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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하고 이상한 나라의 「새가정」은 수상하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다이영미 한국기독교가정생활협회 총무가 말하는 가정이란
정리연 | 승인 2022.05.30 01:29
▲ 이영미 한국기독교가정생활협회 총무는 오랜 기관목회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목회에 대한 꿈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정리연

한국기독교회관 5층에는 에큐메니안을 비롯해서 다양한 사무실이 있다. 교계 단체도 있고 일반 단체도 있는데, 문에 붙어 있는 작은 명패를 일일이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2년이 넘도록 ‘새가정’ 사무실의 존재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실은 지나가면서 얼핏 본 적이 있는데 이름이 주는, 뭔가 수상한(?) 느낌 때문에 같은 교계 단체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 후로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곧장 오른쪽으로 돌아서 에큐메니안 사무실로 직행하곤 했으니, 엘리베이터 왼쪽에 있는 ‘좀 수상한 것 같은’ 사무실은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던 중에 에큐메니안 대회협력국장님의 소개로 ‘그’ 단체의 총무님을 소개받게 되었다. 함께 사무실로 가면서 국장님께 속삭였다.

“(작은 목소리로) 앗, 여기 이상한 곳 아니었어요?”

새가정, 정체가 뭐니

이럴 수가!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어쩜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창간된 월간 「새가정」은 “1954년 1월 창간호를 시작으로 지금껏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고 한다.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전하는 기독교 여성·신앙·가정 전문지로 현재 7개 교단의 교회 여성들이 연합하여 제작하며, 기독교 가정뿐만 아니라 군부대, 병원, 교도소, 복지관 등 전국 각지로 배포되고 있다(한참 후에야 몇 년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작은 책자로 만났던 기억이 났다). 환한 웃음으로 반겨 주시는 이영미 총무님(새가정•한국기독교가정생활협회 총무, 목사)께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목사님, 죄송한데요. 저는 ‘새가정’이 통일교나 이단 뭐, 그런 거 비슷한 걸로 알았어요.” 하면서 멋쩍게 웃었다. 그런데 목사님 말씀을 듣고 다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통일교에 ‘참가정’이라는 잡지가 있거든요. 이름이 비슷해서 그런가 봐요. 올해 초 친구에게 ‘나 새가정 총무로 가게 됐어!’라고 말했더니 친구가 ‘새가정? 너 왜 그런 이상한 데를 간 거야?’ 말하더라고요. 하하하.”

이영미 총무님의 호탕한 웃음으로 오해해서 미안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으니, 가벼운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 자기소개!

“우리 가족은 예장통합 측 교회에 다녔어요. 그런데 가톨릭 고등학교에 입학했어요. 그 학교 교복이 제일 예뻤거든요. 하하하”

이영미 총무님이 자기소개 중 이 이야기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공감이 간다. 고등학교 때 교복이 너무 안 예뻐서 싫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93년도에 대학에 입학해서 지금의 남편(김보현 목사)을 만났어요. 제가 첫눈에 반해서 쫓아다녔거든요!”

총무님의 첫인상(내향적일 줄 알았는데)과 너무 다른 느낌을 받아서 “어머 어머!!”, “아, 정말요?”, “우와!”를 연발했다.

“어떤 모습을 보시고 한눈에 반하셨어요?”

“제가 신입생 때 남편은 3학년이었는데, ‘민중신학회’ 회장이었어요. 생활하는 모습이나 말하는 걸 보면서 ‘아, 예수님이 93년도에 오신다면 분명, 저 모습일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톨릭 고등학교에서 만난 좋은 수녀님과 선생님들 덕분에 지금의 심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그게 아니라 본래 선한 심성이신 듯), 운동권 선배들이 자신을 반기지 않았지만(자신들과 전혀 같은 부류로 보이지 않아서, 뾰족구두에 미니스커트를 입는 여학생이었다고 함), 한눈에 반한 회장 때문에 기어코 민중신학회에 들어갔고 열심히, 빠지지 않고 활동했던 것 등 총무님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이야기가 너무 재밌고 감동적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더니 예상했던 인터뷰 시간의 1/3이 지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하.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마음이야

▲ 어떻게 기관에서 활동하게 되셨나요? 목회에 대한 꿈은 없으셨나요?

7년 연애 후 결혼했는데 저희 꿈은 나이 마흔이 되면 부부가 함께 공동목회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때까지 저는 기관목회로 남편은 현장목회로 사역하는 것이 상생의 길이라 여겼지요. 물론, 제 성향상 다양한(교육, 행정, 상담, 에큐메니칼 연합운동 등) 사역을 할 수 있는 기관목회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이유도 크고요. 학부 때 여신학생과의 만남에서 알게 된 ‘기장 여신도회 전국연합회’가 제 목회의 길에 귀중한 터전이 되었어요. 이제 남편은 50줄에 들어섰고, 저는 40대 후반인데도 공동목회에 대한 꿈은 아직 이루지 못했네요. 1999년부터 시작하여 기관에서 활동한 지 23년이 되어 가지만 저 역시 현장목회에 대한 꿈은 남아 있습니다.

가정은 혈연공동체 사회의 최소단위이며 사회생활의 기본단위이다. 자녀들은 가족과 상호작용을 통해 인격이 형성되고 사회화된다. 가정은 애정적 기능, 보호 기능, 경제 및 사회적 지위 부여 기능, 사회화 기능 등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가정이 꼭 혈연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1인 가정, 입양 가정, 반려동물 가정, 동성 가정, 다문화 가정, 재혼 과정, 한부모 가정, 조부모 가정, 청소년 가정 등 다양한 모습의 가정이 있다. 또한 가정 내 많은 기능과 역할이 교육기관이나 단체로 이전되었다. 사회와 가치관, 상황의 변화에 따라 흔히 말하는 전통 가정(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에서 벗어난 지 오래고, ‘전통 가정’이라는 말 자체가 거북스러워진다.

하지만 ‘가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 사람의 일생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 1954년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발행된 모든 「새가정」을 저렇게 보관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자유롭게 공개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리연

▲ 1954년에 출발한 ‘새가정’이 2022년도에도 여전히 어떤, 의미와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새가정」 잡지는 원래 기독교서회에서 「기독교가정」이라는 제호로 발행되던 잡지였어요. 그걸 인수해서 1954년 1월 「새가정」 창간호를 발행하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새가정」이라는 제호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창간호를 발행할 당시 「새가정」이라는 제호는 6·25 전쟁 직후 폐허가 되었던 한국 사회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은 무너진 가정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새로운 가정을 세우자’라는 취지였지요. 시대가 많이 흘러 현재 「새가정」이라는 제호가 촌스럽고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이름 속에 담긴 근본정신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가정을 새롭게 세워가는 일은 중요한 일이니까요. 「새가정」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늘 새롭게 변화되어 가는 가정, 새롭게 세워져 가는 가정이 되자는 의미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 앞의 질문과 연결되는데요, 가정의 개념이 급격히 변화되는 오늘의 상황에서 ‘새가정’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전통적 가정개념이 급격히 변화되었다 해도 가정이라는 근본적인 존재가치는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인 가정, 쉐어하우스 가정, 위탁 가정, 한부모 가정 등 전통적인 가정의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가정 형태들이 나타나고 있지요. 하지만 형태는 다양할 수 있지만 결국 가정이라는 존재 의미가 주는 무게는 변하지 않죠.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말할 때 왜 뒤에 ‘가정’이라는 말이 뒤따라올까요?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가정이 내포하는 의미는 동일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새가정」이라는 잡지의 이름도 가정이라는 존재가치를 근거로 하면 매우 의미 있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몇 차례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만, 그때마다 오랜 시간 「새가정」이라는 잡지와 함께 헌신하고 애쓰셨던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 고백이 담긴 「새가정」이라는 이름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외형적으로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진 이름 같지만 새가정 가족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랑스러운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가는 신앙이 필요한 시대

듣고 보니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다. 시대가 아무리 변한다고 한들, 지켜야 할 것도 있는 거니까. 그러나 코로나19는 사회와 교회의 많은 모습을 바꿨다.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까지 변화시켰다. 그중에서 크리스찬 부모로서 가장 크게 와닿은 건 교회학교다. 코로나 이전에는 교회가 어린이 혹은 청소년들의 신앙교육을 담당했는데(신앙의 기초교육이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정이 교회에 그 책임을 전가했을 수도 있지만) 코로나는 신앙교육의 책임을 다시금 가정으로 돌려보냈다.

▲ 코로나 이후, 교회학교가 문을 닫았고(온라인으로 이뤄졌던 비대면 예배는 별 효과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여요. 이런 면에서 ‘새가정’ 혹은 목사님께서는 코로나 이후 가정에서 신앙교육은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유대인들은 가정에서의 신앙훈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가족들이 가정이라는 작은 신앙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고요. 삶이 곧 신앙인 셈이죠. 그런데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가정에서의 신앙훈련에 대한 부분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어요. 교육부서, 즉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신앙훈련은 당연히 교회가 책임져야 하고 또 책임져 줄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한 마디로 부모들이 자녀들을 교회에 맡겨버린 셈이죠. 물론 교회도 최선을 다해 아이들에게 신앙훈련을 시켜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코로나를 계기로 지금까지 교회 중심적인 사역의 틀에서 벗어나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의 사역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가정사역, 학원사역, 직장사역이 중요하게 대두되는 이유는 교회 안과 교회 밖에서의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에요. 교회 안에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지만, 가정, 학교, 직장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보게 되잖아요. 삶이 곧 신앙이고, 신앙이 곧 삶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천적인 신앙의 훈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고, 기도를 드리는 것만이 신앙이 아니라 삶의 자리, 즉 가정, 학교, 직장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천적 신앙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신앙훈련인 거죠. 그런 점에서 교회 중심적인 신앙훈련 사역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코로나를 계기로 교회가 변화되어야 할 좋은 때입니다. 교회에 나오게 하고, 교회 안에 머물게 하며,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실천적 신앙의 삶을 통해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작은 신앙공동체라 할 수 있는 가정에서의 신앙훈련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죠. 단순히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신앙훈련을 뛰어넘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 나눔, 섬김, 공감과 같은 신앙의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부모와 자녀가 마음을 모아 작은 실천을 할 수 있는 신앙훈련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네. 그런데 지금까지의 신앙교육은 교리에서 출발하는, 윤리적인 성격이 강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시대, 요즘 추구해야 할 신앙교육의 방향을 짚어주신다면?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앞으로 신앙훈련의 방향은 생활신앙 운동, 즉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신앙의 가치를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해요. 많은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막, 사는 것이 아니에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만,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것이 힘들고 손해 보는 것 같기에 슬그머니 주님의 뜻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거죠. 그리고 주일에 교회에 가면 다시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저는 참된 신앙훈련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머리와 그 말씀을 믿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 만나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인 신앙의 열매를 맺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기록된, 우리가 흔히 성령의 9가지 열매라고 부르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삶이 바로 신앙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앞으로 신앙훈련은 이런 가치의 열매들을 맺으며 살아가는 생활신앙 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우리 새가정에서도 가정생활신앙 운동을 가정사역의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 앞부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흔히 말하는 ‘정상 가정’이라는 개념이 후퇴하고 오히려 폐기되고 있는 현실에서 새가정은 어떤 편집 방향을 갖고 있는지요? 올해 발간된 「새가정」을 중심으로 읽어보았는데요, 다양한 가정의 개념과 모습을 싣기 위해서 애쓰신 게 보이더라고요.

솔직히 정상 가정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가정이 있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가정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인데, 사실 겉으로 드러난 가정의 형태만을 가지고 정상/비정상으로 나누는 것은 엄연한 차별이고, 사라져야 할 이분법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새가정의 모토는 가정의 회복입니다. 어떤 가정이든 힘든 순간이 있고, 그 어려움으로 가정이 무너질 수 있죠.

하지만 그 무너진 가정을 다시 세워나가는 일, 즉 가정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가정은 이분법적인 정상/비정상의 개념보다는 온전한 가정으로의 회복에 중점을 두고 사역해 나가려고 해요.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4인 가정 외에도 이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정들이 있음을 알리고, 그들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믿음의 공동체로 공감할 수 있도록 편집 방향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성경이 아니라 삶에 밑줄을 그을 때

▲ 「새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활동가들. 사진 왼쪽부터 김창현 기획국장, 성민경 재정간사, 송지연 편집부장, 이영미 총무이다. ⓒ정리연

솔직히 보수적인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나 역시 정상 가정, 전통 가정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이루고 있는 가정이 ‘흔히’ 말하는 불완전하거나, 깨진 혹은 무너진 가정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오히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각자 인간으로서 완전하기 위해서 이런 모습을 택했다. 그냥 인간끼리의 삶, 개개인의 홀로가 함께 모여 삶을 이루어 나가는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만, 사회에서는 여전히 뭔가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특히 교회 안에 있는, 크리스찬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 그러는 건 왜일까?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사랑하고 친구가 되셨던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건 아마도 혼인예식에서 빠지지 않는 목사님들의 말씀 때문인 거 같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아담과 하와의 결합과 하나님께서 이룬 가정이니 사람이 깨뜨리면 안 된다, 생육하고 번성하여라,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나니… 라는 주례! 그러나 이영미 목사님의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4인 가정 외에도 이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정들이 있음을 알리고, 그들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믿음의 공동체로 공감할 수 있도록”이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위로를 받았다.

「새가정」을 읽으면서 눈에 띄었던 게 있는데, 가정이나 여성 주제 외에도 교회와 신학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외쳐왔고, 한국교회가 위기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성장중심의 목회관 때문이다. 어떻게든 교회를 지키기 위해, 택시 운전, 막노동, 택배 배달을 병행하며 힘겹게 싸워 온 목사들도 있다. 하지만 대형 교회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주님이 계시지 않는 교회, 주님의 뜻을 외면해버리는 교회, 맘몬을 쫓는 교회, 이런 교회들이 바로 한국교회의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 이런 시대에서 「새가정」이 한국교회 목회 현장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서 하고자 하는 일들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사실 새가정이 개혁과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개혁과 변화가 작은 실천들을 이끌어 내는 일부터 시작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새가정도 나름 문서 선교를 통해 개혁과 변화의 목소리를 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6월호에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글을 실었는데 단순히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이동하는 이동권뿐 아니라 장애인들도 교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교회의 문턱도 낮추고 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장애인 이동권을 교회부터 보장하라는 내용의 글은 한국교회에 큰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작지만 이런 작은 실천들이 결국 한국교회를 개혁하고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영미 총무님께서 소개해 준 시를 소개하면서 마치려고 한다. ‘성경이 아니라 삶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라는 부분에 공감하시면서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거 같다. 그렇다. 백번 교회에 참석해서 예배드리는 것보다 더디고 비틀거리더라도 삶에서 이루어가는 예수님의 삶과 정신이 더 낫지 않겠는가.

시인의 시에는 이천 년 전 유대 땅, 먼지 나는 마을 길을 걷고 있는 그가 보인다. 사람들이 신보다 더 섬기던 율법을 깨려고 했던 사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사람들과 기꺼이 친구가 되었던 사람, 함께 아파하고 함께 즐거워했던 사람, 예수. 그리고 오늘 보았다. ‘새가정’이 그 길을 따르고 있음을. 부디, 한국교회에 ‘동네 목사’, ‘동네 성도’가 많아지기를.

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건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 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장마 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근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장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 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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