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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 어디에 꽂을까?아버지께로 간다(요한복음서 14:1-14)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2.07.11 02:00
▲ 예수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강조하셨다. ⓒGetty Image

1.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사람이 없습니다.” 아멘.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의지해서 주님을 믿습니다.

그런데요, 성경말씀을, 특별히 복음서의 말씀을 한 구절만 따로 떼어놓고 이해하려고 하면, 무슨 명언이나 금언처럼, ‘인생은 마라톤이다’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물론 말씀 그 자체로도 깊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실제로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진짜 의미를 놓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길이다. 예수님이 진리다. 예수님이 생명이다.’ 이 말씀을 종교적인 명제로만 생각하면요,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지’ 하는 원론적인 교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경의 많은 말씀들이, 특별히 복음서의 말씀은 철학적인 말이 아니에요. 철학자가 심오한 생각들을 고심하고 고심해서 마침내 ‘이거다!’ 하고서 한 문장으로 정리해 낸, 그런 말이 아니에요. 오히려 거꾸로 그런 어려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찬찬히 쉽게 설명해 주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시는 이 말씀 앞뒤에 무슨 이야기가 있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인지, 그걸 고민해 봐야 합니다.

2.

십자가를 앞둔 마지막 저녁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고 제자들의 발도 씻어주셨습니다. 유다가 배반할 것도 예고하셨습니다. ‘나는 절대로 배반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베드로에게 ‘너도 나를 부인 할 거다. 새벽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거다’ 하고 말씀도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이어지는 예수님의 마지막이자 가장 긴 설교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14장부터 16장 끝까지 이어집니다. 이 말씀 중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령에 대한 약속도 있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긴 말씀의 처음과 끝을 맺고 있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 긴 모든 말씀을 아우르는 전체에 대한 요약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는 아버지께로 간다’는 겁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왔다가 아버지에게로 간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너희들도 모두 그래야 한다. 너희들 제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래야 한다.’ 이 말씀입니다.

‘어떻게 갑니까?’ 하고 물으니까 대답하시는 겁니다. ‘내가 길이다.’ ‘왜 굳이 아버지께로 갑니까?’ 하고 물으니까 또 대답하십니다. ‘그게 우리 삶의 진리니까 그렇다.’ ‘죽고 나서 갑니까?’ 하니까 또 대답하십니다. ‘아니,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사는 것이다.’

3.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는 것이, 사실 우리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겁니다. 하나님에게서 왔는데, 하나님께로 가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이 세상 암흑 속에서 방황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를 만나고 그리스도 구원을 얻어서 그 방황을 끝내고, 하나님 품 안에서 참된 복을 누리는 겁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예수를 만났다고 하고, 그리스도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하는 것이 아니라, 각박한 세상살이의 한복판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겁니다. 왜 그럽니까? 예수를 만났는데, 왜 행복하지 못합니까?

예수를 만나기만 했지, 아버지께로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만났는데, 나는 내 삶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예수를 따라서 아버지께로 가기는커녕, 오히려 내 삶 속으로 예수를 끌고 들어오려고 합니다. 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포기시켜요. 그러면서 행복하지 못하다고 해요. 당연하지요. 내 욕심대로 채워지지 않으니까요. 내 욕심을 행복의 척도로 딱 설정해 놓고 있으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어요. 그 욕심이 채워져도 행복하지 않아요. 진짜로 채워야 할 것이 텅 비어 있으니까요.

자기 욕심을 포기하라고 해서, 아무 희망도 없고 의지도 없고 멍하니 살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 삶 속에 불순물처럼 섞여 들어있는 잘못된 의지들을 걸러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는지, 그 큰 뜻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실 때, 창조하실 때, 부족한 존재로 만드셨어요. 하나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깊으신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하셨어요.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그 부족함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도 주셨어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 자체죠. 하나님이라는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가장 큰 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으면, 우리의 삶에 다른 모든 것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충만합니다. 행복합니다. 본질이 바로 서 있으니까요.

4.

제가 지난주에 핸드폰 기계를 새로 바꿨어요. 용량도 훨씬 큰 걸로 바꿔 가지고, 기계를 받자마자, 이것저것 어플을 막 깔았어요. 그런데 한참을 기분 좋게 프로그램을 깔고 있는데, 갑자기 깜빡깜빡 하더니 핸드폰이 꺼져버리는 거에요. 왜 그랬을까요? 예, 기계가 충전이 안 된줄도 모르고 그냥 신나서 이것저것 깝죽대고 있었던 거에요.

기계가 아무리 좋아도, 대단한 프로그램을 깔아도, 용량이 커서 넘쳐나도,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성능이 아무리 대단해도, 근원, 본질, 원천, 그것이 바닥나 있으면, 삐리릭 꺼져요. 그러면 그냥 쇳덩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나님께로 간다. 그곳에 너희의 처소를 마련했으니 너희도 와라.’ 이 말씀은 십자가에서 죽는 그 죽음만을 말하시는게 아니에요. 신앙의 본질, 우리 삶의 본질을 말씀하고 계셔요. “우리 삶의 근본이 뭡니까? 우리가 우리 삶 속에 채워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 핸드폰은 최신형이라서 사진을 찍으면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고, 이런 기능도 있고 저런 기능도 있고...” 이렇게 막 떠들고 있는 우리한테, 예수님이 넌지시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런데, 충전은 했니?”

- “충전은 했어? 배터리가 차 있어?”
어리석은 우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 “예, 저 지갑에 돈 많아요.”
- “아닐껄? 전기를 꽂아야 할텐데.”
어리석은 우리는 또 이렇게 대답합니다.
- “저 먹을 거 도시락 가방에 가득 있어요.”
- “아닌데... 전기를 꽂아야 되는데...”
- “저 이만큼이나 공부했어요. 저 회사에서 잘나가요. 세상에서 인정받아요. 인간관계가 얼마나 좋은데요. 제가 얼마나 성공했는데요. 부자됐어요. 자식들이 잘 나가요. 다 만사형통이에요...”

우리 인간도 충전을 해야 살 수 있어요. 산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쓰는 거여서, 그 에너지를 쓰고 나면 다시 충전을 해야 되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삶을 무엇으로 충전하느냐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힘이 떨어지면 돈으로 충전합니다. 돈을 이만큼 벌면, 지갑이 두둑하면 힘이 납니다. 어떤 사람은 음식으로 충전합니다. 육신을 가득 채웁니다. 배가 불러지면 힘이 납니다. 어떤 사람은 잠을 충분히 잡니다. 이불 속에서 푹 쉬고 나오면 힘이 납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를 만납니다. 사람을 만나서 술한잔 하면서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힘이 납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도 없이 혼자 조용히 있어야 힘이 납니다.

5.

우리는 이런 여러 가지 모습으로 충전을 합니다. 육신을 충전하기도 하고, 마음을 충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베터리 충전을 해야 되는데, 기껏 지갑에 돈 채워 넣고, 도시락에 먹을 것 채워 넣고서, 진짜 충전 했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그런 충전은 충전한 것 같지만, 금방 바닥이 드러나 버립니다. 지갑의 돈은 금방 바닥나고요. 배가 아무리 두둑해도 한숨 자고나면 다 꺼집니다. 화장실 한 번 갔다 오면 끝나요.

우리는 그런 충전 말고, 진짜 충전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으로 충전되어야 합니다. 삶이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식음을 전폐하고, 영적 기도 삼매경에 빠져 있어야 합니까? 성경말씀을 매일 달달달 읽어야 합니까? 무슨 대단한 거룩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일에만 몰두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매우 간단합니다.

핸드폰 충전 어떻게 합니까? 그냥 코드를 전원에 딱 꽂으면 되죠? 코드 꽂아 놓으면 아무 것도 못하나요? 아니죠? 꽂아 놓은채로 평소에 하던거 그냥 하면 됩니다. 전화도 하고, 사진도 찍고,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별거별거 다 해도 됩니다. 선만 잘 연결되어 있으면 됩니다. 우리 영적인 충전도 똑같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딱 꽂혀 있으면 됩니다. 겉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모든 근본에, 그 중심에, 그 깊은 곳에, 호흡처럼,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연결되는 기도의 비법이 있고 비결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렇게 연결되어 있음을 항상 소망하면 됩니다. ‘주님, 나와 함께 하시죠?’ 그렇게 연결되어 있음을 항상 확신하면 됩니다. ‘주님, 나와 함께 하신다!’

‘나는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씀은, 죽고 나서 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 삶은, 내 삶의 방향은, 항상 아버지를 향해 있다는 겁니다. 밥을 먹어도, 일을 해도, 잠을 자도,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은 다른 곳으로 달려가지 않고, 아버지께로 향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으로 그렇게 충전되어 있으면, 한 번 충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연결되어서 계속 그 힘을 공급받고 있으면, 사람들 자랑했던 그런 일들? 그런 건 일도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 일을 하신다. 10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으로 충전되면, 내가 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한다. 12절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진다. 아니 내가 이루어준다. 14절 말씀입니다. 그게 우리 삶의 진짜 길이고, 그거야 말고 진리고, 그거야 말로 생명이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께 받을 큰 복이 무엇입니까? 이것 말고 더 큰 복이 있겠습니까?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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