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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론적 집중칼 바르트의 신학에서 그리스도와 문화 ⑹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2.06.25 04:01

바르트, 안셀름을 만나다

바르트는 1930년대 접어들면서 그의 사상 발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두 번째 작품을 썼는데, 그것은 안셀름(Anselm von Canterbury)의 신 증명에 관한 해석서인 “인식을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 1931)이다. 바르트는 이 책의 중요성에 대해서 “나의 입장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라는 그의 자서전적인 언급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신학적 입장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심화되었다. 즉 이 기간 동안에 나는 기독교 교리의 철학적, 즉 인간론적(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이것을 ‘인본주의적’ 혹은 ‘자연주의적’이라고 말한다) 기초와 해석을 모두 벗어버렸다. 사실 인본주의에 작별을 고하는 작품은 사람들이 많이 읽는 1934년판 E. 브룬너에 반론하는 ‘아니다’(Nein!)라는 저서가 아니라, 1931년에 출판된 영국 켄터베리의 안셀름의 신 증명에 관한 책이다. 나는 나의 모든 저서 중에서 이 책이 가장 만족할만 하다고 생각한다.”(1)

바르트가 안셀름으로부터 새롭게 배운 사실은, 기독교 교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진술에서 우리에게 말해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바르트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일을 ‘그리스도론적 집중’이라고 했다. 바르트는 이 집중에 의해서 비로소 교회 전통과 철학적 체계라는 “달걀 껍데기”를 벗어나 모든 것을 그전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모호하지 않고 단순하게, 더 나아가서 신앙 고백적이면서도 자유롭고 개방적이고 포괄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2)

이후 바르트의 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개념은 『교회교의학』 시기를 거치며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란 중심 개념을 대치하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의 계시의 본질과 내용을 가장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다.(3) 1942년에 출판된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교리”(『교회교의학』 Ⅱ/2)는 바르트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을 전개하기 시작했는가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신성에서 하나님의 인간성에로 바르트의 강조점의 변화가 확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4)

바르트는 이제 『로마서 강해』에서처럼 ‘하나님 자체’나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전적 타자’로서 하나님을 말하지 않고, 인간의 상대자로서 인간과 맺은 계약을 수행하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하나님은 추상적 개념 속에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적으로 그에 관해 생각하고 알고 있는 하나님인 것이다.(5)

“하나님의 인간성”

바르트는 1956년 9월 스위스 아라우(Aarau)의 목회자들 앞에서 행한 “하나님의 인간성”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그동안 엄청나게 변화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하나님은 참으로 하나님이 되기 위해 결코 인간성을 배제할 필요가 없고, 결코 인간성을 갖지 않거나 심지어 비인간적이 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의 신성은 그 자체 안에 인간성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자유 안에서 인간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인간의 공로에 관계없이 그리고 그것에 맞서서 인간을 위해서 있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실로 인간의 파트너, 전능하고 자비로운 인간의 구주이길 원하신다.”(6)

이제 바르트는 인간의 하나님이 되고 인간이 그의 신적 영광의 인간적인 파트너로서 자신과 친교를 나눌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향해 돌아섰던 하나님을 “인간적인 하나님”이라고까지 말한다.(7)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40여 년 전에 모든 종류의 경건하고, 자유주의적이고 인간중심적 신학에 항거하여 강력하게 폭발했던 ‘하나님은 하나님이다’는 주장을 철회한 것이 아니라, 그 때 말했던 것을 다시 더 나은 방식으로 하나님은 또한 인간성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이라는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올바로 이해된 하나님의 신성은 그의 인간성을 포함한다.”(8)

그런데 만약 하나님의 신성이 그의 인간성을 내포하고 있다면, 인간적인 것 가운데 그 어느 것도 하나님에게서 거부되는 것은 없다.(9)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행동과 계시의 중심으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인 바르트는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해 좀더 개방적이고 적극적이며 관대한 관점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의 진리는, 디도서 3장 4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하나님의 인류를 사랑하심이며, 그 외의 다른 어느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그가 아무리 변태적이고, 파렴치하고, 비열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의 기초 위에서, 곧 예수 그리스도가 또한 그의 형제이며 하나님 자신이 또한 그의 아버지라고 하는 관점에서 고찰해야 한다. … 하나님의 인간성에 의해 인간에게 허락되는 특징은 또한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에 확대”되고, “인간의 특별한 활동들, 곧 보통 인간의 문화라고 부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확대된다.”(10)

그러나 문화에 관한 이같이 변화된 자세는 훨씬 이전부터 나타났다. 바르트는 앞서 언급한 그의 자서전적인 책에서 1928-1938년 동안의 그의 ‘그리스도론적 집중’을 회고하면서, 그 당시 자신이 전에 없이 인간의 문화에 깊이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일상적인 세계에서 이때만큼 즐겁게 살았던 적이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으며, 이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는 수도사 같은 집중으로 여겨지는 것을 신학에 도입했다.”(11)

거의 같은 시기에 바르트는 칼빈의 제네바 교회의 신앙 문답서(1545)를 해설하면서, 이렇게 진술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떠나 계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세상을 저버리지도 않으신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현실적인 통치 가운데서 현존하신다.”(12)

바로 이 “그리스도의 현실적인 통치”에 대한 분명한 의식 아래서, 바르트는 인간의 문화적 활동과 그것의 결과들을 보다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교회교의학』 화해론의 처음과 끝

바르트 신학에서 이루어진 이 같은 철저한 그리스도론적 집중은 1950년대 초부터 나오기 시작한 ‘화해론’에도 나타났다. 이 화해론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신학의 기초가 되는 본문이다.”(13)

이 보다 앞선 작품에서도 그는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단순히 한 인격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를 뜻한다면, 우리는 그가 기독교 메시지의 인식론적 원리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14)

여기서 바르트의 그리스도론적 집중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관철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종으로 낮추신 참 하나님이고 그로써 그는 화해하시는 하나님이다. 이것은 인간의 칭의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사역이다.(15)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다. 즉, 그는 하나님에 의해서 고양된 종이고 따라서 화해된 인간인데, 모든 사람들은 이 화해된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데까지 높아진다. 이것은 인간의 성화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왕적 사역이다.(16)

셋째,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이다. 그는 이 중보자로서 우리의 화해를 보증하고 증거하는 분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소명을 일으키는 그의 예언자적 사역이다.(17)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화해론의 “처음과 중간과 끝”이다.(18) 이제 바르트의 최종적인 창조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화해론’에서 바르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에 비추어 세상의 빛들과 진리들을, 즉 인간의 문화를 이해하고 해명하는지를 살펴보자.

미주

(1) K. Barth, 「바르트 사상의 변화」, 62.

(2) Ibid., 63-64. 바르트의 이 그리스도론적 집중은 특히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고, 독일 기독교인들이 히틀러를 하나님이 독일을 위해 보낸 메시아로 간주하고 히틀러와 나치 정권을 신성시 했던 1933년 이후에 나치 체제와 독일 기독교에 대한 바르트의 신학적이고 정치적인 활발한 투쟁 속에서 점점 심화되다가,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마침내 활짝 꽃을 피웠다. 오영석, “칼 바르트의 정치 신학 연구”, 28-39를 참고.

(3) Hans Urs von Balthasar, Karl Barth: Darstellung und Deutung Seiner Theology, 1951. tr by Edward T. Oakes, The Theology of Karl Barth,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1992, 114.

(4) Myong Yong Kim, Der Gottesbegriff Karl Barths in der heutigen Diskussion ,Tübingen: Refo-Druck Hans Vogler, 1985, 67-89 참고.

(5) 최영, 「칼 바르트의 화해론 연구」, 56.

(6) K. Barth, L'Humanité de Dieu, 28-29.

(7) Ibid., 29.

(8) Ibid., 13, 20. 바르트의 동시대인들은 그의 이러한 전환에 대해 그를 거듭 ‘새 바르트’(new Barth)라고 했고, 그를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휙하고 날아가는 제비와 같은 새로서 묘사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람의 사상의 깊이와 복잡성을, 또는 외견상으로 반대나 모순들로 나누어지는 요소들을 심오한 통일성 안에서 조화시키는 그의 근본적인 단순성을 보지 못했다. 이에 반하여 E. Busch, T. F. Torrance, G. Casalis 같은 신학자들은 바르트 신학 전체에 걸쳐 기본적인 연속성을 본다. 하나님의 인간성에 대한 바르트의 강조가 ‘전적 타자’로서의 하나님의 부정이 아니라 성취라고 해석하는 G. 까잘리의 Portrait de Karl Barth, Genève: Labor et Fides, 1960, 최 영 옮김, 「칼 바르트의 생애와 사상」,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3, 59를 참고.

(9) G. Casalis, 「칼 바르트의 생애와 사상」, 59.

(10) K. Barth, L'Humanité de Dieu, 31, 33, 35.

(11) K. Barth, 「바르트 사상의 변화」, 65.

(12) K. Barth, La Confession de Foi de l'Eglise, Neuchatel: Delachaux & Niestlé, 1946, 79.

(13) K. Barth, Dogmatique Ⅳ/2, 128 (이하 DO로 표기).

(14) DO Ⅳ/1, 17.

(15) DO Ⅳ/1.

(16) DO Ⅳ/2.

(17) DO Ⅳ/3-1, 2.

(18) DO Ⅳ/1,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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