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동정녀 마리아의 성유(聖乳) 신앙‘성스러운 체액’과 아브젝트(Abject) ⑷
우혜란 박사(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 승인 2022.06.16 16:29
▲ Marco Zoppo, 「Maria Lactans」 (13세기 경) ⓒWikipedia

기독교에서 성스러운 젖 즉 성유(聖乳)는 아기 예수를 양육하는 동정녀 마리아와 연관되어 있다. ‘수유하는 마리아(Maria Lactans)’ 이미지는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는 고대 이집트 여신 이시스(Isis)를 모델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며, 다른 수유하는 고대 여신들–야소다(Yashoda), 하리티(Hariti) 등–과도 유사성을 보인다.

수유하는 성모의 이미지는 초기 기독교와 중세 후기(14~15세기) 높은 인기를 누리며 많은 예술작품이 예수에게 수유하거나 성인이나 죄인들에게 자신의 젖을 나눠주는 마리아를 묘사하였다.(1) 신자들이 예수의 육체적 실재의 증거- 그의 피, 땀, 눈물–를 원했듯이 이들은 마리아의 체액–여기서는 그녀의 젖-을 통해 그녀와 소통하고 그녀의 현존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더 나아가 성모의 유방과 젖은 하느님의 생명 주심, 삶에 필요한 자양분과 보살핌, 영생을 약속하는 구원 등을 상징하였다.(2)

따라서 성모 마리아의 젖은 예수의 성혈과 같은 맥락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즉 마리아의 젖은 그리스도의 피가 그러하듯 생명과 구원의 원천이자 그녀의 임재(臨在)를 확인케 하는 핵심적인 물질적 매개체였다. 더불어 성유(聖乳)는 예수의 모친이라는 마리아의 역할을 암시하기에, 육체적 존재인 예수와 직접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중세시대 성유 유물의 광범위한 확산과 성유 신심/순례 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3)

유럽의 성모 성지 교회들

중세 유럽에는 성유 유물이 차고 넘쳐 성유물에 대해 회의적이던 칼뱅(John Calvin)과 루터(Martin Luther)와 같은 종교개혁가는 물론이고 가톨릭 신학자들도 성유 유물의 과잉을 비판할 정도였다고 한다.(미주 4)  당시 성유 유물을 보관하였다는 곳으로는 로마에만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Basilica Papale di Santa Maria Maggiore), 성 계단 성당(Chiesa di San Lorenzo in Palatio ad Sancta Sanctorum),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 Popolo), 캄피텔리의 산타 마리아 성당(Chiesa di Santa Maria in Campitelli), 까르체레의 산 니콜라 대성당(Basilica San Nicholas in Carcere) 등이 있었다. 다른 이탈리아와 프랑스 지역에서는 파도바의 산 안토니오 성당(Basilica di Sant'Antonio),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Basilica di San Marco), 엑상프로방스의 아비뇽 셀레스탱 교회(Eglise Des Celestins D'Avignon) 등이 알려져 있다.(5)

유럽 대륙과 떨어진 곳으로는 한때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중세 성모 성지이며 북유럽의 최대 가톨릭 순례지 중 하나이며 월싱엄(Walsingham)을 들 수 있다. 이곳의 성모 예배당은 귀족 여성 리쉘디스(Richeldis de Faverches)가 마리아의 발현을 경험하고 1061년에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성모화(聖母畵)와 함께 성유가 담긴 유리병이 있었다고 하며, 특히 후자는 커다란 공경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중세 후기 여성 순례객들은 이곳에서 치유를 위해 마실 목적으로 물과 성모의 우유 방울이 담긴 그릇을 구매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6세기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으로–헨리 8세에 의해–많은 중세 성지는 황폐하고 특히 월싱엄은 유명한 성유물의 존재로 종교개혁가들의 집중 공격을 받으며 파괴되고 버려진다. 이후 가톨릭 해방령(1829)이 내려지고 지역 주민(Charlotte Boyd)이 1896년 해당 지역을 사들여 복원하고 수도원에 기증하면서 옛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현재 월싱엄은 성공회와 가톨릭교회의 성지로 두 종교의 기념 성당이 들어서 있으며, 매년 수천 명의 방문객이 찾고 있다고 한다.(6)

▲ ‘성모 성유 동굴 예배당(Chapel of the Milk Grotto of Our Lady)’ ⓒWikipedia

앞에서 소개한 성모 성지가 성유 신심의 옛 모습을 보여준다면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순례객이 방문하고 있는 곳은 예루살렘의 중심에 소재한 ‘성유 동굴(Milk Grotto)’로, 공식 명칭은 ‘성모 성유 동굴 예배당(Chapel of the Milk Grotto of Our Lady)’이다. 현재의 가톨릭 예배당은 5세기경 비잔틴 교회가 있던 자리로 1872년에 지어진 것이다. 지역 전승에 따르면 이 동굴은 헤롯 왕의 ‘유아 대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가는 길에 성모가 아기 예수를 수유하려고 잠시 머문 곳, 아니면 박해를 피해 성 가족이 살았던 곳이라고 하며, 성모가 이곳에서 아기 예수에게 수유하면서 몇 방울의 젖을 바닥의 황갈색 석회암에 흘리자 유백색(乳白色)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실제로 이 동굴의 내부는 유백색 바위가 덮고 있으며 이 바위는 기적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진다. 무엇보다 유럽의 성유 유물의 상당수가 ‘성유 동굴’로부터 유래한다고 말해진다. 이곳은 오랫동안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자식이 없는 여성들과 부부들의 순례지로 이들은 이곳에서 성모에게 자녀를 허락해줄 것을 기도하고 흰색 돌가루를 가지고 갔다고 한다.

오늘날 순례객들은 이곳에서 흰색 가루가 든 작은 봉지를 (상징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며, 임신을 위해서는 부부가 함께 40일 동안 이 가루를 마시고 기도하는 신심이 필요하다고 한다. 예배당 왼편에는 작은 방이 있는데 내부는 ‘흰 돌(가루)의 기적’을 증명하는 새 부모들과 그들의 가족이 각국에서 보낸 수많은 아기 사진과 감사 글로 장식되어 있다.(7) 이렇듯 성모가 남긴 성유는 많은 순례자를 끌어들이고 새로운 순례지를 등장시켰다.

또한 성유에는 초자연적인 힘이 상정되었는데, 그 예로 8월 성모승천 대축일에 주교가 성유 유물을 들고 행진에 참여하여 군중에게 축복을 내리거나-제1차 십자군의 마지막 교전이 일어났던-아스칼론 전투(1153년)에서는 주교가 군대 맨 앞에서 성유가 보관된 함을 들고 있었다고 한다.(8) 성유는 특히 초기 기독교와 중세시대에 높이 평가되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고백록》(ca. 400년)에서 모유를 하늘의 위안에 비유하며 그리스도의 옆구리에 난 상처에서 영양을 공급받을 것인지 아니면 마리아의 가슴에서 영양을 공급받을 것인지 결정할 수 없다고 적고 있으며, 여러 신학자- Clement of Alexandria, Anselm of Canterbury, Bernard of Clairvaux–는 하느님과 마리아의 가슴(breasts)이 서로 합체되어 있다고 보았다.(9)

한편 중세시대 종교화도 성유에 대한 신심을 고양하는데 일여하였는데 가장 오래된 이미지는 비잔틴과 콥틱 시대의 ‘수유하는 어머니(Galaktotrophusa)’이며, 14세기 이후에는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와 시에나를 중심으로 토스카나 지방에서는 ‘수유하는 마리아(Maria Lactans)’ 그림이 증가한다.(10) 이와 더불어 성유와 관련된 기적도 문헌에 많이 보고되어 있다. 여기에는 치병, 수태능력 회복, 수유량 증가, 그리고 성유의 직접적인 영접이 포함된다.

후자와 관련하여서는 피렌체의 복자 파울라(the Blessed Paula of Florence?)와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St. Bernard of Clairveaux, 1090-1153)의 이야기가 유명한데, 전자는 ‘수유하는 마리아’의 이미지를 묵상하다가, 후자는 모자의 석상 앞에서 성모에게 기도를 올리다가 성모의 현현과 함께 그녀의 젖을 영접하는 기적/환시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특히 성 베르나르도가 성모의 젖을 영접하는 장면은 많은 종교화의 주제로 다양하게 이미지/시각화되어 유럽에 퍼졌다.(11)

중세 성유 신앙의 모습

이처럼 마리아의 젖은 예수의 피처럼 강력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며 그녀의 현존을 보고, 만지고, 마실 수 있는 매개체로 작동하였으며, 성 베르나르도와 복자 파울라와 같이 성모 신심이 깊은 이들에게는 기도나 묵상 중 환시를 통해 성모는 먹을 수 있는 젖의 행태로 직접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었다. 다시 말하면, 중세시대 성혈과 성유는 신자들에게 예수와 성모의 현존과 구원의 힘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물질적 원천으로 작동하였다. 신비주의자들에게는 관상, 묵상, 기도를 통해 예수와 성모의 삶을 모방하고 이들과 합일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매개체로 작동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예수와 성모의 체액에 대한 공경에는 이들이 성인들과 달리 사후에 육체와 함께 승천함으로써 자신들의 유해를 지상에 남기지 않았다는 믿음이 한몫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피, 땀, 눈물 그리고 성모의 젖은 예수와 성모의 부재한 신체에 대한 감각적 경험에서 매우 중요한 물질이며, 동시에 이들의 임재에 대한 육체적/물리적 증거 즉 성유물로 공경되었다는 것이다.(12)

미주

(1) Willy Jansen & Gritje Dresen, “Fluid Matters: Gendering Holy Blood and Holy Milk,” in Things: Religion and the Question of Materiality, ed. D. Houtman & B. Meyer,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12, pp. 215f.

(2) Ibid., p. 226.

(3) Vibeke Olson, “Blood, sweat, tears, and milk: ‘Fluid’ veneration, sensory contact, and corporeal presence in medieval devotional art,” in Binding the Absent Body in Medieval and Modern Art: Abject, virtual, and alternate bodies, eds. E. Kelley & E. Richards Rivenbark,, London: Routledge, 2017, p. 19.

(4) Vibeke Olson, “Embodying the Saint: Mystical Visions, Maria Lactans and the Miracle of  Mary's Milk,” in Matter of Faith: An Interdisciplinary Study of Relics and Relic Veneration in the Medieval Period, eds. J. Robinson et al., British Museum ResearchPublication 195, 2014, p, 152, p. 156(note 8); Joachim Kügler, “Why should Adults want to be Sucklings again? Some remarks on the Cultural Semantics of Breast-feeding in Christian and Pre-Christian Tradition,“ in The Bible and Children in Africa, eds. Lovemore Togarasei & Joachim Kügler, Bamberg: Bamberg Univ. Press, 2014, p. 121. 칼뱅은 그의 저술 Traité des relique(1543)에서 (수가 적든 많든) 성유 유물이 없다는 도시, 수도원, 수녀원은 없는 것 같다고 적고 있다. “Calvin's Treatise On Relics, With Notes By The Translator”, https://www.ccel.org/ccel/calvin/treatise_relics.v.html#fnf_v-p73.4, 각주 (140). (최종 접속일 2021.11.25.)

(5) 이 밖에 스페인 북부 오비에도(Oviedo)의 구주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Basílica de San Salvador)은 성유가 다른 유명 성유물과 함께 봉안되었는 사례로, 이 성당은 유럽 기독교 순례사에서 중요한 곳으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이전 이미 중요 순례지였다고 한다. 그 중심에는 오비에도 대성당 성실(聖室)에 보관된 예루살렘에서 온 각종 – 그 종류와 수에서 가히 놀라운 – 성유물로 가득 찬 ‘성스러운 궤(Arca Santa)’가 있다. 이 상자 안에는 - 예수를 장사지낼 때 그의 얼굴을 쌌었다는 - 성스러운 수건, 예수가 달렸던 십자가의 조각, 로마군이 제비 뽑았던 예수의 옷, 가시관을 비롯하여 그가 유아기에 사용했던 구유의 포대기, 요람 등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성모와 관련된 성유물로는 그녀의 젖, 머리카락, 옷 그리고 성모가 성인 일데폰소(St Ildefonso, 607-667)에게 발현하여 성모 축일마다 입으라고 준 제의(祭衣) 등이 있다고 한다. (Wilfrid Bonser, “The Cult of Relics in the Middle Ages,” Folklore, Vol. 73(4), 1962, p. 234f.; “Our Lady of Christendom, Spain”, https://nscristiandad.es/en/significacion/ [최종 접속일 2021.11.27.])

(6) Vibeke Olson, 2014, op, cit., p. 154. Susan Dunn-Hensley “Return to the Sacred: The Shrine of Our Lady of Walsingham and Contemporary Christianity,” Religions 9(6), 2018, pp. 196f.; Gary Waller, “An Erasmian Pilgrimage to Walsingham,” Peregrinations: Journal of Medieval Art and Architecture 2(2), 2007, p. 1f.; “The Shrine of Our Lady of Walsingham”, Homepage (https://www.walsinghamanglican.org.uk/). 월싱엄에 성모 성소가 지어진 배경에 대해서는 핀손(Richard Pynson)의 시(1465)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즉 신앙심 깊었던 여인 리쉘디스에게 1061년 성모님이 발현하셔 가브리엘 대천사가 마리아에게 잉태 사실을 알려준 ‘나자렛의 집’을 보여주고 이 사실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똑같은 집을 월싱엄에 짓도록 원하셨다는 것이다. (“History of Walsingham”. https://iconpainter.org.uk/history-of-walsingham/ [최종 접속일 2021.11.27.])

(7) “At the Milk Grotto, ‘evidence that there is God’”, Our Sunday Visitor 2015.12.17. (https://osvnews.com/2015/12/17/at-the-milk-grotto-evidence-that-there-is-god/); “Milk Grotto of Bethlehem - The White Stone of Miracles”, http://www.travelujah.com/blogs/entry/Milk-Grotto-of-Bethlehem-THE-White-Stone-of-Miracles (최종 접속일 2021.11.27.)

(8) Vibeke Olson, op. cit., 2014, p. 152.

(9) Willy Jansen & Gritje Dresen, “Fluid Matters: Gendering Holy Blood and Holy Milk,” in Things: Religion and the Question of Materiality, ed. D. Houtman & B. Meyer,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12, pp. 225f.; Augustine, Confessions 1.6 & 3.4 (ibid., 재인용)

(10) Willy Jansen & Gritje Dresen,. ibid, pp. 22; Joachim Kügler, op. cit., pp. 121f.

(11) Vibeke Olson, 2017, p. 19; Vibeke Olson, 2014, p. 154.

(12) Vibeke Olson 2017, pp. 11f.

우혜란 박사(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woohairan@hotmai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4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