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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세우신 교회, 십자가를 지는 공동체(왕상 12:12-19; 빌 2:19-30; 마 16:24-28)성령강림 후 넷째주일/맥추감사주일(7월3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06.30 22:58

1.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절은 유대인의 3대 절기인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중 하나인 칠칠절에서 유래됩니다. 칠칠절을 맥추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유월절이 끝난 후 7주가 지난 다음 날, 곧 50일째 되는 날 곡식을 처음 거두어 수확한 첫 단을 하나님께 드린 절기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맥추절을 초실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첫 보리를 거두어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기독교회가 매년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는 의미는 지난 6개월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남은 6개월도 감사로 시작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2022년 전반기를 은혜 가운데 동행하신 하나님께서 남은 절반도 함께하시어 감사의 조건이 많아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한 오늘은 계속되는 성령강림절기로, 성령강림후 넷째주일입니다. 우리는 성령강림절기 동안 계속해서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십자가를 지는 공동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지고, 인간관계는 파괴되고, 민족은 분열됩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삶이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반면 십자가를 지면 어떻게 될까요?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두 사람을 통해서 십자가를 지는 유익을 잘 보여줍니다. 첫 번째 인물은 바울의 영적 아들 디모데인데, 그는 십자가를 지는 신앙의 연단을 받아 다른 사람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귀한 사역자가 됩니다. 두 번째 인물은 빌립보교회의 집사인 에바브로디도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죽기에 이르렀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 존귀함을 받습니다. 회복된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지는 삶이 은혜요, 평안임을 잘 보여줍니다.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4-26)

목숨이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천하를 얻어도 목숨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목숨은 구원하고자 하면 잃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잃으면 다시 찾을 것이라고 합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 16:27-28)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행한 대로 갚으시겠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책임을 다했는지, 또한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완수했는지에 대한 ‘실천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믿음’을 강조하는 바울 신학과는 결이 약간 다르죠? 마태복음은 실천을 강조합니다. 그것도 임박한 종말에 직면하여 결단하고 실천하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심판은 내가 행한 대로 받는 것입니다. 지난주 말씀처럼 나의 삶이 곡식의 삶이었다면 창고로, 가라지 같은 삶의 모습이었다면 불에 타 심판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세우신 참된 교회는 십자가를 지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구약 말씀은 그 결과를 잘 보여줍니다.

2.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말씀의 배경을 좀 살펴볼까요? 솔로몬 왕이 죽고 난 후, 아들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르호보암을 왕으로 삼고자 세겜에 모인 것입니다. 세겜은 나중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고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됩니다만, 아무튼 이때, 이스라엘 10지파는 솔로몬 왕 살아생전, 왕을 피해 애굽으로 도망간 여로보암을 불러, 르호보암에게 아버지 솔로몬 왕 때부터 부과한 고역과 멍에를 덜어 주면 르호보암을 왕으로 섬기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르호보암은 삼 일 후에 다시 만나자고 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왕상 12:12-14)

▲ 르호보암 왕, “내 새끼손가락이 아버지 솔로몬보다 굵다!”

르호보암은 솔로몬 왕 생전에 왕을 보좌해 나라를 다스린 노련한 정치가들에게도 자문을 구하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도 의논합니다. 결국 르호보암은 현자들인 노인들의 자문을 듣지 않고,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이스라엘에 멍에와 고역을 더 무겁게 합니다. 그러자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10지파는 르호보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왕상 12:16)

북이스라엘의 성립입니다.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왕상 12:17)”습니다. 이렇게 남북이 갈라집니다. 그런데 15절 중간에 신명기 사가는 이 사건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왕상 12:15).”

무슨 말씀인가요? 남북이 갈라진 것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찾아볼까요? 열왕기상 11장 28절 말씀입니다. 여로보암에 대한 소개와 남북분단, 그리고 그 이유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 여로보암은 큰 용사라. 솔로몬이 이 청년의 부지런함을 보고 세워 요셉 족속의 일을 감독하게 하였더니, 그즈음에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길에서 그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 아히야가 자기가 입은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으로 찢고,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성읍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왕상 11:28-32)

▲ 이히야 선지자가 자신의 옷을 12개로 나누어 10장을 여러보암에게 주고 있다

뭐라고 하죠? 열 지파를 큰 용사인 여로보암에게 주고, 나머지는 한 지파인 벤야민 지파를 예루살렘, 곧 유다를 위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니라.”(왕상 11:33)

하나님을 섬기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데, 우상을 숭배하고 정직하지 않으며 말씀을 준행하지 않았기에 나라를 분열시켰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해 어리석은 조언을 들었던 르호보암은 역군의 감독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로 보냅니다. 다시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볼까요?

“르호보암 왕이 역군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쳐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왕상 12:17-19)

▲ 르호보암의 남유다와 여러보암의 북 이스라엘

십자가를 지지 않고, 서로 탐욕을 부린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탐욕에는 말씀을 사모하지 않은 우상 숭배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3.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이번에는 반대의 경우를 살펴볼까요? 십자가를 진 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길에서, 더베와 루스드라에 갔을 때 만난 영적 아들입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며,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당시 디모데는 루스드라의 많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성경을 배웠고, 유니게는 또한 그녀의 어머니 로이스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디모데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믿음을 잘 이어받았습니다. 모범적인 신앙의 가정에서 자랐던 것입니다.

▲ 바울과 디모데, 그리고 실라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당시, 오늘날 터키 지역인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 하게 하여(행 16:6), 유럽인 마케도니아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1차 전도여행 때, 바울과 함께 동역했던 레위인이자 구브로 섬 출신인 바나바 대신, 아버지가 헬라인이라, 헬라 문화를 잘 아는 디모데를 붙여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2차, 3차 전도여행 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 의해 고발당하고, 가이사랴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라, 황제의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됩니다. 그리고 로마 감옥에 갇혀서 편지를 씁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4권의 옥중서신입니다. 특히 빌립보서는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 바울을 도와준 빌립보교회에 쓴 감사의 편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사람의 사역에 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빌 2:19-24)

바울은 출옥하게 되면 먼저 빌립보로 가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디모데를 먼저 보내고 자신도 속히 빌립보로 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서 디모데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먼저, 디모데는 빌립보교회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한다고 하죠? 모두 다 자기 일을 구할 때, 디모데는 진실하여 예수님의 뜻을 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디모데는 이 일을 위하여 연단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이의 모습입니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자기 이익을 위해 교회를 이용할 때, 오직 진실한 주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뜻을 구하며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교회와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인물을 살펴볼까요?

▲ 에바브로디도, 소스데네, 아볼로, 게바, 시저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빌 2:25-27)
 
에바브로디도(이름의 뜻은 잘생긴, 사랑스러운) 집사 이야기입니다. 사실 빌립보서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이 어떤 교제를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말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빌립보교회는 복음으로 인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섬기기 위해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합니다. 당시 빌립보에서 로마까지 여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리는 약 1,800km 정도로 40여 일이 걸리지만,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 집사는 그 일을 자청했습니다. 그 먼 길을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에 도착한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의 옥바라지를 합니다. 쉽게 말해 바울을 먹여 살리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을 먹여 살리다 그만 에바브로디도가 병이 들었습니다. 먼 여행길로 인해 지쳤고, 또한 건강도 나빠졌습니다. 병들어 눕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다시 고향 빌립보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빌립보교회 교인들이 걱정합니다. 좋은 일을 위해 사람을 파송했는데, 그 사람이 병들어 고통을 받게 되었으니, 파송한 교회가 시험에 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빌립보교회 교인들이 걱정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에바브로디도는 그것 때문에 근심합니다. 무슨 말인가요? 빌립보 교인들이 나를 바울에게 보내서, 이제 내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병듦으로 바울을 도우려는 빌립보교회에 실망을 주는 것이 미안해 근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이렇게 에바브로디도는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했지만, 자신의 안위보다는 파송한 교회의 근심을 위해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교회를 위해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종이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자신을 파송한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 근심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성령 충만한 이의 모습입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 2:28-30)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빌립보교회로 보냅니다. 병이 나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성령 충만한 사람, 십자가를 지는 사람, 자신의 안위보다 교회를 더 생각하는 사람, 그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살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는 이렇게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같은 사람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르호보암과 여로보암같이 마음이 맞지 않아, 갈라지는 일도 있습니다. 그 원인을 보면 모두 다 우상 숭배입니다. 말씀을 사모하지 않고 세상 재물과 유혹에 빠져 그릇된 길로 가기 때문에 갈라지고 분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길과 십자가를 내팽개쳐 버리는 길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팽개쳐 버리는 길이 쉬워 보입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은 심판과 고통입니다. 반면 십자가를 지는 길은 처음에는 힘들어 보이지만, 마침내 그 길은 생명의 길이요, 영광의 길입니다. 어떤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분별의 영을 주시어 올바른 선택을 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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