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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을 위한 야훼의 날은 없다모두를 위한 구원(아모스 5:20-24a)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7.17 14:23
▲ 소수의 기득권자들이 기다리는 야훼의 날을 없음을 선포하는 아모스. ⓒGetty Image
20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21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23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장 24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말씀입니다. 특히나 저희 교단에서 예언자의 사명을 이야기할 때면 자주 사용하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예언자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사회 문제를 드러내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아모스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모스는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북왕국 이스라엘의 예언자였습니다. 열왕기의 기록에 따르면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시기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상당히 국력을 높였던 시기입니다.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기반을 닦아놓았던 탓도 있었겠지만, 여로보암 2세는 당시의 제국이었던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치며 친아시리아 정책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아람을 몰아내고 북방 국경을 최대까지 확장했습니다.

열왕기하 14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을 보셨고, 그들을 도울 자가 없음도 보셨기에 여로보암 2세의 손으로 그들을 구원하셨다고 말합니다. 어찌보면 열왕기가 기록하고 있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중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 여로보암 2세입니다.

이렇게 나라의 국력이 올라가고 풍족했던 시기에 아모스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악함을 고발합니다. 심지어 오늘 본문에서는 그들의 제의마저도 비판합니다. 열왕기 역사가들처럼 북왕국의 제의는 우상숭배이기에 비판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자체를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모스는 왜 이런 선포를 했는지, 아모스의 선포 속에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오늘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누구를 위한 구원인가

아모스 5장 18절을 보면, ‘야훼의 날을 사모하는 자’라는 표현이 나타납니다. 한 달 전쯤에 저희는 요엘의 본문을 통해 야훼의 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요엘에 나타난 야훼의 날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의한 철저한 심판,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것은 요엘 전반부에 나타난 야훼의 날입니다. 요엘 후반부에서 야훼의 날은 조금 달라집니다. 심판의 대상이 이스라엘에서 주변국으로 바뀝니다. 주변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기에 그날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구원의 날이 됩니다.

아모스가 비판하는 사람들은 후자를 바라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변국을 모두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날을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모스의 비판은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이웃 국가가 심판받기를 원하고 자신들은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점이 비판거리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관점에서 누군가의 심판을 바라는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러시아를 심판하시고 자신들을 구원하시길 바란다고 해서 그들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사회상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는 누구를 위한 구원을 바라는 것이냐? 호세아와 아모스를 보면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멀리 찾을 것도 없이 오늘 본문 조금 위에 있는 11-12절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아모스의 선포가 향하고 있는 대상은 온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포학과 잔학을 일삼고 있는 이스라엘의 힘 있고 부유한 자들이었습니다. 열왕기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왕국 이스라엘은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다만 일부 계층만이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어떤 학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의나 축제가 야훼의 날을 바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라며 이웃 국가가 패망하게 되기를 바라는 제의가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 이런 제의나 축제가 벌어졌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아모스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점은 이런 제의는 누구를 위한 구원을 바라는 제의였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적어도 아모스의 눈에는 가진 게 없고 약한 자들의 구원을 바라는 제의로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빼앗는 이들,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은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아시리아에 바치는 조공이 없다면 우리는 더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다. 아람이 우리나라를 침공해 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야훼의 날을 바라며 기다린 이유는 자신들의 더욱 풍요롭게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구원의 세상

이런 이들을 향해서 아모스는 외칩니다. 너희의 풍요만이 구원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어야 그곳에 구원이 이른 것이지, 특정 집단만이 잘 먹고 잘 산다 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하지 말라고 외칩니다.

아모스 예언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 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모스 9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이는 미가 4장 4절에 나타난 말씀,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와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더 이상 착취하며 노략하는 이들은 없고 자신의 포도원에서 자신이 수확한 열매를 먹으며 살게 되리라는 이상입니다.

어쩌면 아모스 자신이 농부이자 목자였기 때문에 이런 이상향을 내세웠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농사를 짓고, 누군가는 그것을 착취하는 구조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짓고 수확하며 먹고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그가 농부였기 때문에 북왕국 왕실과 귀족들의 부조리를 더 잘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북왕국 이스라엘은 오직 특정 집단의 번영만이 존재했던 시기입니다. 그 뒤에는 계층 간의 갈등, 사회 부조리, 사회의 붕괴, 백성들의 고통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여로보암 2세가 죽은 후 왕위에 등극한 스가랴는 즉위 6개월 만에 살룸의 반란으로 죽임 당하게 됩니다.

지금 시대에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아모스의 예언을 지금 시대 적용해 본다면 이렇게 될 듯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몫에 만족하며 살아간다면, 그곳은 구원받은 세상이며, 평화의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 마치 공산주의 사회처럼 보이는 세상이 구원의 세상이라고 말할 수만도 없을 듯 합니다. 지금 사회는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는 부분들이 많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소득을 얻는다고 해서 그것이 꼭 행복으로 이어지리라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은 분명합니다. 탐욕을 위한 구원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모스가 보았던 북왕국 이스라엘의 사회상은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가진 이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폭력과 약탈을 일삼았고, 그러면서도 더 많은 풍요를 위해 구원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악을 버리고 선을 찾으라고 외쳤고, 정의와 공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결국 악한 마음을 품게 하고, 그것은 분명 행동으로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대에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분명 나이에 따라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바라는 바는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돈만 있으면, 충분한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 생각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모스는 지금 우리에게 경고의 음성을 남겨두었습니다.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풍족함만을 바라는 이런 마음에는 욕심이 뒤따르고, 그 욕심은 누군가를 향한 폭력으로 이어지며, 그곳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래도 지금 나의 삶이 어렵다고 해서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서 간구하는 우리가 되진 않아야 합니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겪어나가는 많은 이들을 생각하며 모두를 위해 간구하고, 이 땅에서 악한 마음과 행동들이 사라지길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참된 구원을 이 땅에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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