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목과 갈등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서로 간에 이해를 추구하는 작업이 더욱 심화되어야 한다. ⓒGetty Image

이슬람과 그리스도교가 평화롭게 공존한 시기도 있었다. 우마이야 지배시대(756-1031)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무슬림과 유다인과 그리스도인이 평화롭게 함께 어울려 살았으며, 이 시대는 또한 이슬람 중세문화가 꽃핀 시대였다. 물론 이베리아 반도가 전적으로 이슬람의 지배권에 놓여있었던 적은 없었다.

북서부에서는 저항운동이 그친 적이 없었으며, 1000년 이래로 그리스도교 왕들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국경을 공격했다. 이런 공격은 1085년 톨레도의 함락으로 시작되어, 1492년 그라나다의 함락으로 끝나는 스페인의 재정복에서 완성되었다. 이 재정복의 과정은 유다인과 무슬림에게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난과 억압, 추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1)

이슬람 선교의 시작과 공존

13세기 초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에 의한 선교활동이 시작되면서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사이의 대결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초기에는 무함마드와 꾸란에 대한 비화해적인 태도나 무시, 격한 논쟁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제는 서서히 호교론적인 경향으로 나아갔다. 프란치스코회는 실천적이고 선교적인 사목활동을 한 반면, 도미니코회는 처음부터 이슬람과의 지적인 대결에 나섰다. 그러나 십자군과 마찬가지로 무슬림을 향한 모든 선교 노력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2)

그리스도교에 대한 변증적인 의도 없이, 이데올로기적인 강제와 교리적인 요구로부터 자유로운 이슬람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친 기간이었다. 오스트리아의 동양학자인 알프레트 폰 크레머(Alfred von Kremer, 1828-1889)는 ‘이슬람의 지배적 이념의 역사’(1868년)와 ‘칼리프들의 지배 하의 오리엔트 문화사’(1875/77년) 등의 저서로 이슬람에 대한 문화사적인 연구의 기초를 놓았다. 독일의 테오도르 뇔데케(Theodor Noeldeke, 1836-1930)는 꾸란 연구와 셈어 연구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고, 스코트랜드의 던컨 블랙 맥도널드(Duncan Black Macdonald, 1863-1943)는 이슬람 신학에 관한 연구에 종교심리학적인 방법을 적용하여 유명해졌다. 프랑스의 루이 마시뇽(Louis Massignon, 1883-1962)은 이슬람 신비주의 연구에 몰두했다. 꾸란에 산재한 성서적 자료를 찾는 작업은 하인리히 슈파이어(Heinrich Speyer)의 공적이다. 1958년에는 프랑스의 여성학자 데니스 마송(Denisse Masson)에 의해 꾸란의 계시와 유다, 그리스도교적인 계시에 대한 비교연구가 이루어졌다.(3)

이런 학문적인 연구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깊이와 폭을 더해가고 있었지만, 개신교회 차원에서는 큰 진전이 없었다. 1910년 에딘버러에서 열린 최초의 개신교 세계선교대회가 이슬람을 선교전략으로 고려했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절대성 주장의 영향권 안에서였다.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는 주로 그리스도교가 우월하다는 자의식에 입각한 독백적인 자기 확인을 조장했다. 다른 종교들, 특히 그 가운데 이슬람은 그 종교적 불완전성 때문에 다만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을 좀더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요소로 사용되었다. 세계선교대회는 수 백 년 동안 이슬람을 결손종교로 보아왔던 옛 시각을 여전히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4)

1928년 예루살렘 세계선교대회도 역시 이슬람에 대한 신학적 평가에서 본질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1938년 인도의 탐바란/마드라스 세계선교대회, 1947년 캐나다의 휘트비/토론토 세계선교대회, 1952년 독일의 빌링엔 세계선교대회도 마찬가지였다. 이슬람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평가는 그 후에도 본질적으로 변화된 것이 없다. 여전히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사이의 근본적인 불연속성이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5)

개신교 측에서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변하게 된 것은 세계교회협의회(WCC)가 1967년 타종교와의 대화 방침을 마련하면서부터였다. 1977년에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사이의 진전된 대화를 위한 권고안들이 제시되었고, 마침내 1982년에는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세계교회협의회(본부: 제네바)와 이슬람 세계협의회(본부: 카라치) 사이의 공식적인 대화가 처음으로 이루어졌다.(6)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에 관한 선언’(1965년)을 통해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다: ‘교회는 또한 무슬림도 존중한다. 그들은 살아계시고 영원하시며 자비로우시고 전능하신 신, 하늘과 땅의 창조주,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유일신을 흠숭하며, 아브라함이 신에게 순종하였듯이 그들 신의 감추어진 뜻을 충심으로 순종하며, 아브라함에게서 이슬람 신앙을 이어받았다고 즐겨 주장한다. 예수님을 신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예언자로 받들며, 또 그 분의 어머니이신 동정녀 마리아를 공경하며 때로는 그 분의 도움을 정성되이 간청하기도 한다. 또한 신께서 모든 사람을 부활시키시어 공정하게 갚아 주실 심판의 날을 기다린다. 따라서 그들은 도덕생활을 존중하며 특히 기도와 자선과 단식으로 신을 섬긴다. 여러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사이에 적지않은 불목과 적대가 있었지만, 거룩한 공의회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서로 이해하도록 진심으로 노력하며, 온 인류를 위하여 사회 정의와 도덕 가치, 평화와 자유를 공동으로 수호하고 증진하기를 모든 사람에게 권고한다.’(7)

이 선언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사이의 공통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유일신 신앙, 부활과 심판에 대한 공동기대, 아브라함과 마리아에 대한 이해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예수를 신의 아들이 아니라 예언자로 존중한다는 점, 꾸란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부인한다는 것 등의 분명한 차이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이 선언의 의미는 대결과 전쟁으로 얼룩진 과거를 묻어버리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사회정의와 도덕적 가치, 평화와 자유의 실현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제안에 있다. 이로써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처음으로 이슬람과 긍정적으로 대결하면서 이슬람과 대화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8)

반목과 갈등을 넘어서기 위해 이해를 추구하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갈등은 신학적, 종교적 원인에 의해서만 유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 원인에 의한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불교나 힌두교 등 전적으로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보다 이슬람과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갈등과 적대감이 더 심한 것은 이들이 어쩌면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갈등구조를 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갈등과 억압과 저항의 역사에 의해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 그리고 다른 종교를 그 자체로서 정확하게 배우고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대화의 전제인 것이다. 그래야만 다른 종교에 대한 우월감이나 피해의식 없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이슬람 국가들과 그리스도교 서방국가들 사이의 갈등과 분쟁을 ‘문명충돌론’이나 선과 악이 대결하는 ‘성전’으로 몰고 가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신학적인 대화는 훨씬 지난하고 긴 과정을 필요로 한다.

현대 한국사회와 이슬람의 만남은 한국전쟁에 참여한 터키, 특히 1960년대 중동특수 바람을 타고 한국 노동자들이 중동에 진출한데서 시작되었으나 그 영향은 미미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 들어온 이슬람 문화권의 수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의 만남은 한국 사회가 종교적으로도 훨씬 더 다원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며, 타종교에 대하여 특히 배타적인 한국교회에도 도전이 되고 있다. 한국사회도 이제는 다종교, 다인종, 다문화 사회 안에서 공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배워야 할 때가 되었다.

타자와의 만남은 자신의 정체성을 묻게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타자성도 드러내기 마련이다. 낯선 종교와 문화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서든, 이슬람 시장에 대한 경제적 이해 때문이든, 아니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슬람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학문적 관심에서든, 어떤 동기에서 시작되었든 간에 이슬람과의 만남이 대결과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바른 역사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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