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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것열매 없이도 기쁠 수 있다(요한복음 15:1-10)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2.07.18 01:43
▲ 열매를 맺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가지에 붙어 있는 것이다. ⓒGetty Image

1.

TV를 일부러 봅니다. 뉴스, 예능, 드라마 등 볼 것이 많은데 한 마디로 하면 사람 사는 이야기입니다.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 삶의 모습들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요즘 재미있게 보는 것은 ‘전원일기’라는 드라마의 재방송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잘 보여줍니다.

김 회장님(최불암) 댁에 과수원이 있습니다. 배밭을 가꿉니다. 하루는 가지 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 나무가 제대로 열매 맺기 위해서 쓸모없는 가지를 쳐 내버려야 한다’고 둘째 아들(유인촌)이 말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꼬마 아이 하나가 이렇게 묻습니다. “그냥 놔두면 안 돼요? 열매 같은 거 없을 수도 있잖아요? 가지가 너무 불쌍해요.” 드라마는 철없는 아이가 하는 순진한 생각으로 웃고 넘어갑니다.

농부의 입장에서는 가지치기를 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가지 입장에서도 그럴까요? ‘나’라고 하는 존재가 ‘열매’에 의해서만 평가받습니다. 아직 내 삶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다른 가지에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내 존재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니요. ‘나’의 쓸모가 그런 것인가요?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시선으로 보실까? 쓸모없는 가지는,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가차 없이 잘라버리시나?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는, 나는 열매 맺는 가지인가? 그만큼 쓸모 있는 가지인가? 아니면 쓸데없어서 잘라버리고 불태워버리는 그런 가지인가? 그래서 우리를 열매를 맺기 위해서 안절부절못하게 만드시는 그런 무서운 주인인가? 하나님도 그런 분이신가?

오늘 말씀도 겉으로는 그래 보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면 버림받고, 말라버리고, 불에 태워진다니…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열매의 정체를 알면, 이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게 읽힙니다.

2.

주님께서는 ‘열매 맺어라’ 하십니다. 그렇지만 ‘네가 알아서 열매 맺어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 맺는 방법을 일러주십니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오늘 본문 말씀만 해도 5번이나 말씀하십니다.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 말 안에 머물러라. 내 말이 사랑이다.’ 17절에 결론처럼 나오죠. ‘내가 하는 말 대로 해라. 그게 사랑하는 거다.’

첫째는 머무르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떠나지 말라는 겁니다. 지난 주 충전 이야기를 했죠. 그런데 붙어있기만 하고 기운을 받지 않으면, 충전선이 제 기능을 못하면, 붙어 있는 것으로만은 소용이 없습니다. 충전선이 다 똑같아 보이는데 아니더라구요. 어떤 선은 열 시간을 꽂아 놓아도 절반도 채 차지 않는가 하면, 어떤 선은 꽂기만 하면 한 시간 만에 100% 꽉 차는 게 있더라구요.

나는 하나님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받는, 그 힘으로 충전되는 기능이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을 알기만 하면, 그 말대로 살지는 않고 그저 알기만 하면, 그건 연결만 된 것이지 충전은 안 되는 상태입니다.

제가 책 사는 걸 좋아하는데요. 어쩔 때는 보면, 읽을 책이 쌓여서 미처 못 읽고 있을 때가 있어요. 그렇게 쌓여 있는 책은 아직 내 것이 아니에요. 돈 주고 사서 소유권은 나에게 있지만, 내 책이 아니에요. 읽고 느끼고 그 내용에 감동되고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것들과 융합되어 나에게 녹아들어야 그 책이 내 책이 된 것이죠.

둘째는 그렇게 주님 안에 머물러서 맺게 되는 ‘열매의 정체가 뭐냐’ 하는 겁니다. 11절을 보면,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하자면 열매 맺는 것은, 그 열매의 정체는, 내 삶의 기쁨입니다. 평화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내가 기쁘다는 겁니다. 여기에 우리 신앙의 진리가 있어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누가 좋습니까? 하나님이 좋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말하잖아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 자녀의 행복입니다. 부모 된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항상 말하죠.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그렇죠? 물론 우리들의 말은 하나님 말씀과는 다르게, 조금씩 우리의 욕심도 들어가 있고, 우리의 편견도 들어가 있지만, 그 근본 마음 상태는 비슷하게 닮아있습니다. 자녀가 잘 되고 기쁘고, 평안한 것이 부모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 우리에게 바라시는 열매는, 바로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의 삶을 보세요. 하나님 말씀대로 사니까 얼마나 기쁘게 사셨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뭐가 기쁩니까? 배신당하고, 돌팔매도 당하고, 거리에서 노숙하기도 하고, 음식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그랬는데, 뭐가 기쁩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 안에 진짜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은 하나님께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주시는 그 힘으로 그 능력으로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 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뻤습니다.

‘기쁘냐? 이렇게 사는 게 기쁘냐?’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해요. 우리 신앙을 되돌아보는 말입니다. 기쁘냐? ‘하나님을 믿는 게 나는 기쁜가?’

제가 우연히 신천지에 속한 사람을 한 명 알게 되었는데요. 그 사람이 겉으로는 매우 기뻐 보입니다. 행복하대요. 은혜가 넘친대요, 교회 일에도 열심이에요. 그런데 가만 보니까, 소위 ‘열매’에 전전긍긍합니다. 열매를 맺어야 되요. 전도해 와야 해요. 자기들은 모략이라고 말하는데 거짓말을 해서라도, 사기를 쳐서라도, 데려오면 그게 열매에요. 그 열매를 맺어야 해요. 겉으로 보이는 그런 열매! 안 그러면 구원받는 144,000에 들지 못합니다. 그러면 멸망합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그건 사실 협박 아닌가요? 겉으로는 행복하지만 속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는 그런 가짜 행복, 가짜 기쁨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진짜 행복, 진짜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은 어떠냐는 겁니다. 진짜 기쁩니까? ‘말씀대로 살자’가 부담이 되고, 어렵고, 힘들고, 괴롭히면, 내 신앙을 처음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어떻게? 즐겁게 기쁘게!

3.

말씀의 내용이 부담이 됩니까?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이 됩니까? 예수 믿고 교회 나가고 하는 일이 의무감이나 어쩔 수 없는 부담감으로 느껴집니까? 그럴 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즐거운가?’ 하는 물음을 물어야 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자기 재산을 다 털어서 나눠줍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어쩔 수 없이 하나요? 안 그러면 지옥 가니까 눈물을 머금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하나요? 아닙니다. 기쁨으로 합니다. 삭개오는 기뻤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예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예수님께 나병을 고침 받은 열 명이 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돌아와 경배하고 찬양합니다. 왜 그랬습니까? 안 그러면 도리에 어긋나니까 그랬나요? 아닙니다. 기뻤습니다. 즐거웠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우리가 소위 교회 나와서 은혜 받는다고, 복 받는다고 하는데, 사실 복 받는 것이 은혜의 정체가 아닙니다. 나병 고침을 받은 사람, 그들은 다 복 받았습니다. 고침 받았습니다. 누구도 받지 못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진짜 은혜는, 그들에게 임하는 진짜 구원은, 그 은혜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진짜 은혜를 받은 것은 그 중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복 받는 것이 은혜의 전부가 아닙니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가 돌아와서 잔치를 벌입니다. 우리는 다들 계산 잘하잖아요. 계산해 봅시다. 플러스 얼마, 마이너스 얼마…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어떻습니까? 절대로 손해입니다. 양 한 마리 찾은 것보다 잔치 준비한 값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이 목자는 바보인가요? 셈이 어수룩한가요? 아닙니다. 그 중심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이 있으니, 그는 행복한 겁니다.

‘무슨 열매를 얼마나 맺었는가?’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기쁜가? 즐거운가?’ 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근본 문제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일이라고 해도, 소위 겉으로 보이는 열매라고 해도, 기쁨이 없다면 열매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붙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나에게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4.

오늘 말씀 바로 앞을 읽어 보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혜사, 진리의 영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요14:27). 그 이유는 평안입니다. 참된 평화를 위해서 주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근본적인 기쁨을 주겠다는 말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손가락질당하면서, 그렇게 완전히 실패해 놓고도, 폭망해 놓고도, 예수님은 평안했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깁니다. 다 이루었다” 하십니다. 완전히 기쁘다는 겁니다. 제자들도 도망가고 헤어지고 했지만 결국 평안했습니다. 오히려 순교의 가시밭길로 기꺼이 들어섰습니다. 평안하게요.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얻는 기쁨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을 찬찬히 읽어 보니,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지치기와는 전혀 다른 말씀인 것을 알게 됩니다. 열매 맺지 못하면 잘라 버리신다고 하셨지만, 주님은 우리가 열매를 얼마나 맺는지 지켜보고 심판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열매 맺지 못하니, 내 안에 머물러라. 내 안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너희의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겠다.’

주님의 말씀은 오히려 열매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열매 맺는 일에 매달려서 정작 더 중요한 일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열매는 내가 알아서 맺어 줄 테니, 너는 다만 나에게서 떨어지지 말고 내게 딱 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저 즐거워하고 기뻐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삭개오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삭개오가 재산의 절반을 내놨다거나, 네 배로 갚아주었다거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핵심은 삭개오가 기뻤다는 것입니다. 병 고침받은 사람에게서 중요한 것은 그 병이 나았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가 병 고침을 받고 기뻐하고 즐거워했다는 것입니다. 성전 미문 앞에 앉아있던 사람에게 중요한 사건은 그가 걷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기뻐하고 즐거워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맺어야 할 가장 큰 열매는 하나님과 함께 있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기쁨과 즐거움이 하나님에게서 왔으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오늘 이 말씀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열매 걱정일랑 나에게 맡기고, 너는 그저 내 안에서 기뻐해라.”

주님의 이 따스한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이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 믿으며 사는 우리 삶이 기쁘고 평안하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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