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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을 경험하다말씀의 만남(이사야 6,6-13; 요한계시록 22,10-16)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07.21 01:01
▲ 예언자 이사야는 자신의 부정을 깨닫고 절망하나 하나님께서 그를 정하게 하셨다. ⓒGetty Image

이사야 6장의 본문은 이사야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본 환상의 한 부분입니다. 웃시야 시대에 이스라엘의 국력은 크게 신장되었고, 주변 나라들이 유다에 조공을 바칠 정도가 되었습니다. 큰 나라는 아니지만 유다는 지역의 맹주가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웃시야 개인도 사람들을 고용해 여러 곳에서 목축과 농사를 짓게 했습니다. 웃시야 개인적으로만이 아니라 유다도 국가적으로 부를 누렸고 막강한 군사력은 나라를 안정케 했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는 유다 전성기였습니다.

그 시대를 이끌던 왕 웃시야가 오랫동안 나병을 앓다가 죽었습니다. 왕의 죽음은 그 시대에 대한 평가를 불러옵니다. 이사야의 환상이 그런 것일 수 있을까요?

환상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을 경험합니다. 거룩은 사람에게 요구되기도 하고 사람이 목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거룩의 경험에서 이사야는 자신의 입술이 더럽고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사는 자임을 깨닫고 탄식합니다.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자신의 더러움이 거울에 비춰보듯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 난감한 상황을 하나님께서 타개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핀 숯을 이사야의 입술에 대고 그의 죄와 그의 악이 용서받았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사야가 그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죄와 악으로 더럽혀진 사람은 죽음으로써만 하나님의 거룩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 더러움을 씻어내기 위해 핀 숯을 입술에 댄 것은 대단히 상징적입니다. 우리로서는 이 정화사건을 예수 사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서 주님은 우리의 피를 언제까지 갚아주지 않으실 거냐고 절규하는 사람들에게 때가 차기까지 입을 흰 두루마기를 주십니다. 하늘나라에서 각 나라 사람들로 이루어진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하나님과 어린 양을 찬양합니다. 모두 예수 사건을 통해 하나님 앞에 서게 된 사람들입니다.

굳이 예수 사건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믿음’이라는 말이 너무 가볍게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 입은 흰옷은 예수 사건의 결과 그들이 깨끗하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이사야는 그의 환상에서 깨끗하게 되었지만 그 환상은 이사야 보다는 이스라엘을 겨냥합니다. 이는 입술이 더러운 백성이라는 이사야의 말 속에 이미 암시되어 있습니다. 이사야는 자신의 경험이 이스라엘에게도 일어나기를 희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경험은 거룩 만남, 더러움 깨달음, 핀 숯으로 정화, 용서 이 네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용서 과정이 이스라엘에게도 일어날 수 있겠는지요?

이사야는 그 후 하나님이 내가 누구를 보낼까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합니다. 어디로 무엇을 위해 보내는 것인지 아무 말이 없었는데도 그가 그리 대답한 것은 그와 같은 사건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기대를 산산이 깨뜨리는 말씀을 그에게 하십니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 못할 것이다.
보고 또 보아라! 그러나 알지 못할 것이다.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라!
그들의 귀를 막히게 하고
그들의 눈을 멀게 하라!
하여 이 백성이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라!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사야의 경험이 이스라엘의 경험이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사야의 사건은 만남과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는데, 하나님은 깨달음의 단계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라 하십니다. 보고 듣는 것은 만남의 사건이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깨달음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 그 말씀의 골자입니다.

무엇 때문인지요? 이스라엘에게는 정화를 위한 핀 숯대신 그들을 멸망시킬 재앙이 뒤따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이러실 수 있느냐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참담한 마음으로 언제까지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이러한 신탁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실망이 그토록 깊었다는 말로 다 설명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전성기를 누렸던 웃시야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담고 있습니다. 경제적 군사적 성과가 크면 클수록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그늘이 그만큼 깊어졌고, 그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들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만남으로 이사야가 겪은 과정들을 거치고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그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의 사건으로 기록되지 않음을 계시록 본문은 보여줍니다. 요한은 그가 본 환상을 다 기록한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불의한자는 계속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계속 더러운 채로 있게 하고
의로운 자는 계속 의를 행하게 하고 거룩한 자는 계속 거룩하게 하라!

이사야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서 다시 들려옵니다. 이것은 현상을 유지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사람에게 삶의 길을 바꾸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의 사건과 그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기 길을 고집할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죽음의 길일지라도 멈추거나 돌이키려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많은 경우 편함과 쉬움과 이익의 매력이 죽음보다 강합니다.

의와 불의, 거룩함과 더러움! 이를 이분법적 사고라고 폄훼하지 않기를 빕니다. 그것들은 최종적으로 그 기준에서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을 서로 끌어가는 힘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것들은 생명과 죽음을 가름하는 기준입니다. 죽음의 세상에서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말씀의 만남으로 생명의 문을 여십시오. 그 문 뒤에 펼쳐져 있는 생명의 길을 가십시오. 더러움과 불의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진리와 사랑으로 매순간을 걸어가십시오. 사람이 보일 것입니다. 세계를 들을 것입니다.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감동과 감격이 있을 것입니다. 새세계가 열리고 의와 거룩의 열매인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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