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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젝트와 예수의 성스러운 피‘성스러운 체액’과 아브젝트(Abject) ⑻
우혜란 박사(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 승인 2022.07.28 01:51
▲ 십자가에서 피를 분출하고 있는 예수(작자 미상, 17세기, 왼쪽 사진)와 ‘뢰팅엔 피에타’(Röttingen Pieta, 작자 미상, 14세기, 독일 본 주립미술관, 오른쪽 사진)

지난 글에서 소개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주장처럼 유출된 체액이 기호계에 속한 대표적인 아브젝트로 기존의 (세속적) 체계와 질서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면, 중세 유럽에서 대중에게 깊은 신심을 불러일으켰던 ‘성스러운 체액’ 또한 아브젝트 논의에 포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유출된 체액의 특징은 몸의 경계를 넘으면서 제 자리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경계와 자리를 벗어난 물질

메리 더글러스는 일찍이 자신의 저서(Purity and Danger)에서 더는 신체 내부에 들어 있지 않은 체액을 “자리를 벗어난 물질(matter out of place)”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들이 사회질서 밖에 있는 사물들을 위한 메타포로 작동함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녀는 많은 문화권에서 “자리를 벗어난 물질”은 모호하여 금기시되고 의례적 오염과 위험을 불러온다고 간주되나, 그 반대로 몸 밖으로 나온 고름이나 피와 같은 아브젝트가 거룩함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언급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는 모든 사물을-성스러움과 불결함처럼-엄격하게 나누는 이분법이 언제나 작동하는 것은 아님을 지적한다.(1) 즉 자리를 벗어난 육체적 물질은 성스럽게도 오염된 것으로도, 순수하게도 불결하게도 여겨질 수 있기에, 모든 몸 밖으로 나온 체액이 오염되고 부정하여 기피되는 의례적 정화의 대상이 아니며, 같은 맥락에서 모든 유출된 체액이 성스럽게 여겨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분류는 고정적이지 않으며 체액이 어떻게 몸을 떠났는지, 누구의 몸에서 왔는지 등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2)

다음에서는 대표적인 아브젝트인 유출된 피가 어떤 조건에서 공경의 대상으로 신심을 일으키는 성스러운 물질이 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특별한’ 피에  한하여 성스러움이 인정되고 그에 상응하게 (의례적으로) 다루어진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경우 가장 성스러운 피는 성혈/보혈로 불리는 대속자 예수의 피이며, 그다음으로는 성인과 순교자의 피가 해당한다.

여기서는 중세 후기 북유럽에서 성혈이 대중적 신심에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바이넘(Caroline Walker Bynum)의 저서 Wonderful Blood(2007)를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이는 기독교 전통에서 어떠한 ‘특별한’ 성질/속성의 피에 성스러움이 부여되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중세 후기 기독교인들이 성혈에 대하여 통일된 시각을 가졌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반대로 당시에도 성혈 유물에 대한 다양한 그리고 종종 서로 충돌하는 시각들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많은 성직자와 교회 권위자들이 성혈(유물)도-모든 체액/물질의 운명이 그러하듯- 부패하여 결국 먼지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에 고심하였다면, 중세 후기 신심은 예수의 피를 – 장밋빛에 축축하고 뜨거운 – ‘살아있는’ 물질로 보았다.(3)

성혈: 살아있는 피; 삶과 죽음의 피

중세 후기 성혈에 대한 대중의 깊은 신심에 상응하여 북유럽 전역에서는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묘사한 그림들이 급증하였다. 이들 그림은 예수의 십자가 피를 ‘살아있는(living)’ 것으로 표현하였으며, 예수의 죽음 뒤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초점을 맞춘 그림들 또한 예수의 피를 붉은 액체로 묘사하였고, 사망 3일 후 부활한 예수의 상처에서도 신선한 붉은 피가 흐르는 것으로 종종 그려졌다. 이렇게 중세 후기의 십자가 예수 그림은 성혈을 응고되거나 마른 것이 아닌 흐르는 액체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 그림에서 예수의 피는 신선한 (커다란) 방울로 떨어지거나 핏줄기 모양으로 쏟아 내리는데-한 그림에 이 두 형태가 동시에 사용되기도 함- 천사나 성인들이 이러한 분출된 피를 잔으로 받는 모습이 묘사되기도 한다(위 왼쪽 그림). 이러한 붉은색의 액체 상태의 살아있는 예수의 피는 물리적인 부패/쇠락은 물론이고 형이상학적 타락인 죄악(罪惡)에 대한 저항/대항을 의미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불변의 하느님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4)

한편 예수의 피는 몸의 상처로 인해 몸의 내부에서 외부로 분출된 것으로, 상처를 통해 몸의 내부와 외부가 관통하게 된다.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 피는 생명의 물질이며 살아있는 ‘내부의 피(sanguis: 혈액)’ 그리고 죽음을 의미하는 유출된 ‘외부의 피(cruor: gore, 응혈)’의 속성을 모두 가진다고 여겨졌다. 특히 성혈 신심이나 성만찬 신학에서는 ‘분리’로서의 피를 강조하였는데, 여기서 ‘분리’는 귀환/복귀를 위한 수단으로 이해되었다.

예를 들어 만토바와 바인가르텐의 성혈 유물을 다룬 1200년경의 한 문헌에는 예수의 피를 부활의 온전함을 의미하는 지상에 남겨진 예수의 흔적이라고 기술한다.(5) 이렇게 상처로 인해 몸 안에서 밖으로 흘러나가는 예수의 피는 역설적이게도 생명과 죽음, 회복과 분리, 지속과 단절 등 삶의 양면성을 모두 포함하면서 이분법적 세계관을 넘어서는 상징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양면성은 초월성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의 피와 함께 예수가 십자가 수난 중 받으신 상처에 커다란 의미가 부여되고 대중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15세기 후반까지 예수의 오상(五傷), (창으로 찔린) 옆구리 상처, 상처받은 심장에 대한 신심이 확산된 것이다. 성직자들 또한 신자들에게 예수의 상처와 그가 흘린 핏방울의 수를 세고, 그 수만큼 자신의 죄나 연옥에서 고통 받는 사랑하는 이들의 죄를 위해 기도할 것을 권고하였다.(6)

이렇게 성흔에 대한 신심이 확산하면서 관련 미술품도 증가하였는데 후자의 특징은 예수의 피와 함께 그의 상처도 (그 크기나 수에서) 과장해서 표현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 오른쪽 그림에서는 예수의 넓게 벌어진 상처가 조각상의 중심에 위치하는데, 여기서 벌어진 상처는 육체의 내부와 외부가 만나고 그 경계가 와해되는 자리로, 시각화된 아브젝트라고 할 수 있다.(7)

미주

(1) Mary Douglas, Purity and Danger: an Analysis of Concepts of Pollution and Taboo, London & New York: Routledge, 1966, p. 36, p. 41, p. 165; Willy Jansen & Gritje Dresen, Willy Jansen & Gritje Dresen, “Fluid Matters: Gendering Holy Blood and Holy Milk,” in Things: Religion and the Question of Materiality, ed. D. Houtman & B. Meyer,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12, p. 218.

(2) Mary Douglas, ibid., p. 8; Willy Jansen & Gritje Dresen, ibid.

(3) Caroline Walker Bynum, Wonderful Blood: Theology and Practice in Late Medieval Northern Germany and Beyond, Philadelphia: Pennsylvania University Press, 2007, p. 173. 이들 성직자의 고심은 성혈의 부패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인정한다면 무엇보다 자기 아들인 예수를 부패/타락으로부터 지키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은 물론이고 예수의 피 흘림으로 획득한 인류의 구원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ibid., p. 124)

(4) Ibid., p. 153, p. 168f.

(5) Ibid., p. 173f.

(6) Ibid., p. 3. 바이넘에 따르면 14-15세기 텍스트나 문헌에는 예수의 상흔이나 핏방울에 대한 자세한 수–예, 5,460개의 상처, 28,430개 핏방울–가 제시되고 이 수에 맞춘 기도와 성경 읽기가 권고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러한 고통의 수량화와 높은 신심을 중세 후기의 주요 특징이라고 말한다. (C. W. Bynum, “Living Blood Poured Out: Piety, Practice, and Theology,” 강연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Cbi9GBtwOCg, 2012.06.27.(최종 접속일 2022.01.25.)

(7) 위 오른쪽 사진의 조각품은 기독교 예술의 주제 중 하나인 ‘피에타’-즉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시신을 안고 ‘비통’에 잠긴 모습을 묘사–를 다룬 것으로 이런 형태의 조각은 14세기경 독일에서 처음 시작되어 유사한 작품들이 이어졌다고 한다. 바이넘은 이 조각에서 피가 표현되는 방식-즉 예수의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크고 길쭉한 알갱이 형태로 뭉쳐서 떨어짐–에 주목하며, 이런 식의 피의 강조는 육체로부터의 피의 분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평한다. (Caroline Walker Bynum, 2007, op. cit., 속표지)

우혜란 박사(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woohair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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