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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를 찾았다속히 내려오라(누가복음 19:1-10)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6.18 23:55
▲ Jan Luykens, 「Jesus meets Zacchaeus」 ⓒGetty Image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지난 주일에 저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살펴보았습니다. 너무도 유명한 비유이지만, 그 해석도 상당히 다양하다는 점을 보았습니다. 이번 주일에도 저희는 예수님의 유명한 일화 한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바로 삭개오 이야기입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의 이야기는 주일학교 어린이들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본문의 내용도 어렵지 않기 때문에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삭개오가 예수님 앞에서 선언한 내용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핵심 신앙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않는 배낭을 만들라”(눅12:33),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눅18:22)

삭개오 일화가 누가복음 공동체의 전형적인 신앙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누가복음의 창작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레위를 부르셨을 때, 많은 세리가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를(마9:10; 막2:15; 눅5:29) 확대해서 삭개오라는 인물의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삭개오 이야기를 누가복음의 완전한 창작이라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삭개오가 레위와 함께 예수님을 만난 세리 중 한 명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그에 관한 일화는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공동체가 자신들의 신앙을 드러내고 가르치기 위해서 이런 일화들을 창작했다기보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 이런 사건들을 체험했기에 그들의 신앙이 확고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베풂과 구제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신앙입니다.

삭개오 이야기가 전해주는 바는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먼저 드렸습니다만, 오늘 저희가 생각해보려는 점은 구제와 베풂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삭개오라는 사람과 예수님의 만남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나무에 오른 삭개오

본문 2절과 3절은 삭개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묘사합니다. 2절에 먼저 소개되는 점은 삭개오가 세리장이며 부자라는 점입니다. 삭개오가 실제 여리고 사람인지에 대한 논쟁도 있기는 하지만 만약 그가 여리고의 세리장이었다면, 그는 상당한 권세를 가진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세리는 로마에 바칠 세금을 걷는 인물들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매국노 취급당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에서 세리가 등장할 때면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죄인이라고 수군거리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수군거리는 주변 사람들이 어떤 인물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이 세리를 죄인으로 여겼다고 해서 세리들의 권세가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세금을 걷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었기에 뒤에서는 수군거릴지라도, 대부분 사람이 그들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을 것입니다. 이들의 권세는 일제 강점기 친일파들과 비슷할 것입니다.

그런데 2절에서 권세가로 묘사된 삭개오의 모습은 3절로 넘어가면서 반전됩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지만,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의 작은 키는 세리장이며 부자인 상태와 대조를 이룹니다.

또 예수님을 뵙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은 그를 위해 공간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세금을 낼 때는 그에게 머리를 숙였을지 몰라도 예수님을 뵙기 위해 모인 공간에서 그에게 머리를 숙이며 자리를 비켜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권세가인 삭개오의 상태와 작은 키에 대접받지 못하는 지금의 상태가 대조를 이룰 때, 삭개오는 자신의 왜소함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냅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길을 파악하고 남들보다 앞으로 달려가서 높은 자리를 선점하는 방식입니다.

일반적으로 삭개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으로 자신의 작은 키를 극복하고자 나무에 올랐다고 말합니다. 나무에 올라갈 정도의 열망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나무에 오를 정도의 열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이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했을’ 뿐입니다. 나무에 오르기 전에 삭개오가 품었던 생각은 ‘꼭 예수님을 만나야 해’는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히려 길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을 비웃으며 나무에 올랐을 것입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이 길로 온다는데 더 앞에서 보면 되지. 저렇게 한 곳에 바글거리며 서 있는 멍청한 녀석들. 나무에 올라가서 보면 예수라는 사람을 더 잘 볼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품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무에 올랐다는 삭개오의 행동은 그가 평생 살아왔던 모습의 반영입니다. 자신의 왜소함을 감추기 위해 그가 행해왔던 방식들입니다. 키가 작고 대접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감추기 위해 그는 세리장, 부자라는 칭호를 얻으려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사람들보다 앞선 길목에서 나무 위라는 높은 위치에 올라가 있습니다.

삭개오를 부르신 예수님

삭개오가 나무에 오른 행위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보신 예수님은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려와서 함께 너희 집으로 가자”가 아니라 “속히 내려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이름을 알고 계신다는 신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들어오시면서 삭개오라는 인물에 관한 정보를 미리 가지고 계셨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없는 상황을 억측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셨다는 점입니다. 삭개오는 지금 자신의 외형적 약점을 가리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그의 삶 전체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는 어떠한 행동이나 호칭, 상태를 통해 자신의 왜소함을 가려왔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왜소한 모습의 삭개오 본인의 모습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 속히 내려오라” 자신을 감추기 위해 사용해왔던 모든 허울을 내려놓으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런 허울이 너 자신을 높일 수 없다는 말씀이시기도 합니다.

마치 김춘수 시인의 ‘꽃’의 한 구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와 같이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을 때,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허울이 아닌 자기 자신을 부르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세상의 허울로만 치장하며 살아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예수님 앞에서 선언합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자신이 속여서 빼앗은 것은 네 배로 갚겠다는 선언입니다.

세리장에까지 오른 삭개오가 지금까지 남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세금을 걷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삭개오를 향한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 죄인이라는 수군거림은 삭개오가 정직한 사람,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며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합니다.

결국 삭개오가 예수님 앞에서 선언한 것은 자신의 전 재산을 남에게 베풀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소유의 절반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 절반은 자신에게 착취당한 사람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선언입니다.

삭개오가 이런 선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에서 주어진 재물, 권세가라는 칭호, 세리장이라는 위치 모두가 헛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삭개오라는 키가 작은 사람일 뿐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속히 나무에서 내려오라

지금까지 교회에서는 삭개오의 이야기를 전하며 우리도 나무에 올라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이는 삭개오 이야기를 오해하고 잘못 해석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봅니다. 교회가 바라며 추구했던 것이 그것이었기에 계속해서 나무에 오르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커다란 교회당, 많은 교인수, 큰 교회라는 칭호, 이런 것들을 추구해왔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계속해서 나무에 오르자고 이야기해왔습니다. 삭개오처럼 나무에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지금 시대에 보여지는 교회의 상황입니다. 지역과 교단에 상관없이 모든 교회에서 성도님들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로는 ‘나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자’고 말하면서 겉으로는 허울만을 두르고 있었고, 허세에만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지금이라도 그 나무에서 속히 내려오라” 허울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만나신 이후에 하신 말씀은 레위를 만나셨을 때와는 조금 다릅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레위를 부르신 후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를 부르신 후, 오늘 본문 10절에서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인이었던 삭개오를 회개시켰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잃어버렸던 자를 되찾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둘이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의 차이는 있다고 봅니다. 삭개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죄를 회개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저 그가 쌓아 올려왔던 허울을 벗겨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길을 잃었던 삭개오가 바른길로 돌아오게 하셨을 뿐입니다.

이번 주간에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 자신을 높이기 위해, 또 나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허울을 둘러쌓으며 높은 나무에 오르려 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만약 우리가 허울을 쌓고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서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 본연의 모습으로 서게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허울로 둘러 쌓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참되고 바르게 서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삭개오와 같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이제 나무에서 내려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본연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서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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