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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독일 자유주의 신학의 정신과 바르트의 비판칼 바르트의 신학에서 그리스도와 문화 ⑵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2.05.28 15:56
▲ 19세기 독일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신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프리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 ⓒGetty Image

바르트에 의하면 자유주의 신학은 “데카르트(Descartes)를 계승하는 신학으로 근대적인 세계관의 틀 안에서 기독교에 관심하고, 따라서 하나님, 즉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이 근대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바라봄으로써 성서의 메시지와 교회의 전통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인본주의적 혹은 인간중심주의적 신학이다.”(1) 자유주의 신학의 모든 전통은 신학과 성서 주석조차도 단지 일반적으로 인정되거나 혹은 유력한 세계관의 틀 내에서만 추구될 수 있을 뿐이라는 가정에 의해 지배되었다.

독일 자유주의 신학의 시작과 발전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은 슐라이엘마허(Schleiermacher)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낭만주의적이고 관념주의적인 철학 사상과 자연 과학이 이룬 놀라운 성과를 전적으로 수용하여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 결과, 그의 신학적 체계는 인간중심주의적인 것이 되었다.

그의 사상의 중심은 인간의 종교적 자의식에 있었고, 그것이 그의 신학의 출발점과 중심적 대상을 형성했다. 그에 의하면 신학은 기독교인의 경건한 자의식이 표현하는 것을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의 경건으로 대체되었다.(2) 물론 슐라이엘마허도 하나님의 객관성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바르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단지 “큰 소리로 인간에 대해 말함으로써”(3)만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그의 신학에서 주체였고 하나님은 술어였다. 즉, 슐라이엘마허와 그의 추종자들이 관심하던 하나님은 성서 안에 계시된 거룩하고 초월적인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 자의식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의식에서조차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정신 안에 내재하는 영원자였다.(4)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정신이 인간의 모든 위대한 노력에 영감을 주고 문화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들 가운데 하나인 종교를 발생시키는 보편적인 성향이나, 혹은 무한자에 대한 의식을 지니고 있는 문명의 영혼으로서 문명 전체에 널리 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또한 각각의 종교는, 기독교가 그것의 가장 최고의 위대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단지 인간 정신의 하나의 특별한 실현일 뿐이라고 가정했다. 이러한 경향은 위대한 자유주의 교회사가인 아돌프 하르낙(Adolf Harnack)에게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1899-1900년 겨울 학기 동안 베를린 대학 신학부에서 그의 유명한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을 강의했다.

이 강의에서 그는 정신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적 신앙에 도취되어 “하나님과 세계”, “문화와 종교”, “신앙과 사고”, “신적 질서와 지상적 질서”, “권좌와 제단”을 혼합 내지는 자연적인 조화로 연결시켰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시민적 이상주의 시대를 피력했다.(5) 여기서 기독교는 당대의 유럽 문화와 동화되고, 그 문화의 절정으로 정당화되었다. 기독교는 현대 세계의 가장 예민한 특성으로 설명되고, 기독교의 신앙은 인간이 성취한 문화의 가장 깊숙한 성소에서 타오르는 거룩한 불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성서, 특히 신약성서의 놀랍고 독특한 요소들을 복된 소식으로, 계시의 완전한 신적인 현실로, 위로부터 내려오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돌입 등으로 만드는 모든 것은 현대 세계의 시민적 문화 속에서 희석되고 무력하게 되었다. 바르트가 그의 주변의 스위스나 독일에서 발견한 기독교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정신이나 삶으로부터 구별될 수 없는 동일한 것의 표현이었고, 유럽 문화의 역사적인 삶의 한 형식에 불과한 것이었다.(6)

이런 식으로 그 세계의 일부가 된 교회는 더 이상 그것에 맞서서 그 세계에 진정한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를 전할 수 없었다. 교회가 말하고 행하였던 것은 세상 사람들이 바라고 원했던 것과 너무 잘 어울렸다. 기독교가 이렇게 그 문화와 동화되고 그것의 일부가 되어 버렸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기독교의 참된 메시지가 전달되고 실제로 선포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바르트가 1909년 스위스 개혁교회에서 목회의 길에 들어섰을 때 직면한 사태였다.(7)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바르트의 비판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두 가지 중요한 비판을 했다. 우선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를 인간 정신의 발전에서 가장 위대하고 필수적인 요소로 주장함으로써, 기독교 신학으로서의 고유한 신학적 기능을 포기하고 정말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말하자면, 그 신학은 문명과 문화의 일반적이고 주된 과제에 봉사하는 것을 그 자신의 신학적 과제로 삼았기 때문에, 기독교를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방법과 원리들 혹은 철학적인 반성과 상충되는 방식으로, 즉 기독교 그 자체의 내적인 논리와 필연성에 비추어 해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르트가 19세기 신학과 20세기의 옹호자들을 비난하였던 다른 하나의 이유는 그들이 신앙의 대상과 내용보다는 신앙 그 자체에, 하나님에 대해서보다는 종교적 자의식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관심의 초점과 신학의 일차적인 주제는 인간 자신의 영과 경건이었고, 하나님은 뒷전에 있었다. 이렇게 19세기 신학은 인간의 자기 이해 가운데서 신앙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고, 그 결과 기독교의 메시지는 인간의 창조적인 영성의 표현으로 바꿔졌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용서하려고 우리에게 오시는 하나님은 주관성의 구름 뒤로 사라지고 그 대신에 그의 자리는 종교적 인간중심주의의 심연에서 밖으로 내던져진 신화적인 투사(projection)가 차지했다. 그들은 신학을 인간학의 어떤 형식으로 환원시켰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제기하였던 가장 날카로운 비난이었다.(8)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젊은 시절 한때 자유주의 신학자로 자처했던(9) 바르트가 어떻게 하여 자유주의 신학을 극복하고, 그와 같은 근본적인 비판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는가?

미주

(미주 1) T. F. Torrance, Karl Barth: An Introduction to his early Theology, 1910-1930 (London: SCM Press LTD., 1962), 33.

(미주 2) H. Zahrnt, The Question of God: Protestant Theology in the Twentieth Century (London: Collins, 1969), 38.

(미주 3) K. Barth, 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New York: Harper and Row, 1957), 196.

(미주 4) T. F. Torrance, Karl Barth: An Introduction to his early Theology, 1910-1930, 57.

(미주 5) H. Zahrnt, The Question of God: Protestant Theology in the Twentieth Century, 16.

(미주 6) T. F. Torrance, Karl Barth: An Introduction to his early Theology, 1910-1930, 34.

(미주 7) T. F. Torrance, 『칼 바르트, 성서적 복음주의적 신학자』, 최영 옮김(서울: 한들출판사, 1997), 15.

(미주 8) T. F. Torrance, Karl Barth: An Introduction to his early Theology, 1910-1930, 58이하.

(미주 9) Eberhard Busch, Karl Barth: His Life from Letters and Autobiographical Texts (Eugene, Oregon: Wipf & Stock Publishers, 2005),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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