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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젝트를 아브젝시옹화 하기‘성스러운 체액’과 아브젝트(Abject) ⑹
우혜란 박사(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 승인 2022.07.07 00:35
▲ 줄리아 크리스테바

몸 밖으로 나온 체액은 많은 문화권에서 불결하고 오염된 것으로 상정되어 접촉을 피하는 금기의 대상이다. 대표적인 예로, 월경혈과 분만 중/후의 출혈은 불결하다고 여겨져 여성을 일정 기간 사회나 종교 공동체로부터 격리하는 하나의 기제로 작동하였으며, 또한 성스러운 제단이 출혈로 더럽혀진다는 명분으로 여성에게는 종교의식을 집전/주재하는 성직자의 역할이 거부되기도 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공헌

‘아브젝트’ 개념을 학계에 널리 알린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이 범주에 체액이나 분비물, 사체와 같은 특정 물질이나 물체 그리고–사회문화적으로 확장된 의미로는–타자화된 이질적 집단을 포함시키며, ‘아브젝시옹’은 이런 물질이나 집단에 대한 강한 거부, 혐오, 두려움 등의 심리적/감정적 반응으로 개념화하였다.

그러나 대표적인 아브젝트라 할 수 있는 유출된 체액은 단순히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종교적인 맥락에서는 성스러운 물질로 구원자의 현존을 나타내고, 핵심 교리의 메시지를 전하고, 신심을 고양하는 등 중요한 물질적 매개체로 작동하기도 한다.

우선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아브젝시옹 이론을 간단히 소개하고 이어서 ‘아브젝트’의 중요한 속성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어서 그녀의 아브젝트/아브젝시옹 이론에 대한 보다 유연한 접근 또는 재해석을 통해 유럽 중세 후기 성혈 공경과 신심이 확산한 배경 또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고자 하며, 여기서 특히 종교미술의 역할에 주목하고자 한다.

아브젝트와 아브젝시옹

‘아브젝시옹’ 개념은 프랑스의 정신분석가이자 기호학자, 철학자, 문화인류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저술, Power of Horror: An Essay on Abjection (Pouvoirs de l'horreur. Essai sur l'abjection, 1980)을 통해 본격적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여성학을 위시하여 근래에는 예술작품 분석에 자주 사용되고 있다.(1) 크리스테바는 앞의 저술에서 아브젝시옹을 자신의 경계를 위협하는 모든 것을 배척함으로써 개인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정체성 혹은 주체성(subjectivity)을 구성하려는 정신적/심리적 작용이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그녀는 어린 주체에게 가장 큰 위협은 어머니의 몸에 대한 의존성으로 가부장적 사회에서 독립적인 주체가 되려면 어머니의 몸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며, 역사적으로도 여성의 육체는 남성보다 열등하고 불결/부패한 것으로 폄하되었음을 언급한다.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의 몸은 미학적 측면에서 혐오스러우면서 동시에 매혹적인 이중성을 내포한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크리스테바의 이론은 여성 (몸의) 억압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2)

크리스테바는 아브젝트(the abject)와 아브젝시옹(abjection)을 일종의 개념 쌍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래 불어에서 아브젝트(abject)는 형용사로 ‘비천한’, ‘역거운’, ‘혐오스러운’ 등을 의미하며, 아브젝시옹(‘비천한 것’)은 그 명사형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브젝트(the abject)를 비천하며 더럽고 역겨운 것으로 그리고 아브젝시옹을 아브젝트에 대한 주체의 반응, 즉 전자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정신적/심리적 작용이나 현상으로 새롭게 개념화하였다.

그녀에 의하면 아브젝트는 개인에게 실존적 위협과 공포인 죽음을 연상시키거나, 모호하여 안과 밖의 구별이 확실하지 않아 구분이나 분류를 어렵게 만드는-주체도 객체도 아닌-그 무엇으로, 주체는 이에 대한 아브젝시옹–즉 역겨움, 더러움, 혐오 등-을 일으켜 이를 거부하고 배척한다고 한다. 따라서 아브젝트는 정체성, 체계, 질서, 규칙을 혼란/와해시키는 것 그리고 중간적인/모호한/혼성적인 것, 즉 ‘사이’(in-between)에 있는 어떤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예로는 (죽음과 관련하여) 사체나 썩은 고기, 몸 안의 것이 밖으로 나온 내장, 유출된 피/침/가래/고름/정액,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모호한) 각질이나 끓인 우유 표면의 막 등이 제시된다.(3)

여기서 강조할 것은 크리스테바가 아브젝트/아브젝시옹 개념과 이론은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의 이론은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1962)의 The Accursed Share (La Part maudite, 1949),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Totem und Tabu (1913), 더글러스(Mary Douglas, 1921~2007)의 Purity and Danger (1966) 등을 바탕으로 정립된 것으로, 보다 기본적으로는 라깡(Jacques Lacan, 1902~1981)의 정신분석학적 주체 이론에 기초하면서 클라인(Melanie Klein, 1882~1960)의 대상관계이론을 수정하여 자신의 이론으로 확립한 것이다.(4)

크리스테바가 아브젝트에서 특히 그 물질적, 육체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그녀의 아브젝트 개념이 몸이 사회를 상징하고 재현하는데 사용된다는 더글러스(Mary Douglas)의 이론에 상당 부분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크리스테바는 몸에서 배출된 것들이 사회적, 개인적 체계에 위협을 가한다며 체액, 배설물, 월경 등을 통해 아브젝트를 개념화한다.(5)

유출된 체액이 대표적인 아브젝트인 것은 이것이 소위 “제 자리에서 벗어난 물질(matter out of place)”로 바로 그 비고정적 혹은 유동적 성질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체액은 몸의 내부가 외부가 되거나 외부에 노출되면서 유출되어, 몸의 경계를 쉽게 벗어나기 때문이다.(6) 몸을 벗어난 체액이 흔히 공포, 혐오, 역겨움 즉 아브젝시옹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체액은 육체를 벗어나면서 나의 것도, 그렇다고 철저히 타자도 아니면서 자신과 타자와의 경계에 대한 불확실성을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기존의 경계나 질서의 와해와 혼란을 의미하기에 결국 이를 배척하거나 이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안정적인 정체성/주체성 형성을 위해 이질적이고 위협적인 물질이나 집단을 독특한 감정 상태와 이에 따른 분리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경계 밖으로 보내고자 하며, 이로써 사회에 부합하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크리스테바는 특정 대상/상태에 대해 아브젝시옹이 생기는 것은 이 대상에게 건강이나 청결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정체성, 체계/체제, 질서 등을 교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7) 다른 말로, 오물은 그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경계와 관련된 것에만 적용되며, 경계 밖으로 버려진 대상은 경계의 다른 쪽인 ‘주변’(margin)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대표적인 ‘주변적’ 물질로 침, 혈액, 우유, 소변, 대변을 언급하며 이것들은 신체의 구멍에서 나오면서 몸의 경계를 가로지른 물질로 오염된 것으로 간주되는데, 오염의 위력은 내재적이 아니라 바로 금지의 효력에 비례한다고 말한다.(8)

이런 맥락에서 육체의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기관인 입, 코, 귀, 눈, 항문, 질 그리고 (몸을 다쳐 부상으로) 벌어진 상처 등은 육체의 취약성과 비고정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더글러스 또한 인체와 외부라는 두 범주의 경계에 있는 모든 ‘벌어진 곳(구멍)’은 위험한 곳이며, 이 경계를 통과해서 몸 밖으로 나가는 체액 그리고 몸의 일부였으나 분리된 피부, 손톱, 머리칼, 이빨 등은 더럽거나 부정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한다.(9)

미주

(1) 아브젝시옹(‘비천함’, ‘비천한 것’)이란 용어는 크리스테바가 처음 사용한 것이 아니다. 이 용어는 프랑스 지식인 바타유(Georges Bataile: 1897-1962)가 이미 1930년대 L’Abjection et les forms misérables(아브젝시옹과 비천한 형태)에 수록된 미발행 텍스트에서 사용하였다. 여기서 바타유는 ‘사회적 아브젝시옹’을 근대 국가에서 작동하는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힘과 동일선상에 놓고, 이로 인해 노동계층의 인간적 존엄성이 박탈되어 사회 쓰레기 혹은 인간 폐물로 재생산된다고 적고 있다. (김성희, 〈키키 스미스 작품에서 신체기호의 의미 분석과 해석 - <Pee Body>를 중심으로〉, 《조형예술학연구》 10. 2006, 22-23쪽.)

(2) 정연이,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애브젝트(abject) 개념 연구: 현대미술에 나타난 여성의 몸을 중심으로〉, 이화여대 박사논문, 2018, iii쪽.

(3) 정연이, 위의 글, 31-33쪽; Julia Kristeva, Powers of Horror: An Essay on Abjection, (L. S. Roudiez, Tran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2, p. 4, p. 17.

(4) 정연이, 위의 글, 40-42쪽.

(5) 박자일, 〈정체성과 애브젝트(abject)〉, 《도예연구》 2, 2019, 314쪽.

(6) Willy Jansen & Gritje Dresen, op. cit., p. 218; “Matter out of place”라는 표현과 관련 이론은 메리 더글러스로부터 유래한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 Purity and Danger에서 오물을 ‘제 자리를 벗어난’(out of place) 것으로 정의한다. (Mary Douglas, Purity and Danger: an Analysis of Concepts of Pollution and Taboo, London & New York: Routledge, 1966, p. 36.)

(7) Julia Kristeva, op. cit., p. 4.

(8) Ibid., p. 69.

(9) Mary Douglas, op. cit., p. 122.

우혜란 박사(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woohair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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