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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꽃동네 헤른후트헤른후트에서 온 편지 (2)
홍명희 선교사 | 승인 2022.06.03 00:14

봄이다. 여느 때와는 다른 봄이다. 지루하고 길었던 코로나의 갑갑했던 시간과 유럽 가까이에서 시작된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봄은 깨어나고 있다. 어쩌면 봄을 보는 내 눈과 마음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집에 화려한 꽃으로 꾸며진 정원은 없어도, 유채꽃이 뒷동산을 뒤덮고, 사과나무마다 하얀 꽃이 내려앉은 걸로 족하다. 올해는 유난히 라일락꽃의 향기가 가는 곳마다 퍼진다. 눈을 돌릴 때마다 “아, 아름다운 봄이다!”를 외치곤 한다.

오늘 산책에서는 담장 위로 뻗어 나온 모과나무를 보면서 수줍고 야리야리한 꽃이 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열매가 맺히기 전에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나 아름답게 살고 싶어, 너희들도 잘살아가고 있지? 이제 열매를 잘 맺어갈 거야.”

살아있는 생명체인 식물에서도 이렇게 많은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바람이 불자 짙은 푸르름 위에 노란 유채꽃이 물결을 이루면서 넘실댄다. 아름다운 광경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언덕을 내려오는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여성이 언덕 아래에 앉아 있었다.

“알모트!”

가까이 가면서 반갑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반가웠다. 성인인 알모트는 그동안 정말 많이 아팠다. 마음과 몸이 연약해져서, 몇 년 동안 혼자 잘 수도 없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랬던 그녀가 혼자 이렇게 나와 있는 것만 해도 기적이 따로 없었다. 어려운 내 이름을 금방 불러주어서 고마웠다. 그녀는 유채꽃밭에 무슨 약을 뿌렸기에 벌레들을 하나도 볼 수 없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동의는 했지만, 조금 전까지 마음에 가득했던 꽃에 대한 감상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리는듯했다. 그녀는 이 세상은 전부 독한 약이 뿌려져서, 살 수 없을 만큼 지독하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녀와 길게 이야기하는 것도 금지된 일이기에 아쉽게도 헤어져야 했다.

그래도 꽃들은 어쩌면 저리도 아름다운 색들을 가졌는지 놀라울 뿐이다. 하나님의 손길은 저토록 부드러우신 것이다. 언젠가 마리아가 어머니 휠체어를 밀면서, 모든 꽃에는 얼굴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조용해서 마치 천사가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사람도 얼굴이 다르듯이 꽃도 그럴 거라는 생각을 왜 못하고 살았을까…. 꽃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환해진다.

얼마 전 친구들이 헤른후트를 방문했다. ‘안네도레’와 ‘엘스벳’ 그리고 ‘이레네’이다. 이들은 전에 살던 곳에서 만나 십 년의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함께 진젠도르프 시대에 만들었다는 교회 뒤의 정원을 돌아 더 큰 정원으로 산책을 했다. 로토덴드론 나무에 연꽃을 닮은 큰 꽃이 화려하게 피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감탄하는 아름다움에 나 또한 새롭게 봄을 음미했다.

오랜만에 벤치에 서로 밀치듯 가까이 앉아서 어릴 적 친구들과 괜히 웃었던, 그런 웃음을 되찾은 우리…. 친구들이 선물로 가지고 온 봉투 안에는 내가 필요할 만한 예쁜 것이 들어있었다. 엘스벳은 직접 만든 빨간무 샐러드를 작은 병에 담아오고, 이레네는 멋진 머그잔과 헌금 봉투를 건넨다. 이레네는 교회에 다니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동독 시대에 다들 그렇게 살았던 것이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고 축복도 나누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처음 받은 헌금은 정말 이례적이어서, 내내 봉투를 쳐다보며 감동했다. 그녀의 집에는 정말 많은 꽃을 가꿔놓는다. 부지런한 부부는 큰 저택을 꽃으로 둘러놓았을 정도이다. 꽃을 가꾸는 마음이 들어있는 향기로운 봉투인 것이다.

안네도레는 산책하다가 아담한 양로원을 보더니, 자기도 훗날 여기에 오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도 이제 그만큼 인생의 후반부에 도달했다. 꽃으로 치자면 안네도레는 작약처럼 풍성하고 화려한 게 어울리고, 엘스벳은 키가 삐죽이 커서, 해바라기를 닮았다. 나는 어떤 꽃이 어울릴까?

오후 내내 정원에서 커피도 마시고, 인삼차도 마셨다. 밀린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벌써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멀리서 와 준 친구들을 하나하나 더 꼭 안아줄 것을, 서운한 마음에 버스가 떠나갈 때까지 손을 높이 들고 흔들어 주었다. 버스정류장 앞에서 갑자기 혼자 남겨진 듯한 외로움이 스쳐 가려 할 때, 유채꽃 향기가 풍기는 이 헤른후트에 남겨진 게 그래도 좋다고 마음을 다독였다. 꽃으로 위로받기는 오랜만이었다.

헤른후트는 겨울이면 마을 입구부터 별들로 뒤덮이는 데 이제 완연한 봄이 되어 아름다운 꽃으로 뒤덮이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선교의 모태가 된 것이 참으로 놀랍다. 아름다운 곳에서 열심히 살아낸 사람들이 선교지에 가서도 잘 가꿨으리라 짐작된다. 얼마 전 한국분들이 오셔서 무슨 사역을 하냐고 물으셨다. 나는 잘살아내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꽃처럼 자기의 색깔을 품으면서 아름다움을 남기며 잘 사는 것이 내 일이라고 더 덧붙이고 싶다.

어머니도 아파트에 사시지만, 꽃 화분을 많이 놓고 늘 꽃을 보고 사신다. 그리고 행복하시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어머니날 아침 일찍 이웃에 사는 크리스티네가 어머니날을 축하한다며 축전을 보내왔고 정원에 있는 예쁜 꽃을 엮어 가져왔다. 딸들에게서 받아야 할 것을 이웃에게서라도 받으니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날이면 늘 떠오르는 하이디는 어머니처럼 나에게 위로와 기도를 함께 하는 엄마 같은 친구다. 아들에게서 꽃을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또 한 분이 생각났다. 아랫마을에 사는 빵집 ‘페히이’ 부부이다. 지나가다가 불쑥, 연락 없이 들러서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집이다. 어제는 통화가 안 되어서, 손님까지 모시고 집에 들어섰는데 정원에 앉아 있는 부인을 만났다. 안으로 들어가서 물을 내오고 과일도 내오는 동안 아저씨와 손님들이 인사를 하고, 대접을 받았지만, 우선 꽃이 먼저였다. 얼른 화병에 물을 받아 꽃을 담아 시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50여 년간 해오던 빵집은 문을 닫았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빵을 많이 구워 이웃들이 아름아름 사러 오고, 그렇게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 마음의 표현을 잘 안 하는 무뚝뚝한 분이시지만, 꽃을 받으실 때는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신다. 그리고는 빵 한 덩이를 안겨주셨다.

오늘도 유채꽃밭을 어김없이 지나, 기도 탑에 오르니, 사방 온 천지가 꽃들로 덮여있다. 몇 해 전이던가, 요맘때, 헤른후트에 와서,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풀꽃을 영상으로 찍으면서 이렇게 노래해 주었던 자매가 생각났다.

꽃들도 구름도
바람도 넓은 바다도
찬양하라 찬양하라 예수를
하늘을 울리며 노래해 나의 영혼아
은혜의 주 은혜의 주 은혜의 주

그 작은 꽃들도 흔들리면서 마치 찬양하는듯했다. 우리 주님도 꽃을 좋아하셨음이 분명하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다. 그 백합화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셨다. 그 어떤 아름다운 옷도 이 꽃 하나만도 못하다고 평가하셨으니, 일류 디자이너들이 샘낼 만도 하지 않은가.

300여 년 전에 진젠도르프는 줄곧 오가는 교회당 근처에 큰 정원을 만들고 꽃을 가꾸도록 했다. 하나님의 나라에 꽃이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꽃을 보면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그의 나라를 느낄 수 있다. 진젠도르프 백작도 정원을 거닐 때 그분을 만날 수 있다고 믿지 않았을까? 어거스틴도 공동체를 하면서 정원에 나와 거니는 것을 중요시했었다. 심고 물을 주는 수고가 있어야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는 바울의 원리를 모두가 깨달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지만, 헤른후트의 거의 모든 집은 뒤쪽에 조그만 정원이 있다.

어제는 일몰 후 더욱 깊은 밤이 오기 전에, 진젠도르프가 거닐던 정원을 한 바퀴 돌았다. 양 우리 앞의 활기찬 소란스러움도 다 지나고 그 큰 정원에는 새소리만이 고요하게 머물러 있었다. 정원을 돌아 나오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니 너무나 감사했다. 이런 평화를 만끽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의 신음도 내가 대신이라도 누려주며 감사해야 할 것 같았다. 300여 년 전의 깊은 산골이 이제는 영적인 꽃, 평화의 꽃으로 피어나야 할 새로운 과제를 가진 꽃동네가 되었다. 헤른후트여, 아름답게 꽃으로 피어나라.

홍명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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