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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전망대헤른후트에서 온 편지 (6)
홍명희 선교사 | 승인 2022.07.08 16:03
▲ 헤른후트의 언덕에 위치해 있는 하연 기도탑 ⓒ홍명희

아침마다 매일 오르는 헤른후트의 언덕, 그리고 그 정상에는 하얀 탑이 있다. 한국 분들이 오면, 이곳을 기도탑이라 부른다. 누구도 기도탑이라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곳에 오르면 기도가 저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온 땅이 내려다보일 뿐만 아니라,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감할 만한 장소이다.

그런데 언덕 아랫마을 분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한국에서 오신 단체 손님이 그 언덕에서 마음껏 목청을 높여 기도하신 것이다. 하필이면 어르신들이 점심 식사 후 낮잠을 주무시는 시간이었다. 그 기도 소리가 마을에 소음으로 들리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교회 측에서는 이곳을 전망대로 명시하였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는 기도하고 싶은 곳에서 기도할 자유가 있다. 안내하는 내 입장에서도 기도를 일일이 막을 수가 없다. 다만 마을에 폐가 된다면, 목소리를 자제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교회의 종소리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이제 “땡땡” 종을 치는 교회는 없다. 언젠가부터 사라지게 되었다. 부활절 아침이면 교회의 관악대는 나팔을 불면서, 헤른후트 마을을 지나 성도들의 무덤으로 올라간다. 믿지 않는 집에서는 새벽 5시부터 울려대는 나팔 소리를 좋아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것도 못 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헤른후트는 기도의 모범이 되는 특별한 곳이었다. 이것이 과거형으로 끝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들은 100여 년간 매일, 24시간 하는 기도를 성도들이 나누어서 해왔다. 전망대가 공식 명칭이라 해도 한국분들이 기도탑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또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어려울 때마다 이 언덕에 올라 기도하던 은혜를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나도 속으로는 기도탑이라고 명칭하고 있다. 공식적인 이름이 어떻든 간에 기도탑으로 오르는 성도들은 숙연해진다. 그리고 탑에 오르는 순간 하늘을 마주하게 된다. 둥근 지구를 실감하게 된다.

“아 하나님은 이 지구를 만드시고 나를 지으셨구나.”

멀리 진젠도르프가 어린 시절 외조모와 보내던 그로스 헨너스 마을이 보인다. 또한 삼백 년 전에 진젠도르프가 신앙생활을 한 시작된 베르텔스 도르프의 교회도 보이고, 그 옆에 그의 첫 신혼집이었던 진젠도르프 성도 보인다. 옹기종기 집들 사이로 헤른후트 교회의 탑도 보인다. 이곳에 오르면 헤른후트의 역사가 보인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 우리가 지금 살아서 또한 하나의 역사가 될 것임을 알기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이제는 신혼의 단꿈이었던 진젠도르프 백작은 없다. 나 또한 지나간 신혼의 단꿈이 너무나 그립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거기에 작은 거처를 짓고, 헤른후트를 내려다보며 더 큰 꿈을 꾸었던 진젠도르프처럼 그렇게 시원한 삶을 살았던 그를 조금이라도 닮고 싶어, 오늘도 나는 언덕을 오른다.

모라비안들이 찌타우의 높은 산속 길을 통과하여 이 헤른후트까지 오던 피난길을 더듬어 찾아본다. 믿음 생활을 하면서 사는 삶이 진짜 삶이기에 과감히 고향도 떠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얻은 새 땅인 헤른후트.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간 것과 같기도 하다. 그런 여정을 한눈에 넣다 보면 매일 올라와도 지겹지 않다.

헤른후트가 속해 있는, 이 지역은 오버라우지즈라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지역 내에 있다. 멀리 찌타우 산맥을 시작으로 작은 구릉 같은 산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 기도탑에서 바라 본 헤르후트 마을 ⓒ홍명희

일찍이 1722년 6월 17일에 헤른후트라는 마을이 모라비안들을 받아들이므로 시작이 되고, 진젠도르프는 결혼 1주년을 맞아 부인과 걸어서 헤른후트의 후트 베르크 언덕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마치 하나님의 축복이 내리는 것과 같이 신혼집을 차린 베르텔스 도르프와 후트 베르크 언덕 사이로 무지개가 다리처럼 이어졌다. 진젠도르프는 이 광경을 예사로 보지 않았고, 기쁨에 차서, 후에 이 언덕에 작은 오두막을 1725년에 짓게 된다. 그리고 그 집 이름을 ‘은혜의 무지개’라고 불렀다. 여기에 서면 헤른후트가 다 내려다보일 뿐만 아니라, 멀리 모라비안들의 고향인 체코와 폴란드까지 내려다보인다.

그 후에 다시금 1790년대에 조금 더 높이 탑처럼 쌓은 집을 짓고, 전망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침마다 이곳까지 올라와서 마을을 내려다본다. 고요하게 아침을 여는 새소리와 바람만이 머무는 이곳은 때로 경이로운 자연 풍광 뿐만 아니라 만남이 허락될 때도 있다.

한번은 한국에서 한 가족이 왔다. 어머니를 모시고 자녀들과 온 목사님을 모시고 올라왔는데, 거기서 파란 눈의 청년들을 만났다. 그 청년들은 방금 우크라이나 국경까지 가서 그들을 위로하고 왔다면서 이제 내일이면 미국으로 떠난다고 이야기했다. 누구라 먼저랄 것 없이 같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그들은 영어로 우리는 또 한국어, 또 독일어로 기도했다. 그리고는 서로 축복해 주었다. 서로가 감격했던 순간이었다.

진젠도르프에게 이곳은 전망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결혼을 축복해 주시는 애틋한 무지개를 주시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는 자기 부부를 향한 하나님 축복의 의미를 많이 생각했을 듯하다. 처음 결혼할 때부터, 그들의 부부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같이하기 위한 전투 부부라는 마음으로 결혼을 했다. 인간적인 어떤 행복보다 하나님의 일을 함께 나누어서 하려는 심정이었다. 진젠도르프는 믿음이 뜨거운 에르드무테 도로테아라는 백작의 가문의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무지개를 볼 때만 해도 그들에게 닥칠 인간적인 시련을 예상하지 못했다. 12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그 중 4명만이 살아남았다. 진젠도르프 백작이 선교 여행 중일 때, 혼자서 아이를 낳고 묻어야 하는 어려움도 다 부인의 몫이었다. 모든 시련을 믿음으로 극복해 내고, 주님께 헌신한 두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늘 무지개 같았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 올라서서 우리 부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보기도 한다. 육체의 고통이 있는 자는 죄가 그쳤다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된다. 또한 언젠가 깨달음을 주셨는데 연약해진 남편을 내가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또한 아직 남편이 있으므로 큰 울타리가 되어 내가 마음껏 여기서 부르심대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하나님의 나라를 내 안에, 내 가족 안에 이루어 가리라고 다짐하게 되는 곳도 이 기도탑 위에서 이다.

아마 내가 헤른후트를 더 몇 년 살게 될지 모르지만, 떠나게 될 때, 이곳에 올라서서 그동안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니, 벌써 울컥해진다.

홍명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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