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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와 성혈 그리고 의미의 위계화‘성스러운 체액’과 아브젝트(Abject) ⑸
우혜란 박사(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 승인 2022.06.23 01:23

성유 신앙의 발전 모습

성모 마리아의 권위는 중세 후기에 정점에 달하는데 즉 그녀에게 인류를 대신하여 하느님께 은혜를 구하고 그녀의 개입으로 인류가 하느님으로부터 더욱 풍성한 은총을 얻게 되는-다른 성인들과 같은–단순한 ‘중재자(mediator)’의 역할을 넘어, 예수와 함께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하는 ‘공동 구속자(co-redeemer)’의 역할까지 상정되었기 때문이다.(1) 이러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과감한 해석은 15~16세기 일련의 종교화에서 가시화된다. 예를 들어, 토스카나의 화가 로렌조 모나코(Lorenzo Monaco)가 1402년 무렵 완성한 “그리스도와 동정녀 마리아의 중재(The Intercession of Christ and the Virgin Mary)”(위 그림 왼쪽 컬러화)에서 마리아의 젖과 예수의 피는 구원론적으로 대등하게 표현된다.

즉 이 그림의 왼쪽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예수가 위에 계신 하느님께 자신의 갈비뼈 근처 상처를 보여주고 있고, 그 맞은편 오른쪽에는 비슷한 크기의 무릎을 꿇은 마리아가 자신의 오른쪽 가슴을 하느님께 보여주며 그들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하는 죄인들을 오른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피렌체의 화가 도미니코 게라르도(Dominico Gherardo)가 1490년에 완성한 “그리스도와 동정녀 마리아의 인류를 위한 중보(Christ and the Virgin Mary Interceding for Humanity)” 또한 동일한 모티브를 사용하면서 성혈과 성유를 같은 차원에 놓고 있다. 이들 그림의 특징은 성스러운 체액(피와 젖)을 통해 예수와 마리아가 신자들과 대등하게 연결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성혈과 비교할만한 성유가 가진 구원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2)

초기 기독교와 중세 후기에 많은 인기를 누린 ‘수유하는 성모’의 이미지 또한 성유가 가진 구원의 힘을 시각화하고 있다. 특히 성모가 자신의 젖을 자기 아들을 위해 비축하지 않고 죄인들에게 나누어주는 이미지는 구원자로서 그녀의 모습을 부각하고, 이러한 마리아의 이미지는 15~16세기 이탈리아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델라마트리스(Filotesi dell'Amatrice 혹은 Nicola Filotesio)의 1508년 ‘자비의 마돈나’(Madonna of Grace)’(위 그림 오른쪽 흑백화)를 보면 성모가 양쪽 가슴에서 엄청난 양의 젖을 쥐어짜 반원의 광선 모양으로 연옥에 빠진 영혼의 입으로 쏟아 붓고 있다.

이렇듯 중세 후기 마리아는 종종 구원의 중재자(중개자/중보자)일 뿐 아니라 공동 구속자(救贖者)로 여겨졌으며, 이런 경향은 특히 프란체스코회와 도미니크회의 신학과 영성에서 매우 뚜렷했다.(3) 따라서 중세 후기 기독교에서 마리아의 젖은 예수의 피와 함께 구원자가 인류와 함께 한때 지상에 머물렀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했다는 중요한 물질적 증거로 구원론적 의미와 함께 종교적 실천의 중심을 구성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성유 신앙의 쇠퇴

이렇듯 성모의 성유는 중세 후기의 신심에서 한때 예수의 성혈과 거의 대등한 위치에 있는 듯했으나, 성유 공경은 종교개혁 이후 점차 쇠퇴하면서 현재 가톨릭교회에서 하나의 주변적 현상이 되었다. 이에 반해 성혈은 여전히 구속(救贖)의 원천으로 그 구원론적 의미가 강조되고 관련 신행도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가톨릭 신자는 성찬식에서 성혈을 마시는 의식을 정기적으로 행하며, 이는 성체성사를 통해 빵과 포도주가–외형적으로는 변하지 않지만-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는 ‘실체 변화’(transsubstantiatio) 교리에 근거한다.

또한 가톨릭교회에서 성혈의 중요성은 ‘지극히 보배로운 성혈 축일’의 제정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이는 성혈 신심이 점차 중요해지면서 관련 축일도 제도화된 것으로 모든 가톨릭교회가 상당 기간(1849~1968) 이 축일은 지켰다. 그 역사를 보면, 처음으로 스페인에서 16세기경 성혈을 기념하는 축일이 등장하였으며, 이후-성혈선교회의 창설자이기도 한-가스파르 델 부팔로(Saint Gaspar del Bufalo, 1786~1837) 신부가 이를 이탈리아에 소개한다. 1849년에는 교황 비오 9세는-교황청과 프랑스군이 그를 로마에서 몰아낸 혁명군을 무찌른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지극히 보배로운 성혈 축일(the Feast of the Most Precious Blood)’을 제정하고 7월의 첫 일요일을 성혈 축일로 지정하여 모든 교회가 지키도록 함으로써 이 축일은 로마 일반 달력에 포함된다.(4) 이어서 1914년 교황 비오 10세가 축일을 7월 1일로 재지정하였으며, 1960년 (교황 요한 23세 때) 개정된 로마 일반 달력에서는 1급 축일로 분류된다.

그러나 1969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른 전례력 개혁과 함께 성혈 축일은 일반 로마 달력에서 삭제되고, 대신 1970년부터 이전에 따로 기념하던 ‘성체 축일(Feast of Corpus Christi)’과 합쳐져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Solemnity of The Most Holy Body and Blood of Christ)’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5) 이와는 달리 성모와 관련된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축일은 현재 일 년에 열 번이나 있으나 성유와 관련된 것은 전무하다.(6) 이는 가톨릭교회에서 성모에 대한 신심은 여전히 강하나 여기서 성유는 더는 유의미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음을 말한다. 이에 반해 성혈 신심은 관련 축일의 제정 외에도 보혈선교회(the Missionaries of the Precious Blood, 1815-), 보혈선교수녀회(Missionary Sister of the Precious Blood, 1885-)와 같은 세계적인 조직을 출현시켰다.(7)

성모가 여성이라서?

가톨릭교회에서 성혈과 성유는 모두 귀중한 성유물이지만, 성유 공경이 점차 쇠퇴한 데에는 당시 유럽의 복합적인 사회적/교회사적/신학적 제 요인들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젠더에 따른 의미의 위계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즉 성혈은 성적으로 중립적이지만 성유에게는 여성적 속성이 부여되기에 수유하는 성모는 일차적으로 모성 또는 여성의 이상적 모델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얀센(Willy Jansen)과 드레센(Grietje Dresen)은 기독교에서 구원은 남성의 피를 소비함으로써 이룰 수 있으며, 피 흘리는 예수의 성심은 종종 마리아의 피 흘리는 성심을 동반하나 소비되는 것은 마리아의 피가 아니라 예수의 피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들은 젠더를 정의하는데 피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데, 즉 남성이 흘린 피는 신성하고 영웅적인 행동과 연계되는 데 반해 여성의 유출된 피는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되는데, 이는 해당 사회의 불평등한 젠더 평가를 반영할 뿐 아니라 여성을, 예를 들어, 성직자 역할에서 배제하는데도 기여했다는 것이다.(8)

미주

(1) Joachim Kügler, “Why should Adults want to be Sucklings again? Some remarks on the Cultural Semantics of Breast-feeding in Christian and Pre-Christian Tradition,“ in The Bible and Children in Africa, eds. Lovemore Togarasei & Joachim Kügler, Bamberg: Bamberg Univ. Press, 2014, pp 121f; 가톨릭교회 내 ‘공동구속자’ 호칭에 대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 〈마리아, 예수와 '공동구속자’로 호칭 요청〉, 《교회와신앙》 2017.02.27.

(2) Emily Kelly & Elisabeth Richards Rivenbark, “Introduction,” in Binding the Absent Body in Medievaland Modern Art: Abject, virtual, and alternate bodies, eds. E. Kelley & E. R. Rivenbark, London: Routledge, 2017, p. 1;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70328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최종 접속일 2021.11.27.); https://www.mbam.qc.ca/en/works/23803 (몬트리올 미술관, 최종 접속일 2021.11.27.)

(3) Willy Jansen & Gritje Dresen, “Fluid Matters: Gendering Holy Blood and Holy Milk,” in Things: Religion and the Question of Materiality, ed. D. Houtman & B. Meyer,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12, p. 227; Joachim Kügler, op. cit.

(4) Omer Englebert, Lives of the Saints, New York: Barnes & Noble Books, 1994, p. 254.

(5) 성혈 축일이 교회 전례력에서 빠진 것에 대한 공식적인 근거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에 대한 공경은 이미 수난 대축일, 성체 축일, 예수 성심 대축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Feast of the Exaltation of the Holy Cross)에서 행해지기에 ‘성체 축일’을 ‘성체 성혈 대축일’로 이름을 바꿨다는 것이다. (The Feast of the Most Precious Blood”, https://www.stcatherinercc.org/single-post/2020/07/01/the-feast-of-the-most-precious-blood (최종 접속일 2021.11.27.); “July 1 – Feast of the Most Precious Blood of Our Lord Jesus Christ”, https://sensusfidelium.com/the-liturgical-year-dom-prosper-gueranger/july/july-1-feast-of-the-most-precious-blood-of-our-lord-jesus-christ (최종 접속일 2021.11.27.)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성체 성혈 대축일’은 성체성사의 제정과 신비를 기념하는 축일로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에 지내는 이유도 성체성사 안에 하느님의 구원 신비 전체가 담겨 있음을 증거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성체성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성체성사가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절정이라고 선포된 이후에도 교회가 재차 이를 공표하면서 성찬례에서 빵과 포도주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하나 됨을 강조하였다.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시 성체성사와 교회의 불가분 관계를 다시 조명하는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Ecclesia de Eucharistia)를 반포한다. (인영균, 〈성체성사의 해를 정하게 된 배경과 그 의미〉, 《사목》 313, 2005년 2월;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가톨릭신문》 2020.06.14. 이렇게 교회가 성체(성사)에 우선적인 중요성을 부여하는 가운데 성혈이 (교리적, 의례적 차원에서) 독립적 위치를 확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바이넘(Caroline W. Bynum) 또한 가톨릭 전례에서 예수의 피(성혈)보다 몸(성체)이 강조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여러 이유 중 그간 성체 전례와 신학의 발전을 언급한다. 그녀에 의하면 교회는 지난 50년간 신자들의 관심을 성체에 집중시키려고 여러 노력을 했으며, 신도들에게 더는 포도주(성혈)를 제공하지 않는 이유로 포도주가 땅에 떨어지는 신성모독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표면상의 이유로부터 빵과 포도주에 각각 ‘온전한 그리스도’가 존재한다는 동시성(concomitance) 교리까지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Caroline Walker Bynum, “The Blood of Christ in the Later Middle Ages,” Church History 71(4), 2002, pp. 688f.)

(6) 성모 관련 축일 중 대축일(solemnity)-즉 로마교회력(Calendarium romanum)에서 가장 큰 (14개) 축일에 속하는–은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 8일),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 1일), 그리고 ‘성모승천 대축일’(8월 15일)이다.

(7) https://preciousbloodkc.org/about/; http://www.preciousblood.or.kr/main (최종 접속일 2021.11.27.)

(8) Willy Jansen & Gritje Dresen, op. cit., pp. 220ff.

우혜란 박사(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woohair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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