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븐 알-아라비 ⓒWikipedia

13세기는 이슬람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놀랍게도 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에서도 신비주의의 전성기였다. 아시시의 프란치스꼬(1182-1226)를 비롯하여 마그데부르크의 메히트힐트(Mechthild von Magdeburg, 1208-1282/1297), 하인리히 조이세(Heinrich Seuse, 1295-1366)(1), 마이스터 에케하르트(Meister Eckehardt, 1260?-1327/1329 사망)(2) 요한 타울러(Johann Tauler, 1300-1361)(3) 등이 이 시대 그리스도교 신비주의가들로 꼽히고 있다.(4) 이 시기는 기사제도를 이상으로 삼았던 중세 후기의 봉건사회가 붕괴되는 시기였고, 신흥도시들이 발흥하던 시기였다. 미래는 새로운 시민계급과 명문시민계급들에게 속하게 되었다. 독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서 구현된 세속권력은 교황청과의 대결에서 패배하였다.

그러나 교회도 그 승리를 기뻐할 수만은 없게 되었는데, 그것은 교황청과 국가권력과의 힘겨운 투쟁이 결국 두 집단을 모두 허약하게 함으로써, 두 집단 모두 위기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외적인 어려움만이 아니라 수많은 이단들, 소종파들, 마녀사냥(5)과 교회의 부정부패는 교회의 붕괴에 기여하였다. 교회의 개혁이 시급하게 요청되던 바로 이 시기에 신비주의 운동도 전성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6)

‘이븐 알-아라비’가 남긴 신비주의 유산

13세기는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와 그 동부지역의 정치적 판도를 완전히 뒤엎은 몽골의 침략과 그로 인한 재난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로 인한 물질세계의 파멸에 대한 돌파구로서 일종의 해독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피주의의 전성기였다.

후기 수피주의의 최대의 거장은 스페인 태생의 이븐 알-아라비(1165-1240)로서 그는 메카에서 영감을 얻어 ‘푸쿠하트 알-마키야’(메카의 계시)라는 대작을 저술했다. 그의 사상은 이후 모든 신비주의 계통의 서적을 주도했으며, 그가 말한-본인이 직접 이 용어를 사용한 적은 없지만-와흐다트 알-우주드(존재의 융합)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언어와 사상에 있어서 그의 영향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븐 아라비는 하나님의 본질은 그 단일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고, 또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 밖에 있다며 하나님의 초월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다만 자신의 명칭과 속성을 통해 드러날 뿐이며 자신이 창조한 거울, 즉 이 세상 속에 있는 자신을 보고 계시다. 이븐 아라비는 “우리 자신은 하나님을 묘사하는 속성이며, 우리의 존재는 그분의 존재가 객체화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 하나님이 필요한 반면, 하나님에게는 당신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7)

또한 ‘만일 당신이 어떤 존재를 그 아름다움 때문에 사랑한다면, 다름 아닌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물 속의 아름다움은 최고 아름다움의 존재인 신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사랑의 대상은 오직 신일뿐이다’라고 말한다.(8)

1201년 아라비는 카바 주위를 순례하고 있는 중에 환상을 보았는데, 그는 하늘의 거룩한 빛에 둘러싸인 니잠(Nizam)이라는 소녀를 보고, 그녀가 소피아, 즉 신적 지혜가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이 현현을 통해 철학의 합리적 논의에만 의존하면 신을 사랑할 수 없음을 인식했다.(9)

아라비가 신을 이해하는데 여성적 표상을 사용했다는 점은 독특하다. 그는 궁극적으로 신을 지향케 하는 사랑을 인간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신적 지혜(Sophia)의 화신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근본적으로 남성중심적 사고임이 분명하지만, 남성적 의미로만 신을 이해했던 종교에 여성적 차원을 개입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10) 또한 그는 신의 정념(pathos)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신의 ‘아파테이아’(apatheia, 무감정)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11)

이븐 아라비는 그리스도교가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라는 오직 한 인간 속에서만 무한한 신적 실재가 드러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인간 개인이 독특한 성육신의 진리를 드러낼 수 있지만, 매 시대마다 당대의 사람들을 위하여 ‘계시된 신’의 신비를 상징적으로 구현하는 ‘완전한 인간’(insan i-kamil)이 있으며, 무함마드야말로 그의 시대를 가장 효과적으로 계몽한 신적 상징의 완전한 인간이었다고 역설하였다.(12)

이븐 아라비는 타종교에 대한 긍정적인 요소들을 채택하고 발전시켜 타종교에 대한 극단적인 관용의 자세를 취한 신비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또 그는 다음과 같은 권면의 글도 남겼다:

잘라루딘 루미의 시 세계와 신비주의

▲ 터키에 세워져 있는 잘라루딘 루미 동상 ⓒWikipedia

이븐 아라비로 말미암아 수피주의는 개인적이고 즉흥적인 사유의 결과라는 통념을 넘어 이르판, 즉 일종의 특별한 신비적 지식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아라비의 천재적이고 혜안적인(그러나 항상 꾸란에 근거를 둔) 체계화는 분명 모든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 해답을 제시했고, 그로 인해 당대의 지식인들과 자신의 추종자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으나, 비판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13세기 이후 이슬람이 정체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지적한다.(15)

그러나 이븐 아라비보다 약 반세기 뒤에 활약한 잘라루딘 루미(1207-1273)의 작품은 신비주의적인 영감을 받은 모든 시인들의 보물상자가 되었다. 평범한 종교교사였던 잘라루딘 루미가 신비주의자가 된 것은 1244년 유랑 중이던 동년배의 방랑 수도사, 타브리즈 출신 샴스 아드-딘(Shams ad-Din)을 만나 신비적인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사랑받는 이’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신은 환생한 무함마드라고 주장한 샴스 아드-딘을 통해 그는 신성한 사랑의 지고함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16)

그러나 샴스 아드-딘은 잘라루딘이 그에게 심취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한 가족들과 제자들로 인해 콘야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 년 후 무리의 성화로 다시 콘야로 샴스 아드-딘은 초빙되었지만, 1248년 12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시기한 루미의 측근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샴스 아드-딘과의 만남과 이별이 루미를 시인으로 변신시켰다.(17)

루미는 대개의 수피처럼 우주를 수많은 신적 속성들의 구현으로 보았다. 어떤 것은 사랑과 자비 같은 신적 속성들을 나타내고 있고, 다른 것은 신의 분노와 준엄함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그는 신비주의자란 만물 가운데서 연민, 사랑, 아름다움 같은 신의 속성을 가려내어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투쟁(지하드)에 몰입하는 자라고 생각했다.(18)

무려 35,000 소절 이상의 운문이 이 두 성숙한 신비가의 특이한 만남과 이별로 인해 쏟아져 나왔다. 그 후 루미는 제자 후사무딘 첼레비(1284년 사망)의 요청으로 26,000 소절에 달하는 신비적이고 교훈적인 이행시 ‘마트나위’를 남겼는데, 운율에 맞추어 쓴 이 ‘마트나위’는 13세기 당시 세상에 알려져 있던 모든 신비적인 관념과 사상을 총 망라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1273년 그가 죽은 후, 추종자들로부터 ‘페르시아어 꾸란’이라고 불리게 된 그의 ‘마트나위’는 페르시아어권에서 신비주의적 작품의 교과서가 되었다.(19) ‘마트나위’는 무슬림이 일상에도 존재하는 초월적 차원을 깨닫고 그 안에 숨겨진 실재를 통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것은 모든 존재의 내면에 거하는 신비적 실재에 눈이 머는 원인이 자기중심적 사고에 있으며, 자신이 분리된 존재임을 깨달으면 모든 존재의 근원과 재결합 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고 가르쳤다.(20)

이제 루미의 시 몇 편을 살펴봄으로써 루미 자신이 말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독일의 여성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금식은 살아서 죽음을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기도와 금식은 신체험의 가장 중요한 매체이다. 마하트마 간디도 “기도는 영혼의 열망을 표현하고, 단식은 효과 있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스승들은 모두 단식과 기도를 통하여 눈이 열리는 경지에 도달하고 인류의 선을 진작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끌어냈다. …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단식은, 생각건대 개인이 진보해가는 데 있어 어느 수준이 되면 반드시 요구되는 훈련이다. … 순수한 단식에는 이기심, 분노, 믿음 없음, 조바심 따위가 끼여들 곳이 없다. 그 대신 그곳에슨 한없는 인내, 확고한 결단, 단 하나의 목적의식, 절대평온, 분노 없음이 필수적이다.”(31)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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