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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서 걸어갈 엘로힘을 우리에게 만들라”금송아지 사건(출애굽기 32:1-4)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7.03 14:29
▲ 「The Golden Calf」 (Illustration from the 1890 Holman Bible) ⓒWikipedia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이번 주일은 성령강림 후 넷째 주일이자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에 선정된 오늘 본문은 맥추감사주일에 전해드릴 말씀으로는 부적절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선정된 본문들은 맥추감사주일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 이런 절기를 보내는 우리의 마음과 신앙에 초점을 맞춘 듯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금송아지 이야기는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손에 놓인 본문의 형태는 단순한 우상숭배 이야기, 출애굽 과정에서 발생한 하나의 에피소드로 읽기에는 애매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저희는 출애굽기 32장에 나타난 금송아지 사건을 살펴보고, 이 말씀이 맥추감사주일을 지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신앙을 전해주는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금송아지 사건 개요

출애굽기 32장에 나타난 금송아지 사건은 중간에 나타난 법들을 제외하면, 출애굽기 19장에서부터 이어지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며 시내산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떨었고, 모세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보려고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산에 경계를 치도록 명하셨고, 모세와 아론이 함께 하나님께 올랐다고 말합니다.

그 뒤 20장에는 십계명이 나온 이후에 백성들이 두려워하였다는 내용을 전하며, 모세만 하나님께 가서 말씀을 듣고 그 이야기를 자신들에게 전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세 홀로 하나님께서 계신 흑암으로 나아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모세 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후 24장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들은 율법을 백성들에게 전해주었다는 이야기가 나타나고, 백성들에게는 제사를 지내도록 명령합니다. 그후 하나님께서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주시겠다며 모세를 다시 부르셨고, 모세는 산에 올라가 40일을 보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송아지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 갔다가 돌아왔음을 봤습니다. 또 모세가 하나님께 올라가 율법을 전해 듣고 왔음을 봤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고 두려워했던 하나님의 영광은 여전히 시내산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 순간에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에게 요구한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앞으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원어를 그대로 옮기면 “우리 앞에서 걸어갈 하나님(엘로힘)을 우리에게 만들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다” 이들이 이런 요구를 한 이유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한 달이 넘도록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을 이곳까지 인도한 존재가 하나님이 아닌 ‘모세라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점입니다.

이들의 요구에 아론은 금을 모아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금을 녹이고 세공하여 송아지 형상을 만듭니다. 이때도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백성들은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요구했는데, 아론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한 신’을 만듭니다.

그 후 아론은 야훼의 절기를 선포하고 금송아지 앞에서 절기를 지킵니다. 아론은 금송아지 형상이 야훼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들의 모습을 보시며 진노하십니다. 그들이 금송아지를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고 했다는 점에 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분노에 모세가 중재자 역할을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이야기를 들으신 후에 뜻을 돌이키셔서 화를 백성에게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돌이키셨지만,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분노를 가라앉히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레위인에게 명령하여 형제, 친구, 이웃을 죽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약 3천명의 사람이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초점이 안 맞는 이야기

출애굽기 32장에 나타난 금송아지 사건은 분명 열왕기상 12장에 나타난 여로보암의 금송아지와 연결되는 사건입니다. 어쩌면 북왕국의 금송아지 제단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상을 만들고 그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산당을 만든 뒤에 레위인이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출애굽기에 나타난 금송아지 이야기는 이런 여로보암의 정책을 전면에서 부정합니다. 금송아지는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드는 우상일 뿐이며, 하나님의 택함 받은 제사장은 레위인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 역사 속에서 출애굽의 기억을 간직하며 전승해 온 사람들은 남왕국 유다가 아닌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만약 오늘 본문의 금송아지 사건이 실제 출애굽 시기에 발생한 사건이라면,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최종적으로 엮은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었던 남왕국 유다 출신의 사람들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금송아지 사건을 읽는다면, 이 사건을 통해 전해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북왕국 제단과 제사 형식, 종교 정책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이 이렇게 역사적인 측면에서 읽어가고 이해할 필요도 있지만, 말씀 자체로도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금송아지 사건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초점이 어긋납니다.

먼저 하나님의 임재를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을 이끈 존재가 하나님이 아닌 모세라고 말하는 점도 이상합니다. 또 앞으로 자신들을 인도할 새로운 신을 요구하는 점도 이상합니다. 더욱이 새로운 신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에서 인도한 신’을 제시하는 아론의 행동도 이상합니다.

어쩌면 아론의 행동을 약간은 옹호해줄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신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를 인도하신 분이 누군지 기억하라’라는 의미에서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특단의 조치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가 아닌 아론의 방식에 진노하십니다. 아론이 금송아지를 자신의 대체재로 제시한 점에 진노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주요 책임자인 아론은 이로 인한 벌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노를 거두셨기 때문인지 아론은 처벌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 됩니다.

민수기에는 아론의 죽음과 그가 범한 잘못에 관한 이야기가 나타나는데, 이때 금송아지 사건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므리바에서 물을 낼 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점이 아론의 죄로 지적될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진노를 돌이키셨는데, 모세가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 3천명을 죽이는 모습도 이해가 안 되기는 합니다. 모세는 이런 처참한 일을 행한 뒤에 다시 하나님 앞에 올라가 속죄를 합니다. 그리고 32장의 마지막 35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

출애굽기 32장에 나타난 여러 측면에서 어긋나 있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 우리가 만나고 있는 하나님,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하나님을 알려줍니다. 또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행동인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계신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애굽에서 자신들을 이끌어주신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그 하나님은 너무도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죽일 수도 있는 존재, 하나님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했던 모세까지도 죽일 수 있는 존재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새로운 신을 요구합니다. 앞으로 우리를 이끌 조금 친절한 신을 요구합니다. 아론은 그들에게 우리를 이끈 분은 야훼 하나님이시라고 강조하지만, 눈으로 볼 수 있고, 본다고 죽을 위협을 느끼지도 않고, 황금으로 만들어져 화려하기에 마치 나에게도 큰 재물을 안겨 줄 것만 같은 신을 만들어냈습니다. 시내산의 하나님보다는 친절한 하나님을 만들었습니다.

모세의 행동에 대해서는 지금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돌이키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분을 억누르지 못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돌판을 깨뜨려버리고,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죽이게 만든 행동은 분명 옳지 않아 보입니다. 또 이로 인해 칼을 들었던 레위인만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이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마지막에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세에 대한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이 편집되는 과정에서 구절의 위치가 바뀌었다거나, 마지막 구절은 출애굽기를 기록한 이들이 모세를 옹호하기 위해 첨가한 내용이라는 학술적 논쟁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 가지 이 장면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이 있기는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을 분명히 벌하시는 분이시라는 점입니다. 때로는 그 화를 돌이키시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했을 때 이를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34절 하반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그리고 34절 상반절은 이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며, 친절한 신을 원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와는 다르게, 당신의 사자가 그들의 앞에서 걸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맥추감사절을 보내는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원하며 지금의 절기를 지내고 있습니까? 이 말씀을 읽으시는 분 중에 보리를 추수하시는 분은 거의 안 계실 것입니다. 그래도 추수감사절과 마찬가지로 한 해의 삶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로 보내고 계실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때로 혼내시고 벌주시기도 하셨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까? 잘 살게 해주셨던 일들, 풍족한 소득을 얻게 하셨던 일들만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내 삶이 풍족하고 잘 살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풍요의 신이 아닙니다. 우리가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앞에서 바른길을 제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우리를 벌주시고 가르치시는 분이십니다. 그저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 옳은 길을 걸었을 때 우리 삶에서 풍족함을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삶의 풍요로움은 하나님을 믿어서 얻게 될 최종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저 그 길을 걸었을 때 부차적으로 얻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맥추감사절에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금 생각하시는 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신 하나님을 다시금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끝까지 따르기로 다짐하시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놓지 않고 끝까지 인도하시며, 삶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도우시며, 영의 풍족함으로 날마다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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