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삶의 존재 이유, ‘용서’”조건 없이 무한히(마태복음 6:14-15)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7.26 02:02
▲ 용서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정의 없는 용서는 있어서는 안 된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스스로 겪고 있는 현재 상황을 보면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평안할 수 있겠어?’라고 질문할 때가 있습니다.

또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평안을 되찾지 못하고 때로는 차오르는 분노와 실망감에 자신을 내어 맡김으로, 조금만 스스로 조금만 더 생각하면 하지 않게 될 잘못된 선택이나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겪게 될 고난과 죽음의 위협 그리고 실제적인 죽음을 아시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왜입니까? 예수님이 평화를 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평화를 심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평화는 거절해서 되돌려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심어 주신 평화입니다.

이 평화가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로 이 평화가 우리 안에 심어졌습니다. 이 평화가 제자들 안에 심어져 제자들은 어떠한 고난과 역경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 평화가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저와 성도님들도 이 평화를 누림으로 언제든지 겪고 있는 고난과 두려움 또는 삶을 흔드는 여러 상황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서 다르게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겪고 있는 또는 다시 새롭게 겪게 될 일들에 자신을 내어 맡기거나, 굴복당하지 않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심으신 평화를 선택하고 누리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조금 거창합니다. “삶의 존재 이유, ‘용서’”입니다. 성도님들은 혹시 내가 왜 살아야 하나? 라고 종종 질문할 때가 있으신가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이런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살아야 하는 목적과 이유를 세상의 기준에서 찾을 때 더 그렇습니다. 남들처럼, 다른 표현으로는 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입한 삶의 모습으로 살지 못하게 되면 비관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기 위해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삶의 방식을 다시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5:2 “그는 자기도 연약함에 휘말려 있으므로, 그릇된 길을 가는 무지한 사람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8-9 “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은 연약함에 휘말리시고, 고난의 삶을 사셨기에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우리가 겪은 고통과 고난을 모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닙니다. 경험도 없이, 입으로만 떠드는 이들과 같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보다도 더 큰 배신, 육체적 고통, 가난, 삶의 질곡을 경험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말씀이 바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유일한 삶의 푯대입니다. 목적입니다.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또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우리는 지음 받았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을 따르고, 말씀에 순종하며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데, 걸림돌이 있습니다. 바로 ‘용서’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그래서 우리 안에 미움과 죄와 악이 남아 있다면 결코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 용서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뒤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이 나옵니다. “14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구약성서를 읽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많이 용서해 주셨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 전체에서 용서라는 주제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용서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삶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4:17-23 “17 그러니 이제 주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기 바랍니다. 18 나 주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사랑이 넘치어서 죄와 허물을 용서한다. 그러나 나는 죄를 벌하지 않은 채 그냥 넘기지는 아니한다. 나는, 아버지가 죄를 지으면 본인뿐만 아니라 자손 삼사 대까지 벌을 내린다’ 하고 말씀하셨으니, 19 이집트를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주님께서 이 백성을 용서하신 것처럼, 이제 주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이 백성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말대로 용서하겠다. 21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리고 나 주의 영광이 온 땅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 22 나의 영광을 보고도, 내가 이집트와 광야에서 보여 준 이적을 보고도, 열 번이나 거듭 나를 시험하고 내 말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그 땅을 못 볼 것이다. 나를 멸시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그 땅을 못 볼 것이다.”

시편 25:11 “주님, 주님의 이름을 생각하셔서라도, 내가 저지른 큰 죄악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시편 32:5 “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며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였더니,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을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 (셀라)” 시편 65:3 “저마다 지은 죄 감당하기에 너무 어려울 때에, 오직 주님만이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시편 85:2 “주님의 백성들이 지은 죄악을 용서해 주시며, 그 모든 죄를 덮어 주셨습니다. (셀라)” 시편 86:5 “주님, 주님은 선하시며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 누구든지 주님께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한없이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99:8 “주 우리 하나님, 주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한 대로 갚기는 하셨지만, 주님은 또한, 그들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미가서 7:18 “주님, 주님 같으신 하나님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살아남은 주님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진노하시되, 그 노여움을 언제까지나 품고 계시지는 않고, 기꺼이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십니다.”

긴 성서의 말씀들을 읽어드린 이유는 용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신약으로 와서도 ‘용서’의 주제는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18:21-35 “21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22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많이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용서에 관해 설명하셨습니다. “23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마치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과 같다. 24 왕이 셈을 가리기 시작하니, 만 달란트 빚진 종 하나가 왕 앞에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는 빚을 갚을 돈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그 아내와 자녀들과 그밖에 그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랬더니 종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다. 27 주인은 그 종을 가엾게 여겨서, 그를 놓아주고, 빚을 없애 주었다.”

“28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자,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였다. 29 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였다.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집어넣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

“31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딱하게 여겨서, 가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 주었다.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34 주인이 노하여, 그를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35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이 예화를 통해 나의 형제자매와 이웃을 용서하며 살아야 함이 마땅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더 많은 용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이 있는 이들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용서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용서하고 사랑을 나타내 보이라고 권면했습니다. 고린도후서 2:6-8 “여러분 대다수는 그러한 사람에게 이미 충분한 벌을 내렸습니다. 7 그러니 여러분은 도리어 그를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지나친 슬픔에 짓눌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8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그에게 사랑을 나타내어 보이기를 권합니다.” 

계속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0 여러분이 누구에게 무엇을 용서해 주면, 나도 용서해 줍니다. 내가 용서한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앞에서 여러분을 위하여 용서한 것입니다. 11 그렇게 하여 우리가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속셈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 하는 믿음의 실천’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오늘 설교의 제목이 “삶의 존재 이유, ‘용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어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중요한 목적은 바로 용서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용서는 무조건적 받아들임이 아닙니다. 앞서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용서하시되 받아야 할 죄의 값은 치루셨습니다. 즉, 용서는 우리의 마음에서 놓아줌을 의미합니다. 붙들지 않고, 그 사람을, 그 상황을, 그 일을 놓아주는 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놓아줄 때,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14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용서하십시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삶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용서하는 삶’입니다. 용서하는 삶이 가능할 때 사랑의 삶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 마음에서 놓아주십시오. 그리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