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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무덤을 ‘하나님의 밭’으로 부르는 곳헤른후트에서 온 편지 (8)
홍명희 선교사 | 승인 2022.07.22 15:54
▲ 헤른후트의 “하나님의 밭”(Gottesacker) ⓒ홍명희

모라비안 사람들은 로마가톨릭의 종교 핍박을 피해, 살길을 찾아 나섰다. 바로 조그만 숲속의 땅, 헤른후트였다. 크리스찬 다윗이 나무를 베어 언덕에 집을 지은 후부터 빠르게 집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마을이 형성되면서,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제의 공간도 짓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 두 사람씩 하늘나라로 가게 되면서, 죽음의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다. 살기 위해 왔지만,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헤른후트 사람들은 생각했다. 예배는 죽음 후에도 계속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결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맞이하는 것이기에,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예배하던 대로 성도들의 무덤을 조성해 가기 시작했다. 예배실에 여자와 남자 자리를 따로 구분했던 것처럼, 무덤도 그렇게 만들었다. 무덤 묘비는 서 있지 않고 누워있는 조그만 돌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치 책의 한 부분처럼 보인다. 생명의 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을 상징하기도 하고, 씨앗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부활절 아침에 모든 성도들은 나팔을 불며 무덤가에 둘러서서 예배한다. 그 예배는 부활을 선 경험하는 놀라운 축제의 시간이다. 이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헤른후트로 몰려온다.

언젠가 한국에서 중학생 아이들을 이끌고 온 교회가 있었다. 무덤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에, 한 소녀가 놀라운 말을 하였다.

“오... 저도 나중에 여기 묻히고 싶어요. 너무 좋아요. 어떻게 하면 여기에 묻힐 수  있나요?”

나는 살아갈 생각만 하고 살고 있었다. 점점 힘을 잃어가는 남편을 살리려고 산보를 시키고, 온갖 좋은 것을 먹이며 운동을 시키려고 애썼다. 나 또한 남편을 돌봐야하기에 더 힘 있게 살아가려는 온갖 노력을 하고 있는 중에 소녀의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직 창창한 삶을 앞두고 있는 아이의 입에서 나온 죽음에 대한 생각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성도들의 죽음이 아름답게 되기 위하여, 헤른후트 사람들은 지금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온 교우는 매일 밭을 가꾸듯이, 무덤가에 계속해서 자라나는 들풀을 쳐주고 나무들을 다듬어 주면서 헌신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 이름도 무덤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밭”(Gottesacker)으로 불리고 있다. 모든 성도들은 무덤에 묻힌 것이 아니라, 씨앗으로 심겨진 것이며, 영원한 삶으로 다시 피어날 것이라고 믿기에 이 밭을 계속해서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이 마음을 알기에 나는 한국 분들이 여기 와서 며칠 머물게 되면, 이런 일을 잘 하실 수 있는 분들에게 부탁을 한다. 그래서 헤른후트 사람들과 함께 무덤가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이 축제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그분들이 아끼는 것을 우리도 아껴주는 것뿐인데도 마을 사람들은 우리의 이 작은 봉사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감사함을 표현하시곤 한다.

어제 언덕을 오르는 길에 누군가 진젠도르프 무덤에 해바라기 한 송이를 올려놓은 걸 보았다. 그는 해바라기와 같은 사람이 아닌가! 누구나 해바라기 꽃을 보면 밝아진다.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진젠도르프 백작을 만나면 주님께로 가는 환한 길로 인도 되었다. 그가 목사는 아니었지만, 설교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얻고 돌아가곤 하였으니 해바라기와 같은 삶을 산 것이 틀림없다.

또 조금 오르다보면, 주기도문의 한 부분이 적힌 조각돌이 나온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심과 같이 또한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그리고 가운데는 1933년에서 1945년이라는 숫자가 처참하게 동강이 나있다. 1945년 전쟁이 끝나는 해였다. 독일의 나치는 패망했다. 그리고 러시아군이 이 마을에서 물러가면서, 교회에 불을 질렀다. 다 소실되고 벽만 남은 망연자실한 상황 가운데에서, 그들은 누가 누구를 용서한단 말인가. 특별히 나치에 저항하지 못했던 많은 헤른후트 형제 교회는 스스로 참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참회에 이어 교회를 다시 세우기에 이른다.

▲ 1945년 나치의 패망으로 막을 내린 제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며 만든 비석 ⓒ홍명희

삶의 현장인 교회와 마을 그리고 언덕으로 오르는 길에는 오늘도 아치형의 문구가 금빛으로 빛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매일 아침,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 곳을 오르면서 오늘의 삶 그리고 내일의 죽음, 씨앗으로 묻혀 다시 생명으로 피어날 영원한 삶을 묵상한다. 헤른후트는 이 하나님의 밭이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 삶과 죽음 그리고 다시 얻은 삶!

모라비안 사람들이 살기 위해 찾아온 이곳에서 맞이한 죽음은 인간적으로 볼 때는 타향에서의 쓸쓸한 죽음이었을 수 있으나, 그들이 희망했던 영원한 고향에서 다시 찾을 삶이 기다리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한번은 어떤 사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돋보기를 들고 무덤을 살피는 사람을 보았다. 아마도 돌 위에 있는 이름과 태어난 곳, 생년월일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믿음의 조상을 찾는지도 몰랐다. 세월의 오랜 시간으로 때로는 이끼가 끼기도 하고, 수많은 비바람으로 인해 돌 위의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있지 않다. 돌 위에 남은 것은 이름과 태어난 곳과 연도, 하늘로 돌아간 년도뿐이다. 이것으로 그 한사람의 생애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그 외에 무슨 더 많은 설명이필요하겠는가. 단 한번 뿐인 성도들의 생애가 그렇게도 간단하게 설명된다는 것 또한 주님을 높여드리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년 부활절에도 이미 돌아가신 성도나 살아있는 성도 모두 함께 좋아했던 찬양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밭에 이를 것이다. 그 행렬은 장엄하고도 끝이 없다. 그러면 온 성도가 둘러선 가운데, 작년 부활이후부터 오늘 부활절까지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이 불려진다. 온 성도는 찬양가운데 부활의 확신을 갖게 되고, 서로 “기쁨의 부활절”(Frohe Ostern!)하면서 인사하게 될 것이다.

홍명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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