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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회운동의 시작과 기독학생운동의 분화기독교운동의 균열에서 읽어내는 한국 사회운동의 균열 ⑴
황용연 연구기획위원장(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 승인 2022.06.27 15:34
▲ 기독교사회운동의 시작은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었다. 그후 70년대 들어 산업화에 따른 폐해에 주목한 기독교사회운동은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진화되어 갔다. ⓒGetty Image
이 칼럼은 지난 5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주최한 5월 월례포럼에서 발표된 글을 저자와 연구소의 허락을 얻어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게재를 허락해 주신 저자와 연구소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호부터 시작되는 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1.

20대 대통령선거 투표일 이틀 전에 [뉴스앤조이]에 <‘민주당 기독교지부’라는 오명>이라는 제목의 기자수첩이 실렸다. 이 기자수첩의 부제는 이러하다. <20대 대선이 남긴 것… 하나님 나라 가르쳐 준 지식인들의 몰락>.

이 칼럼은 복음주의 사회 선교와 에큐메니칼 정신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교회 개혁을 주장하면서 그 주장을 삶으로 살아낸 지식인들 대다수가 20대 대통령 선거 진행 도중에는 마치 윤석열 후보를 찍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이재명 후보를 찍어야만 참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주장하는 정파성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고 지적한다. 선거 진행 도중 상당히 많이 쏟아졌던 윤석열 후보의 무속/신천지 관련성에 대한 규탄의 성명서도 그러한 정파성의 한 예로 지적된다.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고작 2번을 막기 위해 1번을 지지해야 한다는 이분법에 함몰되어 버리지 않았냐는 물음이 이 기자수첩이 이야기하는 ‘지식인들의 몰락’이다.

한편, 대통령 선거 직후에는 [에큐메니안]에 <지금 그 선배들은 어디 갔습니까?>라는 글이 실렸다. 이 글 역시 에큐메니칼 운동이 특정 후보 지지의 편향에 빠져 있으며 그 특정 후보를 내세운 진영의 “저쪽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변명에 동참하는 데 급급한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현상이 아닌 체제를 바꾸자던 ‘그 선배들’이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필자는 위에서 언급한 두 글에 동의한다. 그러나 필자의 동의 여부를 떠나서, 이 글에서는 위의 두 글에서 한국 사회의 사회비판적 사유가 어떻게 형성되고 분화되는지를 추적하고 그 과정에 기독교는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살펴보는 실마리를 얻고자 한다.(1)

2.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사회비판적 사유를 갖게 되고 그 사회비판적 사유가 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범주 안팎으로 집약되게 된 뿌리를 대략 다음과 같이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1) 일제 시기~해방 후의 그리스도교적 민족주의 시도
(2) 학원 기독학생회 운동의 진보적 전환
(3) 산업전도 운동의 산업선교 운동으로의 전환

(1)번의 경우로는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북간도에 그리스도교적 민족주의 사회를 건설하려 했던 일련의 시도에 영향을 받은 김재준, 문익환, 강원용 등의 인사들과 동아시아적 종교/철학과 그리스도교 사상을 상호텍스트적으로 읽었던 유영모/함석헌 등의 인사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번의 학원 기독학생회 운동의 경우 출발점에서는 학생 기독교인의 모임의 성격이 강했으나 학원사회의 성격상 당대의 한국 사회의 핵심 과제로 인식되었던 근대화 담론에 민감했다는 점이 당시 전세계적인 자본주의적 진보 성향에 대해 일면 동의하면서도 일면 비판적이었던 WCC 운동의 근대화 대응 담론과 결합하면서 사회참여적 성격을 강화하게 되었다고 보인다.

(3)번의 산업선교 운동의 경우에는 전환 이전의 산업전도 운동 자체가 당시의 한국 기독교에서는 이례적인 시도였으나 당시 노동자들의 현실과 부딪치면서 산업선교 운동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1), (2), (3)번의 전개 양상은 적어도 그 출발점에서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신앙에 의문을 제기했다기보다는 그 전통적인 신앙에 몰입/헌신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전쟁과 분단을 동반한 국민국가 건설과 개발독재를 동반한 경제 건설이라는 한국 근대화의 특징으로 인해 나타난 다양한 양상이 앞에서 언급한 몰입과 헌신의 자극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분단과 개발독재로 인해 근대화의 비전이 산업화와 민주화로 분열하고 산업화 고통을 넘어선 대안 근대화에 대한 상상이 민중이란 용어로 응결될 때 한국의 기독교 에큐메니칼 운동은 그 응결에 꽤 많이 관여하였고 민중은 신앙의 지평 안팎을 넘나드는 헌신의 대상이 되었다. 즉, 한국의 사회비판적 사유의 형성 과정에 기독교 에큐메니칼 운동은 중요한 행위자 중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중신학’이라는 새로운 사유도 탄생하였고 이 새로운 사유에는 전통적 신앙에 대한 몰입과 헌신에 거리를 두게 하는 요소들도 꽤 많이 포함되었다. 심지어는 일각에서 맑스주의적 세계관으로 기독교를 해체-재구성하려는 시도까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민중신학의 주된 수요자들에게는 민중신학의 그런 요소들까지 다 뭉뚱그려져서 신앙의 지평 안팎에서의 민중에 대한 헌신을 지지하는 근거로 이해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NCCK 등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공식 기구를 통한 운동만이 아니라 일반 사회운동과 좀 더 적극적인 관계를 가지려는 의도의 조직운동과 연합운동이 시도되었다. 이러한 연합운동이 공식 기구 운동과 배타적인 관계였던 것은 아니지만 운동 방향의 차이와 성향의 강약까지 없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한편, 에큐메니칼 운동 진영 바깥의 이른바 보수주의적 기독교에서는 개발독재 정권과 공개/비공개적으로 유착하거나 혹은 그 유착을 지지하거나 하는 양상이 펼쳐졌으나 1980년대 후반 변화의 계기가 생긴다. 특정 대학 위주의 서사이긴 하지만 보수적 신앙의 입장에서 나름 시대에 대응하고자 하는 문제의식까지 담아 열고자 했던 대학 찬양 집회가 동료 학생들의 집단적인 반발에 부딪친 데에다가 그날 한 학생열사의 분신까지 겹치며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면서 그 집회를 기획했던 이들이 사회참여 없는 신앙의 한계를 느끼고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시작한 것이 이른바 개혁적 복음주의의 시작점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들은 주류 보수주의 진영에서 조심스럽게 탈피하려 했으나 에큐메니칼 진영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신앙의 지평 안팎을 넘나드는 모습 때문에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입장에 우호적인 혹은 그렇게 보이는 학자와 목회자들을 모아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몇몇 조직에서는 분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그리고 노태우 정권기의 민주화 진통과 맞물리면서 개혁적 복음주의의 흐름에 서 있는 사람들은 6월 항쟁을 실마리로 하는 한국의 민주화 서사를 내부에 깊이 수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이 개혁적 복음주의 흐름에는 대체로 신앙적인 몰입/헌신 효과를 주로 하여 사회참여 이슈를 그러한 몰입/헌신 효과의 연장선상에서 소화하려 하는 경향이 깊게 깔려 있다. 이런 내적 경향은 자연스럽게 일반 사회운동의 사회비판적 사유에 대한 거리두기 경향으로 이어졌고 이 점에서 에큐메니칼 운동과의 차이가 드러나게 되었다.

미주

(1)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기독교, 나아가 일반적인 종교가 특정한 집단/가치 등과 만날 때 빚어지는 효과를 일단 몰입 효과와 거리두기 효과의 두 가지로 정리하기로 한다. 몰입 효과는 특정한 집단/가치에 대해 헌신하게 하는 장점이 있으나 그 장점과 매몰이라는 단점은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거리두기 효과는 특정한 집단/가치에 대해 성찰하는 장점이 있으나 그 장점과 방관이라는 단점은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황용연 연구기획위원장(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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