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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젠도르프 성에 가면 있는 것헤른후트에서 온 편지 (7)
홍명희 선교사 | 승인 2022.07.15 00:21
▲ 진젠도르프가 아끼던 말씀인 “마리아야 너는 가장 최선의 편을 택한 것이다”가 거실의 문새겨져 있다. ⓒ홍명희

헤른후트로 이사 와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진젠도르프 성이었다. 지금은 정말 아름답게 복원되었지만, 2000년도에 테슬러 목사님이 베르텔스 도르프 교회(헤른후트 아랫마을)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다 쓰러져가는 낡은 성이었다. 그의 눈에는 이 성이 보물로 보였다.

1687년에 진젠도르프의 할아버지가 백 년 정도 된 집을 샀고 나중에는 진젠도르프를 키운 할머니의 소유였었다. 진젠도르프가 결혼하면서 이 집을 물려받았다. 신혼의 단꿈을 꾸었던 집, 백작의 성이었다. 또한 진젠도르프가 타국으로 추방당하며 선교하는 동안에는 부인이 맡아 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말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줄곧 이곳 성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 후에 이 성은 헤른후트 모라비안 교회에 속해졌고, 독일의 2차 세계대전 후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기독교적인 문화유산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성은 점점 폐허가 되었고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성지기 목사님이 20년도 더 된 영상을 보여주셨다. 추운 겨울날, 혹시 그 당시 쓰던 물건들이 있을지 몰라서 사모님과 함께 허물어져 가는 성 바닥의 돌을 손으로 걷어내는 장면이었다. 추워서 입김이 나고 있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일하시는 사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독일의 어느 목회자 사모가 저런 일을 할까….

그렇게 시작된 성의 복원 작업은 거의 20여 년이 지나서야 완성되었다. 성은 쥐들의 천국에서 벗어나 이제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모님은 그 후에도 수많은 어려움 통과하셨다. 성을 훌륭하게 다 복원한 후에도 늘 정원을 가꾸고 곳곳마다 꽃장식도 하시면서 성의 더러운 곳을 손수 치우신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사람들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건물을 함께 복원해나가기 시작했다. 많은 회원이 계단 하나, 거실의 의자 하나 등을 헌납함으로 기적을 써 내려갔다. 가장 어려운 복원 작업은 진젠도르프가 여기저기 벽과 문에 써놓은 말씀들이었다.

특별히 그가 아끼던 말씀은 거실의 문이었다. 그 문에는 예수님이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이 적혀 있었다. 진젠도르프는 원래 루터 성경에 있던 본문 말씀이던 “마리아야 너는 좋은 편을 택하였다”를 “마리아야 너는 가장 최선의 편을 택한 것이다”라고 번역함으로,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모습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무튼 진젠도르프 백작은 말씀을 아끼다 못해, 곳곳에 말씀을 새겨 넣는 일을 좋아했다. 또한 헤른후트에서는 그런 모습을 본받아 흔한 일이 되기도 하였다. 헤른후트 초입에 있는 평범한 가정집 입구에는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을)라는 문구가 새겨있다.

마차를 끄는 데 말이 필요했으므로 성 바로 옆에는 말을 돌보던 마구간이 있었다. 상당한 수의 말이 머물 수 있는 크기로 집보다도 마구간이 더 컸다고도 할 수 있다. 테슬러 목사님은 마구간도 훌륭한 장소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마구간 안도 하나씩 치우고 퍼내고 다듬었다. 지금은 연주회장이나 예배실, 때로는 전시실로도 사용한다.

한번은 전국에 있는 성의 회원들이 모임을 하는 축제 같은 날이었다. 마지막에 진젠도르프의 거실에 모여서 “어떻게 하면 성을 사람들을 위해 더욱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회의를 하면서 많은 의견을 나눴다.

나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손을 들었고, 사회자가 이야기할 기회를 주었다. 나는 한국 분들이 오면 많은 감동을 한다는 이야기와 특별히 이곳을 샘이 솟는 곳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진젠도르프의 영성이 살아서 솟아나는 것이 느껴진다는 이야기였다.

잠시 장내가 조용해졌다. 죽어있던 건물이 생기 있게 되는 데에는 여러 사업과 바자회도 중요하지만, 이곳에서 기도하는 것과 영적인 것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한 이방인의 입에서 나오게 되었으니 잠시 좀 머뭇거리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국 분들이 정말 이곳을 좋아하고,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아는 것을 꼭 전달하고 싶었다.

▲ 진젠도르프 성 마당에서 축제가 열렸다. ⓒ홍명희

목사님과 할머니 교우 몇 분이 기도하고 있는 매주 토요일 오후에 나도 가보았다. 거기서 드리는 소박한 예배와 기도는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기에는 너무도 초라해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몇 사람이 모은 손을 통해 이루시는 분이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가 되면 이방인인 나도 할머니들, 목사님과 함께 진젠도르프가 앉아서 글을 쓰던 방에 앉아서 찬양하고 기도를 드린다. 목사님은 베르텔스 도르프 교회를 은퇴하셨지만, 아직도 성의 일이 남아있어서 여기를 떠나지 못하신다.

성에 가면 볼 수 있는 것은 충성됨이다. 목사님 부부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성을 쓸고 닦는다. 그 충성이 결국은 하나님의 기적을 이끌어 내었고, 지극정성으로 열매를 맺게 되었다. 한 곳에서 끝까지 충성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내 인생의 후반부를 이곳에 살면서, 또 어딘가 달아날 궁리를 하다가도, 성에 오면 생각이 바뀐다.

충성한 곳에 작은 열매라도 맺히지 않을까.
충성한 곳에 주님의 칭찬이 있지는 않을까.
충성한 곳에 그 후의 사람들이 누리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다 삶의 끝으로 달려가고 있다. 성은 진젠도르프에게 큰 의미이며,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의 삶에서 잠시 머무는 곳이었을 뿐, 다 지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직도 남아있는 충성심이 전해진다. 여리디 여린 진젠도르프 부인이 많은 사람을 감당하며 대접했던 충성심도 고스란히 다 남아있는 것이다. 또한 진젠도르프가 교우들을 사랑해서 늘 열어놓았던 거실의 문과 벽에 적어놓은 말씀에 대한 충성심도 경험할 수 있다.

오랜 선교의 피곤한 여정을 마친 진젠도르프는 이 성을 들어갈 때마다, “나의 고향은 바로 이곳”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결혼하여 살았던 첫 집이었고, 모라비안들을 받아들여서 항상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며 식사하던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바로 길 아래쪽에 있는 베르텔스 도르프 루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에는 다들 진젠도르프 집으로 올라와 거실에 머물며 많은 교제를 나누었던 시간이 그에게 고향의 품으로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건물만 댕그라니 남아있는 성이었다면 고향과도 같은 곳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 가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푸근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에 나에게도 고향과 같은 곳이 되어가고 있다.

홍명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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