의 자본주의와 식민지 프로젝트의 영속화를 돕는 것이 아닌, 한국의 역사, 개념, 체계, 전통들을 중시하고, 발전시키고, 즐기는 것으로서 말입니다. 그 질문이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한국 성서신학이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이 정도 수준으로 인식되는지 몰랐다. 오죽했으면 신학자인 내게 성서해석에 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할까? 현재 한국의 성서학과 신학의 민낯이 우리의 2세 신학자에 의해 들춰진 것 같아 창피했고, 또 서글펐다. 그나마 이러한 비판적 견해는 그가 1세가 아니고 2세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도 미국에서 신학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신학을 공부하면 시작부터 신학교육의 지배담론인 백인 중심적 서구신학으로부터 백인이 아닌 동양인 신학도로서 자기 신학의 정체성에 대한 확실한 규명이 요구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종교문화를 포함한 사회적 위치(social location)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자리매김 없이 세계 신학계에서 자기의 신학 담론을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1)

 

미주

(미주 1) 김흡영, “도(道)의 신학이란 03- 성서와 도의 신학”, 『기독교사상』 (751), 2021, 168-169.

이호재 원장(자하원)  injich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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