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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믿음을 낳고 믿음은 실천을 낳는다믿음과 사랑의 순환(신명기 30,8-14; 데살로니가후서 1,3-5)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07.07 00:08
▲ 하나님에 말씀에 순종할줄 아는 것이 믿음이다. ⓒGetty Image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일을 이야기할 때 믿음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지식 범주 안에 온전히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과거와 현재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앎의 영역이 아닙니다. 예측한다 해도 그것은 믿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까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 조건이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장래에도 그리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앎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렇다고 지난 것이나 현재 있는 또는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서 다 안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지식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들이 아마도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믿음이지 앎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앎이 없이 믿음은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취를 세상 안에 남겨 놓으셨고 성서에 기록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앎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그가 이를 믿자 하나님은 잘했다고 여기셨으며, 하박국에게 묵시를 보여주셨고 의인이라면 이를 믿고 묵시 실현 때까지 그것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믿음이란 이처럼 어떤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씀에 대한 믿음 없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말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말이 더 넓은 의미의 내용을 포함하는 것은 분명하나,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그의 말을 지키는 것이 그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를 사랑하면 그의 말을 지켜야 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그의 말씀 지키는 것을 공통분모로 합니다.

오늘의 신명기 본문은 하나님께서 길게 그의 법을 말씀하시고 그것을 지키는 것의 의미를 밝히십니다. 그 말씀을 지키는지 여부가 생명과 죽음, 복과 화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그의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의 계약관계 때문입니다. 계약자들에게는 계약 준수의 의무가 주어지고, 이행여부에 따라 상벌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와 같은 계약관계에 들어가고 그의 말씀을 지킬 것을 의무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의 명령이 어려워서 지킬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멀리 있어서 들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하늘에 있어서 접근할 수 없는 것도 아니라고 하시며, 그 말씀은 네 입에 네 마음에 있어서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말씀이 네 입에 네 마음에 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말씀을 외우고 또 외워서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것은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무수한 반복이 꿈에서도 말하게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마음에 새겨지는 것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마음에 와닿고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은 깨달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깨달은 것이라고 그것을 늘 입으로 말하게 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말씀이 입에 있고 마음에 있게 되는지요? 사랑할 때를 되돌아보면 혹시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늘 말하게 되고 늘 떠올리게 되지 않는지요? 그의 말씀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랑 때문에 그의 말씀이 입에 붙어다니고 마음을 채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계약 사건은 상을 받기 위한 계약이기 이전에 하나님이 사랑으로 일으키신 해방사건에 기초한 계약입니다. 이 사랑의 경험이 하나님과의 믿음의 계약을 성사시킵니다. 그리고 그 계약의 내용인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낳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말씀에 따르면 그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오직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우상 숭배 거부로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불러일으킨 사랑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만 한정될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우상숭배거부라는 소극적 방식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을 통해 비로소 실현되고 완성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의 계약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함으로 그의 말씀을 지킬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사랑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문입니다. 사랑의 행동을 추동해내는 믿음을 바울은,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대로,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으로 사랑이 인지되고 싹트고, 사랑으로 그 믿음이 확인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본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모습을 믿음이 더 자라고 사랑이 더 풍성해져간다는 말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과 사랑이 따로 따로 그리 된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위에서 본 믿음과 사랑의 관계가 이런 결과를 낸다는 것이 아닐까요? 다시 말해 믿음은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일 때 자라고, 그렇게 자란 믿음은 사랑을 낳는 믿음으로 사랑을 더욱 더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서로를 자라게 합니다.

그렇지만 시작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의 계약입니다. 이 믿음의 앎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 사랑이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또 사랑을 낳지 못하는 믿음은 불임의 믿음입니다. 믿음은 오직 사랑을 실천할 때에만 자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사랑을 낳는 믿음이고 사랑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더욱 더 강건해지고 사랑이 더욱 더 풍성해지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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