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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드라마 속 여성들은 불쌍하거나 불행할까?“우리들의 블루스 - 이 시끄러운 세상에 푸릉이라는 판타지” 2022 NCCK신학위 <사건과 신학> 6월호 ⑶
오수경(청어람ARMC 대표 · <드라마의 말들> 저자) | 승인 2022.07.27 00:12
▲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은희와 미란 ⓒtvN 포스터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tvN)에서 은희의 친구이자 마을에서 함께 자란 미란의 이야기가 나온다. 미란은 세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서울에서 홀로 마사지 샵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유럽에서 살고 있는 첫 번째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딸과 약속한 여행이 좌절되자 제주행을 택한다. 유난히 마을 주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그가 오자 그의 동창부터 마을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그를 반겼다.

하지만 그를 반기는 이들의 진심은 어쩐지 텁텁하기만 하다. 남자 동창들은 그를 환영하며 추앙하는 듯 굴지만 사실은 잠깐 즐기려 할 뿐이지 그를 깊이 대하지 않는다. ‘결혼을 세 번 한 방탕한 여자’라는 평판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후려칠 뿐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드라마는 그런 그를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은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 없는 불쌍한 사람으로 그리며 그를 연민하게 한다.

육지 출신이며 해녀 학교를 거쳐 해녀가 된 영옥을 둘러싼 소문도 심상치 않다. 순 거짓말만 하더라, 바람둥이라더라, 서울에 애가 있다더라… 는 소문과 함께 그의 야무지고 억척스러운 행동은 해녀 공동체의 미움을 산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정준은 그런 믿을 수 없는 수상한 여성도 사랑하는 순수한 청년으로 그려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영옥을 둘러싼 오해가 풀린다. 부모님을 ‘화가’라고 이야기했던 게 거짓이 아닌 진실이며 12살에 부모를 여의고 다운증후군을 앓는 쌍둥이 언니의 보호자로 살아왔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그제야 해녀들은 그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영옥을 만나러 제주도에 온 그의 언니 영희도 경계 없이 맞이한다.

이 얼마나 훈훈한 내용인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미란이 정말 문란한 여자고 영옥이 실제로 바람둥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아마 그들을 받아줄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현실이니까. 2019년에 방영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KBS2)에서 홀로 아이 낳아 키우는 불쌍한 동백은 살고 ‘몸을 함부로 굴린 업소 여자’ 향미는 죽어야 했던 것처럼. 나는 이 점이 매우 찜찜하고 불쾌하다.

드라마 속 여성들은 이렇게 남성들의 시선에 의해 ‘헤픈X’이 되었다가 ‘나쁜X’이 되었다가 불쌍하고 불행해져야 면죄부를 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질 때가 많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우리들의 블루스> 속 은희만이 인정을 받는다. 성적 매력은 없지만 혼자 잘 살며 재력까지 있어서 남자들에게는 부담없이 만날 수 있는 존재다. 즉 “미란이는 거쳐 가는 정거장이지만 은희는 종착역”으로서 수용되어 그들의 아내나 여성들에게는 ‘안전한 언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남성들은 어떠한가? 자신의 딸의 유학 자금을 위해 은희의 순정을 이용하려 했던 한수는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으로서 연민의 대상이 되었고, 인권과 호식은 아내 없이 애 키우느라 고생한 짠내 나는 아빠가 되었으며, 동식은 자신을 이용만 하는 이기적인 선아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순정남이 되었고, 정준은 자신을 속이는 것 같은 영옥을 믿고 그의 약점(다운증후군 언니를 부양해야 하는)마저 감당하려는 멋진 남자가 되었고, 명보는 의부증 아내에게 맞는 불쌍한 남자가 되었다.

심지어 동석은 남편 잃고, 딸마저 잃은 상태로 어린 아들이라도 살리기 위해 다른 남성의 ‘첩’이 되어야 했던 엄마 옥동을 평생 이해할 생각조차 못한 채 원망만 하다가 뒤늦게 후회를 한다. 그런 아들을 위해 옥동은 아들이 좋아하는 된장국을 끓여놓고 끝내 온전히 이해되지 못한 채, 그저 동석의 회한 속에 불쌍한 사람이 되어 세상을 떠난다.

이렇게 무해하고 짠한 남성들에 의해 여성들은 무책임하게 아이를 버리고 도망갔거나, 착한 남편을 의심하여 폭행하는 한심한 여성이거나, 남의 집 ‘첩’이 된 부박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설사 그 여성들이 정말 그랬다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가장에 의한 가정폭력, 남편의 불륜, 생활고 등) 이해할 단서가 주어지면 좋으련만 현실이나 드라마는 여성에게 자신을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저 남성들의 기억 속에서 오해되거나, 주관적인 진술을 통해 전해질 뿐이다. 시청자들은 그런 남성의 ‘렌즈’로 해석된 정보로 그 여성들의 사정을 추측할 뿐이다. 애초에 그들의 사정이 중요하지도 않아 보인다. 남성들을 불쌍해하고 연민하기에도 바쁘니까.

<우리들의 블루스>가 정신질환, 장애, 노년 등 한국 드라마에서 소외시킨 이들을 등장시켜 섬세하게 대하고, ‘제주’라는 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재현하여 서울 중심의 문화의 지평을 넓힌 건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가부장 남성 중심’ 시각에 여성들을 가두고 함부로 대한 면은 지극히 퇴행적 재현이었고 이 드라마의 한계다.

지금 한국 드라마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노희경 작가가 그렇게 연민하고자 하는 대상에 과연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자격으로 포함되어 있는지 질문하는 일 아닐까? 다시 말하자면, 한국 드라마에는 젠더라는 렌즈가 필요하다.

오수경(청어람ARMC 대표 · <드라마의 말들> 저자)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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