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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받는 사람과 내가 둘이 아니다“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갈라디아서 6:1-2)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7.04 22:54
▲ 대우조선해양 한 하청노동자가 가로세로높이 1미터 크기의 철판을 만들어 그 안에 스스로 몸을 가둔 채 농성하고 있다. ⓒ금속노조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우리 안에 주어진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평안을 선택하고 누릴 때, 우리 안의 생명과 사랑이 흘러,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선한 영향도 미칠 줄 믿습니다.

먼저 제가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읽은 신문 기사를 성도님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주중에 총회 사회선교정책협의회에 참여했다가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2018년 강원도 평창에서 전 세계 국가들이 모여 동계스포츠의 승부를 겨루는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소했던 한 종목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바로 ‘컬링’이라는 종목입니다. 컬링 경기 내내 ‘영미~’라는 이름이 불렸는데, 기억나시나요?

이 컬링 경기를 보고서 한국일보에 2018년 당시 서울시립과학관장이었던 이정모 씨가 칼럼을 썼습니다. 제목은 “언니, 그냥 던져요.”입니다.

컬링이라는 종목은 ‘스톤을 30.48m 떨어진 목표 지점(하우스)에 얼마나 가깝게 그리고 많이 밀어 넣느냐가 승패를 결정한다. 그래서 야구에서 투수가 차지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컬링에서도 투척은 아주 중요하다. 자기 스톤을 하우스에 넣으면서 상대방 스톤을 하우스에서 제거해야 한다.

컬링은 알까기보다는 체스에 가깝다. 고도의 두뇌 게임이기도 하다. 스킵이 던지는 마지막 7, 8번째 스톤으로 게임이 결정되는데 이때를 위해 사전에 필요한 것이 있다. 가드가 바로 그것. 가드를 정확한 위치에 설치하고 그 뒤에 숨고 또는 상대방의 가드를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이것을 위해 스윕이라고 하는 비질을 잘 해야 한다.

컬링 게임을 하도 봤더니 어느 나라와 경기할 때였는지 모르겠다. 우리 팀의 스킵인 영미 친구는 자기가 마지막 스톤을 회전시켜서 상대편 가드 뒤로 과연 넣을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했다. 확신이 서지 않으니 작전을 세우는 데 주저할 수밖에. 이때 나는 분명히 들었다. “언니, 그냥 던져요.” 영미 동생이든지 아니면 영미 동생 친구가 한 말이다. 자기네가 비질을 해서 스킵이 투척한 스톤의 길을 열어줄 테니 믿고 편하게 던지라는 뜻이다.’

스킵인 영미 친구는 동료들을 믿고 스톤을 던졌고, 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승리하지 못했을지라도 참 멋진 말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책임을 함께 지자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언니, 그냥 던져요.’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료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면, 큰 힘이 되지 않겠습니까?

주중에 방금 들려드린 이야기와는 다른 풍경의 기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처우개선과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한 달 가까이 파업 시위에 나선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소식이었습니다. 한 노동자는 부피 1㎥짜리 철 구조물에 들어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도록 철 구조물을 용접해서 자신을 가두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있었습니다.

이 기사 내용이 앞 이야기와 다른 점은 “언니, 그냥 던져요!”라고 말해야 하는 주체들이 침묵했다는 점입니다. 짐을 함께 짊어져야 할 이들이, 노동자들의 요청을 무시했습니다. 짐을 나누어지는 이들이 없기에, 고통이 한쪽에만 치우쳐 있기에, 노동자들은 결국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14-16 “몸은 하나의 지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발이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귀가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이 권면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25-26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사실 이 고린도전서의 말씀은 교회 공동체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여러 분파로 나뉜 고린도교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고린도교회가 분열되지 않도록 권면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 말씀이 교회 공동체 안에만 한정되어 전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각자가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지만,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어서 교회 공동체를 지키는 건 교회 안에서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습니까?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민만 고통받고 있지 않습니다. 당장 우리가 사는 초도리에서도 이 전쟁으로 인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곳에서 전쟁이 벌어졌는데, 당장 강원도 고성 초도리의 마을 주민이 기름값의 상승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제 먼 나라 일이 나와 상관없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후 위기는 또 어떻습니까? 1960년대 고성에서 돌아다니는 강아지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말할 정도로 명태잡이로 부를 쌓아 올렸지만, 불과 40년도 지나지 않아서 그 많던 명태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명태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후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명태가 오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명태는 잡히지 않지만, 이제 방어가 잡히지 않습니까! 하하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방어는 또 언제까지 가겠습니까?

경남 거제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투쟁이 결코 우리와 멀지 않습니다. 이 일의 결과는 결국 우리 자녀와 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들이 우리의 발이고, 그들이 우리의 눈이고, 그들이 우리 몸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발이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는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지체들이 서로 걱정하게 하셨다.”는 권면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는 우크라이나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러시아 사람이 아니니까.’ 나와 상관없다고 말하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습니다. 함께 걱정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 공동체도 안전할 수 있고, 건강할 수 있습니다.

오늘 갈라디아서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의 공동체는 서로에게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곳입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언니, 그냥 던져요.”라고 말할 수 있는 공동체인가요? 또는 이 말을 듣고 기꺼이 상대방을 신뢰함으로 스톤을 그냥 던질 수 있는 공동체일까요?

“1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2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도 교회 안으로만 좁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야베스와 같은 마음으로 이 말씀을 해석해야 합니다. 역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해 주시고, 내 영토를 넓혀 주시고, 주님의 손으로 나를 도우시어 불행을 막아 주시고, 고통을 받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가 구한 것을 이루어 주셨다.”

야베스의 기도로 알려진 이 말씀은 단순히 개인적인 간구의 기도가 아닙니다. ‘내 영토를 넓혀 달라’는 간구가 개인적으로만 해석하기에 불가능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지파별로 차지할 수 있는 땅의 경계를 정해주셨고, 지파 안에서도 소유할 수 있는 땅을 공평하게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며 야베스의 간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 불행과 고통을 받지 않는 영역이 더 넓혀질 수 있도록 하는 타인과 공동체 전체를 향한 기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야베스의 마음으로 오늘 본문을 해석해야 합니다.

근래에 가뭄이 극심했습니다. 그런데 서울 사람이 며칠 서울에 폭우가 내린 이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가 이렇게 많이 내렸는데 무슨 가뭄이야?”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비가 온 범위와 강수량을 보면 서울과 경기권에 집중적으로 비가 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가뭄에 시달리는 지역이 많이 있고, 고통 속에 있는 농민들과 주민들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나와 내 주변만 생각하는 이들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온 죄에 빠져 살아가는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럴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에 빠진 그들을 비난하거나 탓하기보다,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의 좁아진 시야를 넓혀 주어야 합니다. 스스로도 시야가 좁혀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주의해야 합니다.

나와 내 주변만을 생각하려는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야베스와 같은 마음으로 지금 아파하고, 고통 받고, 불행 가운데 있는 이들을 찾아 그들의 짐을 나눠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랑, 섬김의 실천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고고하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짐을 함께 짊어질 때, 죄에 빠진 이들을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잡아 줄 때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나와 너는 새롭게 창조됩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의 어리석음, 죄를 바로 잡아 주고, 고통의 짐, 가난의 짐, 무거운 짐을 나누어 짐으로서 새로운 존재로 함께 창조됩니다. 갈라디아서 6:15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님들께 오늘 말씀을 통해 드리고 싶은 권면입니다. “9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온유한 마음으로 죄를 바로 잡아 주고, 짐을 나누어질 때 오히려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받고 싶은 유혹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통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을 믿고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언니, 그냥 던져요.”라고 서로에게 말하고, 또 이 말을 듣고 기꺼이 그냥 던질 수 있는 초도제일 믿음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 섬김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를 넘어 지역과 세상 속에서 짐을 기꺼이 나눠질 수 있는 빛과 소금의 역할도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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