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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스스로 만든 장애물“네 이름이 무엇이냐?”(누가복음 8:26-39)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6.28 00:29
▲ 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Exorcism of the Gerasene demoniac」 (1860) ⓒWikimediaCommon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나의 상황에 따라 누리거나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기에 선택의 문제입니다. 평안을 선택하십시오. 평안을 누리십시오.

얼마 전 북미 최고 권위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열여덟이 된 피아니스트 임윤찬 군이 최연소 우승을 했습니다. 이 피아니스트의 결선 무대를 함께했던 거장 지휘자, 이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이자 미국 메이저 악단 첫 여성 상임지휘자 기록을 세우며 유리 천장을 깬 마린 알솝은 “내 음악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다.”고도 했습니다.

이번 콩쿠르 우승으로 인해 피아니스트 임윤찬 군과 관련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결선 연주 영상만 200만 뷰를 넘겼습니다. 전 세계에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고, 미국에서 돌아와서 하게 될 국내 공연은 모두 매진이 된 상태입니다. 10월로 예정된 정명훈 씨와 협연 무대도 예매 전부터 관심이 뜨겁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이 임윤찬 군이 우승 후 인터뷰를 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수상이 목표가 아니었고, 이 콩쿠르를 통해 제 음악이 더 깊어지길 원했기 때문에 관객분들 마음에 제 진심이 닿았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 마음에서 나쁜 것을 품으면 음악이 정말 나쁘게 되고 마음으로부터 정말 진심으로 연주를 하면 음악도 정말 진심이 느껴지게 되는 게 음악의 정말 무서운 점이기 때문에 음악가로 성장한다는 건 단지 기교의 완성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사실 콩쿠르 영상을 보게 되면 마음 상태와 상관없이 연주하는 기교에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임윤찬 군은 음악의 완성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마음의 상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좋은 예입니다.

우리 교회의 표어인, ‘마음을 지켜 생명이 흐르게 하는 교회’도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잠언 4:23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저와 성도님들의 마음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이 마음에 상처를 내기 위해, 또는 마음을 조각내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들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시도들에 맞서 생명의 근원이 되는 마음을 지켜 사랑이 흘러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생명이 타인에게 흘러 찢어지고 무너진 마음이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과 생명은 방해받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이 흘러감을 막는 장애물들을 치워내면 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시험에 들었습니다!’라고 표현합니다. 마치 외부의 무엇 때문에, 보이는 행동과 듣게 된 말 때문에 시험에 들었다고 표현하지만, 스스로 맡긴 것일 뿐입니다. 스스로 시험에 들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스스로 장애물을 설치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죄의 종에 내맡기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겼다.’ 내맡겼다는 이 말씀은 나에게 죄의 종에 내맡기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표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어떻게 하면 마음을 지켜 생명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세운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할 수 있는지를 깨닫고 결단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어떤 장애물을 설치했는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 마음이 흘러가지 않도록 막아놓은 장애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장애물을 치울 수 있습니다.

저는 산의나 봄의가 가끔 계속 아픈 것을 호소하는데, 아이가 왜 아픈지 이유를 알 수 없을 때면 큰 불안에 휩싸이곤 합니다. 하지만 병원에 가서 왜 아픈지, 어떤 병명인지를 듣고 나면 아이가 아픈 것은 변함없지만 제 마음에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곤 했습니다. 병명을 알면, 어떻게 치료받아야 할지에 관한 과정이나,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도 그렇지만 삶에서 겪는 두려움은 그 두려움의 정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서 저의 자녀들의 예처럼 두려움의 실체가 명확해지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귀신에게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귀신에게 이렇게 이름을 묻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실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한 질문입니다. 실체를 알아야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이름은 곧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실체를 알려줍니다. 호세아 1:2-9 “2 주님께서 처음으로 호세아를 시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주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 이 나라가 주를 버리고 떠나서, 음란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3 호세아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하였다. 고멜이 임신하여, 호세아의 아들을 낳았다. 4 주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하여라. 이제 곧 내가 예후의 집을 심판하겠다. 그가 이스르엘에서 살육한 죄를 물어서 이스라엘 왕조를 없애겠다. 5 또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평원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겠다.’ 6 고멜이 다시 임신하여 딸을 낳았다. 이 때에 주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라고 하여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겠다. 7 그러나 유다 족속은 내가 불쌍히 여기겠다. 그들의 주 나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그들을 구출하겠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활이나 칼이나 전쟁이나 군마나 기마병으로 구출하는 것이 아니다.’ 8 로루하마가 젖을 뗄 때에, 고멜이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9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고 하여라. 너희가 나의 백성이 아니며, 나도 너희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 ‘하나님이 씨를 뿌리시다’, 둘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딸’, 셋째 아들의 이름은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회복을 말씀하시면서 자녀들의 이름이 바뀝니다. 호세아 2:1 “이제 너희는 형제를 암미라고 하고, 자매를 루하마라고 하여라.” 셋째 아들의 이름은 로암미에서 암미, 내 백성이다. 둘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에서 루하마, 불쌍히 여김을 받는 딸로 바뀝니다.

호세아 본문에서 보듯이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2장에서 야곱과 씨름하던 천사는 야곱에게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질문했습니다. 창세기 32:27-28 “그가 야곱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야곱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천사가 야곱에게 이름을 물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름은 그 사람이 누구의 혈통 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또는 살게 될지에 대한 정체성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을 듣고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 즉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습니다.

나에게 있는 악의 정체, 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면 물리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에게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러자 그가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이름을 말하지 않고, “군대”라고 대답합니다.

그 이후에 본문에서 일련의 과정이 이루어지고 이후 본문은 사람들이 두려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4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도망가서 읍내와 촌에 알렸다. 35 그래서 사람들이 일어난 그 일을 보러 나왔다. 그들은 예수께로 와서, 귀신들이 나가버린 그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서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그의 정체성이 군대임이 밝혀지자 군대가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서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있습니다. 이전에는 그는 군대라는 정체성을 가졌으나 이제 그는 예수와 함께 있기를 원하고, 예수와 함께 떠나기를 간청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존재의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38 귀신이 나간 그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를 돌려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39 ‘네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다 이야기하여라.’ 그 사람이 떠나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낱낱이 온 읍내에 알렸다.”

예수님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낱낱이 온 읍내에 알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정체를 명확하게 알게 되면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런 힘과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찢고, 우리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정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고, 그 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우리는 그 이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불분명한 정체는 우리가 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정체에 이름을 붙이고 물리치십시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장애물의 정체를 깨닫고 장애물을 치워버리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십시오. “나의 삶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으리!” 스스로 만든 죄 또는 두려움이라는 장애물에서 벗어나 마음을 지킴으로 마음으로부터 생명을 흘려보내는 저와 성도님들의 복 된 삶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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