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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들과 자연신학의 문제칼 바르트의 신학에서 그리스도와 문화 ⑼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2.07.16 00:20
▲ 세상의 빛들과 진리 논의는 자연신학과 관계가 없다. ⓒGetty Image

세상의 빛들에 대한 바르트의 견해에 대해 한스 큉은 자연신학과 존재유비에 대한 이전의 기소자가 세상의 빛들, 말들과 진리들을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은 “바르트가 그의 이전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수정하였다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했다.(1) 정말 이것은 바르트가 전에 그토록 철저하게 거부했던 소위 자연신학을 은밀하게 인정하고 그것과 타협한 것인가?

바르트의 자연신학 비판 이유

바르트의 신학은, 특히 자연신학에 대한 그의 타협하지 않는 태도와 하나님을 자연과 역사의 세상과 완전히 맞서 있는 ‘전적 타자’로서 보는 그의 초기의 이원론적인 신학적 입장 때문에 자주 비판을 받았다. 확실히 우리가 언뜻 보기에는, 이런 판단은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직, 간접적으로 신 존재 증명의 전통적인 논증들에 대한 칸트의 비판에서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과 인간, 영원과 시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강조했던 키에르케고르로부터도 그의 중요한 변증법적 방법을 빌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바르트는 인간을 하나님과 혼동하고, 기독교를 문화에 동화시켰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정지!’를 명하고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 같은 철저한 분리를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바르트는 히틀러의 권력 장악 이전과 이후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그러한 분리를 보다 더 강화시켰다. 왜냐하면 바르트는 기독교 국가 안에서 일어나는 이교적인 신앙의 쇄도, 그 배후에서 기독교가 독일적인 자연과 문화의 낭만적인 심연 속에 빠져들어 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바르트가 왜 그렇게 에밀 브룬너(E. Brunner)에게 화를 냈던가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2) 또한 바티칸과 히틀러 사이의 협약을 위한 신학적인 근거를 제공해 주면서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하고 성취한다’(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 et complet)는 ‘성 토마스’의 격언을 잘못 인증했던 로마가톨릭 신학자들을 마찬가지로 날카롭게 반대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들에 의하면 은총은 독일의 자연(피와 흙)을 파괴하지 않고 그것을 완성하고 성취한다.

따라서 바르트에게는 기독교 교회의 순수성이 아니라 바로 그것의 본질이 나치(Nazis)의 자연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신학과의 충돌에서 위태롭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확실히 기독교 메시지의 일종의 귀화에 대해 불굴의 자세로 맞선 바르트가 전적으로 옳았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3)

바르트는 자연신학으로 회귀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자연신학에 반대하는 바르트의 자세는 ‘화해론’에서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바르트에 의하면 신학의 임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하나님에게 이르는 사람의 길을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한,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 이르는 단 하나의 길을 고백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 길과 말씀이 바로 화해와 계시의 길과 말씀이다.(4)

우리가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바르트는 이 말씀의 분명한 의미를 몇 가지로 해석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다. … 오직 그분만이 하나님의 빛이고 하나님의 계시이다.”(5) 둘째, 더구나 “그는 하나님이 그분 자신과 그분이 향해 서는 사람들에 관해 말하는 것에 대한 전적이고 완전한 표현이다.”(6) 셋째, 그리스도는 “자신을 우리가 유일하게 신뢰해야 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예언자”로 나타낸다.(7)

만일 이것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의 계시에 대한 참된 성서적 진술들이라면, 그때 사람에게 말해지는 하나님의 온전하고, 유일하고, 구원하고, 스스로를 입증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따라서 다른 어떤 말씀은 가능하거나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에 관해 주장하는 다른 어떤 가정된 말을 따르는 것은 거짓 신을 따르는 것이다. 유일한 참된 하나님은 자신에 관해 말했고,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을 위한 증인으로 불릴 수 있고... 그런 까닭에 사람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없다.”(8)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길을 제시하는 자연신학은 신학이라고 할 수 없고, 즉각적으로 거부되어야 하는 것일 뿐이다.(9)

세상의 빛들과 진리 논의와 자연신학의 차이

그러면 세상의 빛들과 진리들에 대한 논의는 자연신학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바르트는 두 가지 사실을 말한다. 세속의 영역에서 말해지는 참된 말들과 소위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 지식 사이에 있는 첫 번째 차이점은 전자가 예언자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증거와 그것의 봉사에 쓰여진다는데 있다.

그러나 “성서와 교회를 제쳐놓는 자연신학을 통해서는 단지 최고 존재, 만물의 창조주와 지배자이신 하나님의 실존에 관한 추상적인 정보들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10) 그와 같은 최고 존재는 결코 유일한 하나님, 살아 계신 참된 하나님과 동일시될 수 없다. 그러나 교회의 울타리밖에 있는 참된 말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들 안에서 아버지로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이 자기를 알리는 증거들이다.”(11)

둘째로, 그러한 참된 말들이 있을 수 있고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참된 하나님 때문이고, 성서 안에서든, 교회나 혹은 교회 밖의 세상에서든 언제나 기적적인 것이다. 자연신학은 인간의 자연적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참다운 신학은 인간과 세상에 있어서 그들을 위한 활동 가운데 있는, 언제나 인간의 능력을 넘어 있고 그래서 기적인 말씀에 관해 말한다.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은 언제나 은총의 이 기적에 근거하고 있고 그러한 것으로서 ‘자연적’ 지식을 거짓된 신의 그것으로서 배제하고 폭로한다.

이점에 있어서 바르트는 칼빈의 견해를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칼빈에 의하면, 사람이 실제로 지니고 있는 가능성은 그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신들을 이해하고 예배하는 것이다.”(12) 그래서 바르트에 의하면, 그 둘 사이에는 커다란 심연이 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으로 이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상들의 예배로 이끄는 것이다. 전자는 진리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하여 적절한 맥락에 놓는 것이고, 후자는 그로부터 그것들을 떼어내어 허위적이고, 거짓되게 만드는 위험한 탈선이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세계의 ‘빛들’은 단지 유일한 참된 빛인 예수 그리스도에 비추어서, 그리고 그의 능력에 의해서만 빛을 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고유한 피조적 진리에 대한 증거의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들을 “비인간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14) 바르트는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과 비교하여 그 빛들의 상대적인 특징을 다양하게 말했다. 그 빛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구속력있는 권위가 없는 “형식들”, “조건들”과 “전제들”에 지나지 않는다.(15)

그 자체로 그 빛들은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주지 못한다. 그것들은 단지 “가설들”, “잠정적인 가정들”에 불과할 뿐이고, 결코 궁극적인 현실을 지닌 결정적인 진리에 대한 증언이 될 수 없다.(16) 그러나 그 빛들은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과 한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참된 빛들로 선택되고, 그렇게 하여 빛을 발하고, 하나님의 참된 생명의 빛을 증언한다.

말하자면 그 빛들은 “야간 반사 장치(cat's eye)”(17)의 역할을 한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만 단지 화해의 빛과 능력에 의해서만 그럴 뿐이다. 빛들은 환히 밝혀질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러나 유일한 참 빛이 우주 속에서 빛을 발하고, 우주에 허락된 빛들을 밝히고, 그들의 방사의 힘을 현실화시키기 전에는 빛을 발할 수 없다.(18)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바르트는 하나님의 화해하시는 사랑을 논한 ‘화해론’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신뢰하고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다”(19)는 바르멘의 정신을 재확인하며 그의 단호하고 배타적인 그리스도론적 집중을 관철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현존하는 하나님이시다. 그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그가 진정으로 “이 세상의 생명의 빛”이심을 나타낸다. 따라서 참된 이 빛 앞에서 다른 모든 빛들은 그 빛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르트는 이러한 배타적인 그리스도론적 진술을 통해서 창조 세계의 언어들, 빛들과 진리들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와 반대로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해하고자 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라면, 다시 말해서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공간과 시간 속에 있는 인간의 실존 속에 들어온 하나님의 바로 그 아들이라면, 하나님의 유일한 진리인 그는 모든 진리의 중심이며 선하고 아름답고 참된 모든 것, 그러므로 참된 모든 문화의 창조적인 근원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단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피조된 세상의 본질적인 특성과 모든 피조적 존재와 활동의 궁극적인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20)

미주

(1) H. Küng, Existiert Gott?, tr. by Edward Quinn, Does God Exist?, New York: vintage Books, 1981, 525-526.

(2) T. F. Torrance, 「칼 바르트, 성서적 복음주의적 신학자」, 175. 바르트는 브룬너의 소책자 「자연과 은총」(Nature and Grace)이 독일에서 저항 운동을 하는 그들에게 나치 체제와의 화해를 옹호했던 소위 ‘독일 기독교인들’의 기초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반대했다.

(3) Ibid., 175 이하.

(4) DO Ⅳ/3-1, 103-118, 167-178.

(5) Ibid., 104.

(6) Ibid., 107.

(7) H. Hartwell, The Theology of Karl Barth: An Introduction,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4, 48-53. T. H. L. Parker, "Barth on Revelation" STJ, vol. 13, no. 4, December 1960, 376-378을 참고. 이들은 모든 자연신학을 거부하는 바르트의 입장을 위의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8) K. Barth, Natural Theology(London: The Centenary Press, 1946), 124-125.

(9) Ibid., 76.

(10) DO Ⅳ/3-1, 126.

(11) Ibid., 127.

(12) K. Barth, Natural Theology, 107.

(13) J. Thompson, Christ in Perspective: Christological Perspectives in the Theology of Karl Barth, 122.

(14) DO Ⅳ/3-1, 160. “좀더 극적으로 설명하면, 그것들은 인간화되기를 동경하고 갈망한다.”

(15) Ibid., 169.

(16) Ibid., 177.

(17) J. Thompson, Christ in Perspective: Christological Perspectives in the Theology of Karl Barth, 123.

(18) DO Ⅳ/3-1, 166 이하.

(19) Ibid., 1.

(20) T. F. Torrance, Karl Barth: An Introduction to his early Theology, 1910-1930, 208-211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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