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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러운 세상의 따뜻한 해방구“우리들의 블루스 - 이 시끄러운 세상에 푸릉이라는 판타지” 2022 NCCK신학위 <사건과 신학> 6월호 ⑵
배영미(기독여민회 홍보출판위원장) | 승인 2022.07.20 00:25
▲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화면 갈무리

혼돈의 카오스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임신 중단과 관련한 판결을 뒤집는 바람에 미국 여성들의 임신 중단에 대한 결정권이 사실상 박탈된 날, 상원에서는 총기규제 최종안이 가결되었다. 허술한 의료보장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해 죽어가는 나라에서, 숱한 총기 난사로 인해 수많은 이들의 삶이 갑자기 중단되는 나라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의 결정권을 제한하다니 참으로 혼란스러운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불의한 전쟁과 강대국의 탐욕으로 세계 경제는 바닥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고, 일본의 전시 성노예제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독일 미테(Mitte) 구에 설치된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는 없었다”며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극우 단체 인사들의 언어도단은 우리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있고, 공정과 상식을 떠드는 자의 내로남불이 매일 최고 수위로 갱신되는 시간들 속에서 만난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 자체로 온전한 해방구였다.

언제나 지상의 작은 자들에게 초점을 맞춰온 노희경 작가는 가난하거나 외롭거나 장애가 있거나 치매에 걸리거나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무대 중앙으로 불러내어 켜켜이 쌓인 서사를 다정하게 풀어 내주었다. 이제는 공간을 아예 제주로 옮겨서 마치 외국어처럼 낯선 제주 토박이말에 자막까지 붙여가며 변방이었던 제주를 세상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특히 무수한 드라마에서 도피처나 여행지로만 소비되던 제주, 늘 외지인이 헤집고 다니며 주인 행세하는 제주, 4.3과 공군기지 추진의 아픔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채 오늘도 육지 것들의 쓰레기를 받아야 하는 제주, 그곳에서 드센 바람을 제대로 맞으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넉넉하고 깊은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는 매회 사연의 주인공이 달라지지만 푸릉마을을 기반으로 하기에 공통의 지평 위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변주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회차마다 소제목을 붙이는데 그 역시 다른 이와의 관계성에 기초한 호칭이 아니라 한수와 은희, 영옥과 정준, 영주와 현, 동석과 선아, 인권과 호식, 미란과 은희, 춘희와 은기, 옥동과 동석~~~ 이런 식으로 아주 어린 아이부터 죽을 날 받아놓은 황혼의 어멍까지 모두 제 이름으로 존재하면서도 하모니를 내는 블루스 같은 리듬을 보이고 있다. 아~ 그래서 블루스인가보다.

한동안 궁금했다. 왜 블루스일까? “난리 부르스”의 그 블루스(Blues)인가? 등장인물들이 죄다 이 난리 난 것 같은 세상에 어울리는 슬픈 노래 같은 인생들이라서? 그러다 찾아보니 블루스라는 장르는 미국 흑인들이 낯선 땅으로 강제 이주된 후 자신들의 가락에 가스펠 등을 이리저리 섞어서 만들었으며, 우울(feel blue)한 가사에 슬픈 가락이 배어 있기에 블루스가 되었다는 풍문 같은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제목처럼, 드라마는 우울(blue)하지만 푸른(blue) 이야기를 부지런히 던져준다. 거친 바다와 그보다 더 거친 바람을 맞으며 척박한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갈등과 오해와 질투와 열패감, 미성년 임신과 장애를 가진 가족을 둔 사람들의 고단한 시간들을 보노라면 ‘삶은 고해’라는 말이 절로 든다. 그러나 작가는 드라마 마지막 회를 닫으며 당부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사명 하나. 우리는 이 땅에 괴롭기 위해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 모두 행복하세요!”(박스)

그렇다면,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우리가 진정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들의 블루스 주제가에 그 길로 가는 길이 제시되어 있다.

“잊지는 말아요, 함께했던 날들. 눈물이 날 때면 그대 뒤를 돌아보면 돼요. 아프지 말아요, 내가 곁에 있을게요. 외로워 지칠 때 손 잡아줄게요. 슬픔이 짙어질 때면 위로해줄 그 한 사람이 될게요. 폭풍 속에 혼자 남아 헤매도 길이 되어 지킬게요. 어두운 길을 밝게 비추는 그대의 빛이 될게요.”

마치 길 잃은 우리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예수처럼 작가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뉘앙스로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줄 것을 부탁한다. 교회가 차별과 배제의 언어로 사람들을 내모는 이 때에 드라마는 지치고 힘든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푸릉마을을 통해 다시금 생의 의지를 북돋우는 것이다.

웅숭깊은 드라마에 풍덩 빠져 있던 차에 문득 오래전 읽었던 소설 「양산펴기」(황정은 作)가 떠올랐다. 모아둔 동전 3만 원으로 장어를 먹고 싶다는 아내(녹두)와 지구본을 사고 싶어 하는 남자 주인공이 구청 근처 바자회에서 양산을 파는 알바를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는 아래 문장을 통해 절묘하게 완성된다.

“로베르따 디 까메르노 웬 말이냐 자외선 차단 노점상 됩니다 안되는 생존 양산 쓰시면 물러나라 기미 생겨요 구청장 한번 들어보세요 나와라, 나와라 가볍고 콤팩트합니다. 방수 완벽하고요. 아줌마 빤스는 국산이 좋아 국산 사세요. …”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동석(이병헌 扮)이 한쪽 다리를 구르면서 “골라, 골라, 윗도리 오천 원, 아랫도리 오천 원”이라고 소리치면 저쪽에선 “오늘 막 잡은 은갈치 만원” 등의 말들이 들리듯이 소설 속 시장에서도 온갖 소리들이 떠다닌다.

그러나 소설의 백미는 여기에 있다. 알바를 하며 하루 종일, “너덜너덜해진 생존”권을 들은 남자는 집에 돌아와 얕은 잠에 빠진다. 그런데 녹두가 안하던 잠꼬대를 한다며 그를 깨우며 묻는다.

“뭐라는 거야 그거, 시(詩)야?
내가 뭐라고 했어?
로베르따 어쩌고 이태리 메이커에 제조는 중국입니다.
아아 그거, 노래”라고 그는 잠결에 대답한다.(1)

그렇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살아가는, 결론이 정해진 인생이지만 우리 삶은 그 자체로 시 일수도, 어쩌면 노래일 수도 있는 것이다. 노희경 작가나 황정은 작가 모두, 비록 너덜너덜해진 생존권 사수를 목에 걸고 있는 인생일지라도, 푸른 바다 앞에서 매일 절망을 달고 사는 우리의 그 모양 그 꼴 같은 인생도, 본디 ‘노래’라 말하는 건 아닐까. 다운증후군을 가진 영희(정은혜 扮)도 멋진 그림으로 세상과 만나고, 백개의 달에게 소원을 빌면 아빠가 살 수 있을 거라는 은기의 소원에 풍랑이는 바다에 백 척의 배를 띄워 그 소원을 이루어주는 세상에선 우리 모두 이미 노래하고 있다고, 블루스의 선율이 되어 녹아들고 있다고 속삭이는 건 아닐까.

설교하지 않음으로 설교하며, 가르치지 않음으로 가르치는 드라마는 제주에 살면서도 한 번도 한라산을 가보지 못한 어멍(김혜자 扮)과 그 어멍을 평생 미워했던 아들의 뒤늦은 화해를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아~ 드라마처럼 현실도 해피엔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지금 이 시간에도 빚 때문에 동반자살한 가족, 절망 속에 생을 마감한 발달장애인 부모, 성매매를 시키면서 동물 사료를 먹인 자매 등 악랄하고 아프고 어두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드라마는 이처럼 뒤틀릴대로 뒤틀린 세상을 바꾸기엔 참으로 연약한 도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읊조린다. 이 서러운 세상의 따뜻한 해방구 같은 푸릉 마을 하나 있어 캄캄한 어둠 속에 내몰린 이들에게 백 개의 달로 비추게 하소서. 혼돈의 카오스를 지나는 당신과 내가 끝내 땅의 사람들에게서 하늘의 기쁨을 길어 올리는 마중물이 되게 하소서.

사람에 대해, 우울증에 대해, 미성년 임신과 청소년 인권에 대해, 이해받지 못하는 삶에 대해, 교회에 대해, 신앙에 대해, 고난 받는 이들에 대해, 환대와 해방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당신을 초대하는 바이다.

미주

(1) 황정은, 파씨의 입문, 창비, 2012.

배영미(기독여민회 홍보출판위원장)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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