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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의 의자헤른후트에서 온 편지 (3)
홍명희 선교사 | 승인 2022.06.17 15:56
▲ 헤른후트 교회의 흰색 의자 ⓒ홍명희

데이케어 센터에서 남편을 데려다 주는 시간에 맞추어서 오후에 집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기다리고 서 있자니, 벤취가 간절히 생각났다. 그 때 정말 내 눈을 의심했다. 매일 오고 가는 코메니우스 서점 앞에 하얀색 장의자가 있었다. 그것은 교회의 의자임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한쪽에는 ‘이 의자를 살 수 있습니다.’라고 써있었다.

헤른후트 교회는 나무로 깎아 특별히 제작 되었다. 왜 교회의 의자가 언제부터 하얀색이었을까… 나는 가장 연륜이 많으신 은퇴하신 ‘바스’ 목사님께 여쭈어보기로 했다. 목사님은 하얀색의 뜻은 죄 없으신 주님과 그분의 정결함을 뜻하는 것 외에는 언제부터 정확히 흰색으로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하셨다. 다만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 진젠도르프는 기존의 화려한 루터 교회와는 달리, 경건주의의 핵심인 단순함과 소박함에 기준을 두어서, 교회의 일체의 장식을 하지 않고 모이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장식이라는 말을 했다한다.

따라서 이 교회는 기둥이 없고, 예배 단이나 설교단이 높게 장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의자를 가볍게 들어 옮겨놓고, 책상을 들여다 놓으면 온 교우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예배장소를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으로 바꾼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하얀 색 내부에 이 하얀색 의자가 교회 전체를  환하게 만든다. 다른 곳의 헤른후트 예배 처소에도 마찬가지이다. 하얀 의자가 교회를 꽉 메우고 있는데, 햇볕이 들어오는 날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천국을 연상하게 된다. 이 나무 의자에 앉아 교우들과 예배하면서 더욱 더 내 죄를 속량해 주시고, 다시금 하얗게 덧칠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이 하얀 의자가 헤른후트의 번화가인 약국 옆 서점 앞 길거리에 있는 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잠시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들도 서로 구경하기 바쁘다. 그러기도 잠시 늘 수요일이면 ‘잉고’ 할아버지의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드레셔’ 아저씨를 만났다. 잉고 할아버지는 나를 보면 늘 손을 내미신다. 손을 잡아드리면서 늘 용기를 드린다. 얼마 전 부인을 사별하시고 시무룩하시더니, 날씨가 화창해지자 할아버지도 많이 웃으신다.

그러자 마자, 늘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일하러가는 ‘케르스틴’이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녀의 세미나가 잘 되기를 바란다하니, 너무 좋아한다. 항상 예쁜 모습의 그녀가 오늘 따라 일하러 간다며, 다시 페달을 밟고 갔다.

그러자 마자, 모니카의 작은 차가 앞에 선다. 모니카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왕래가 참 많았던 분이다. 내가 그녀에게 소원해진 게 죄송해서, 우리 여름에는 자주 보자는 말을 했다. 볼펜을 사러 서점으로 오다가 나를 보았다고 했다. 남편을 데이케어에 보내게 되었다니, 참 잘되었다며 축복해 주신다.

나는 이렇게 단 십분 여 만에 꼭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다 만났으니, 참으로 하얀 의자의 기적이라 여기고 싶었다.

의자 이야기를 하니, 송 권사님이 생각난다. 송 권사님의 남편은 미국의 변호사 장교로서 한국전쟁 때 나와서 송 권사님을 만나 결혼하였으나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송 권사님을 미국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여자의 그 매운 근성이 어디 가랴…

송 권사님은 단 돈 백 불을 들고 미국 땅에 가서, 2년 여 간을 베이비시터로 일해 돈을 모아, 남편을 찾기에 이른다. 그 남편은 역시나 바람둥이에다가, 이미 한번 결혼해서 막 이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 소식을 들은 믿음 좋은 시어머니의 권유로 그 아들과 송 권사님은 살게 된다.

그렇게 결혼생활을 해도 한 번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다가 결국은 그 남편은 마지막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야 부인의 인내와 사랑에 감동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늘 바닷가를 내려다보며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부인을 안타깝게 여긴 남편은 자기 손으로 나무를 잘라서 의자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그 비뚤대는 나무의자를 선물로 주면서 늘 나를 위해 기도해주어서 고맙다며, 이 의자는 당신을 위한 내 진심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을 용서해달라며 우셨다고 했다.

한 번도 의자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아저씨의 의자는 그리 멋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자는 송 권사님에게 남편이 평생 취미로 모았던 귀금속 보물을 다 권사님께 주고 가셨지만, 그 어떤 보물보다  투박한 그 나무 의자를 더 소중하게 기억하신다고 하셨다.

얼마 전부터 한번 앉았던 자리에 일어설 때, 꼭 한 번씩 돌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이런 저런 물건을 혹시 놓지 않았나 싶어서이다. 어제도 안 돌아보았으면, 바구니에서 꺼내 놓던 헝겊 덮개를 잃어버릴 뻔 했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 뭐가 남겨져 있는 것처럼, 내가 앉아서 예배드리던 그 곳, 내가 앉아서 일하던 그 곳, 남편과 잘 쉬던 정원의 한 켠에는 내 삶의 일부분이 떨어져 있다.

한국에 방문할 때였다. 15년도 더 오래전에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에 수요 예배에 갔다. 한 분이 앞에 앉아 계신데, 늘 거기서 기도하시던 권사님이셨다.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그동안 교회에 풍파가 많았다고 들었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시는 그분은 얼굴에 기도가 쌓여 평화로우시다. 정말 아름답게 늙으셨다. 한 작은 자리지만 그것을 거룩하게 지켜내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속한 이 헤른후트의 하얀 색 의자에서 예배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며 교우들을 위로하며 지내는 이 시간이 쌓여 무엇이 남을 지 돌아보면 부끄러울 뿐이다. ‘한국에서 온 자매 하나가 늘 지키던 자리였는데…’라며 누군가에게 그리움으로 남길 바란다. 다만 더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남겨져야 하지 않을까…

헤른후트의 형제자매들은 이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는 기도를 드릴 때가 있다. 나는 처음에 너무 당황스러워서 내려앉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신발을 신고 앉았던 바닥에 옷을 더럽힐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갔으니 말이다. 지금은 누구보다 이 의식을 사랑한다. 무릎을 꿇는 것은 외국인에게는 항복이나 경외심을 표할 때 하는 행동이다. 우리 하나님 앞에 <당신이 왕 되십니다. 제 삶을 모두 드립니다>의 아름다운 모습 같다.

키가 거의 2미터에 가까운 ‘쉬네만’이라는 아저씨가 계셨다. 그가 무릎을 한발 한발 꿇는 것을 보기만 해도 은혜가 되었었다. 그 긴 다리를 접는데 꽤 힘들어 보였지만, 기꺼이 기도 때는 무릎을 꿇으셨다. 그러나 그분을 볼 수 없는 게 참 속상하다. 천국이 더 좋다는 것을 먼저 아시고 가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경건한 사람을 우리 곁에 없게 하신 하나님이 야속한 것은 어찌 나 뿐이랴. 그러나 그의 가족도 모두 그의 기도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큰 위로로 삼고 있다.

언젠가는 이 의자에 앉을 수 없는, 즉 우리의 예배도 제한 되어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나에게 주는 오늘의 메시지이다. 또한 이 땅, 헤른후트에서 날마다 새롭게 예배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홍명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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