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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세우신 교회, 사랑과 믿음의 교제로 선을 행하는 공동체(사 24:1-13; 몬 1:4-7; 마 19:16-26)성령강림 후 여덟째 주일(7월31일) 성령강림 후 여덟째 주일(7월31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07.28 22:22

1.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지난주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영생에 관해서 배웠습니다. 영생은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영생은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며 두 번째는 지금 이 순간, 영생의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영생으로 가는 길에 관해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은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영생을 얻는 방법에 관해 질문합니다. 그러나 계명을 잘 지킨 이 청년은 탐욕과 소유욕 때문에 예수님을 떠납니다. 이 청년과 달리,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빌레몬을 통하여 사랑과 믿음이 가득하여 선을 행함으로 하늘에 보화를 쌓은 인물을 소개합니다. 영생을 얻은 것이죠? 마지막으로 구약의 말씀은 부자 청년과 같이 탐욕과 소유욕으로 인해 멸망될 땅을 소개합니다. 최후의 심판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은 영생의 문으로 들어가기까지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는 믿음과 사랑의 교제로 선을 알고 행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마 19:16-20)

▲ 영생의 길을 묻는 부자 청년과 예수님

‘영생’의 방법에 관해 예수님은 ‘생명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야기 하며 계명을 지키라고 합니다. 청년은 계명을, 십계명을 모두 지켰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청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21-22)

여기서 ‘영생(ζωὴν αἰώνιον, 시작이나 끝이 없는 삶)’과 ‘생명에 들어가는 것(θέλεις εἰς τὴν ζωὴν’ εἰσελθεῖν, 삶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온전하고자 함(θέλεις τέλειος εἶναι, 목표를 이루기 위한 삶-의역)’은 모두 영생의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는 동일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시작이나 끝이 없는 영원한 삶’과 또한 ‘그것을 이루기 위한 현재의 삶’이죠? 예수님은 이것을 ‘천국(τὴν βασιλείαν τῶν οὐρανῶν)’과 ‘하나님 나라(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Θεοῦ)’라고 말씀합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영생으로 가는 길은 현재의 삶에서 계명을 다 지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를 때 가능하다고 합니다. 청년은 결국 재물이 많아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 19:23-26)

참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인가요? 이런 질문을 가진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삼성그룹의 고(故) 이병철 회장입니다. 이회장은 죽기 전, 서강대 석좌교수인 정의채 신부에게 ‘존재의 진리’에 관한 24가지 궁금증을 질문했습니다. 그 마지막 질문이 바로 오늘 마태복음의 이 부분입니다. 이병철 회장은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가 바늘 구명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라고 볼멘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까요? 이 질문에 관해 철학자 김용규 선생은 이렇게 답을 답니다.(1)

“영생을 얻고 싶어 예수를 찾아온 청년이 왜 근심하면서 맥없이 돌아갔는가? 그가 모든 계명을 다 지켜가며 영생을 갈구했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재물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신이 약속한 영생보다, 예수가 말하는 하늘의 보화보다, 땅 위의 재물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청년은 돌아가 다시 오지 않았다. 그런데 잠깐! 만일 당신이 청년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 크게 다르지 않게 행동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와 크게 다른 점이다.”

무슨 말인가요? 예수님은 무엇을 선택했고 어떻게 행동했으며, 또 오늘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행했다는 말인가요? 계속 김용규 선생의 말을 들어 볼까요?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받을 때, 예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천하만국과 그 영광’보다 ‘천국과 그 영광’을 선택했다(마 4:8-10). 그런데 예수와는 달리 재물에 대한 우리의 욕망은 상상을 초월한다. 부자 청년이 그랬듯이, 영생과 하늘의 보화에 대한 약속도 뛰어넘는다. 얼핏 당연한 것도 같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기도 하다. 우리는 왜 그토록 재물에 집착하는 것일까? 기독교에서는 그것이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답한다.”

부자 청년은 죄 때문에 영생과 하늘의 보화가 아닌, 세상 재물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김용규 선생은 여기서 그리스도교의 죄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그리스도교의 죄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존재의 무의미성과 무가치성에 놓여집니다. 이것은 죄의 ‘소극적 측면’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영혼은 이제 본격적으로 죄의 ‘적극적인 측면’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바로 ‘무한한 욕망’입니다. 청년은 이렇게 죄의 속성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떠났던 것입니다. 김용규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에게서 돌아섬’이라는 죄는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섬’ 또는 ‘세상을 향해 돌아섬’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갖는다. 신에게서 돌아서는 죄가 인간을 ‘자기중심주의’ ‘현세중심주의’에 빠지게 한다는 뜻이다. ‘존재에 대한 관심의 상실’은 동시에 ‘존재물에 대한 관심의 획득’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요컨대 영혼의 사망은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해 갖는 ‘무한한 욕망’으로 나타난다.”

‘존재에 관한 관심 상실’이 ‘존재물에 관한 관심 증가’로 바뀐다고 하죠? 이것을 어거스틴은 ‘탐욕(concupiscentia)이라고 불렀습니다. 첫 번째 콘큐피스켄치아는 넓은 의미로, 세상에 대한 인간의 탐심, 곧 현세적 욕망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콘큐피스켄치아는 좁은 의미로서 성욕입니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인간이 신에게서 돌아서면 성욕을 비롯한 온갖 현세적 욕망의 노예가 되어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적극적인 측면입니다.

문화 신학자 폴 틸리히는 콘큐피스켄치아를 프로이트의 ‘리비도(libido)’에 비할 만하다고 했습니다. 프로이트는 리비도를 “우리의 행동을 지시하는 원동력이자 충동으로, 본능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로 설명합니다. 이 본능적인 에너지는 생명의 충동인 ‘에로스(eros)’와 죽음의 충동인 ‘타나토스(tanatos)’로 나눠집니다. 물론 어거스틴과 틸리히 입장에서는 둘 다 죄의 적극적인 측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 역시, 이러한 콘큐피스켄치아에 관해 비판합니다. 호세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음행의 영이 저희를 미혹시켜 저희가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을 하느니라(호 4:12).”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들이 그들의 성욕이 일어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발정기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렘 2:24)” 결국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은 이 탐욕, 곧 (부자이기에) 현세적 욕망과 (젊은 청년이기에) 성욕을 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정리해 볼까요? 김용규 선생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자, 여기에서 이 회장의 질문에 답하자. 천국에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 들어간다. 죄인이란 신에게서 돌아섬으로써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한 무한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다. 반면에 의인은 다시 신에게로 향함으로써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향유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때문에, 어떤 사람이 부자이든 가난한 자든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한 무한한 욕망을 갖고 있다면 그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자들이 그것을 가졌다. 그래서 예수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라고 교훈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부자들이 모두 악인이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부자라고 해도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한 무한한 욕망, 곧 현세적 욕망을 버리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오늘 서신서 말씀은 부자인 빌레몬의 예를 소개합니다. 왜 빌레몬이 부자냐고요? 노예제 사회인 로마 시대에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다고 하니, 부자로 볼 수 있겠죠? 말씀을 볼까요?

2. 빌레몬이 쌓은 하늘의 보화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몬 1:4-7)

▲ 감옥에서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 바울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부탁하다

잘 아시다시피, 빌레몬서는 감옥에 갇힌 바울이 빌레몬에게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감옥에서 만나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오네시모를 용서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씁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죠? 도망자입니다. 도둑이며 가치 없는 노예였으나, 지금은 그리스도 안에서 빌레몬의 형제가 된 오네시모를 바울은 받아줄 것을 빌레몬에서 권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 말씀은 빌레몬을 향한 감사의 인사입니다. 빌레몬의 신앙과 인간 됨됨이에 바울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빌레몬은 사랑과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빌레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마음이 평안함을 얻었습니다. 바울 또한 빌레몬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서 말씀에 나오는 ‘하늘의 보화’입니다. 사랑을 베풀며 쌓는 하늘의 보화인 것입니다. 재물 많은 청년은 빌레몬처럼 하늘에 보화를 쌓지 못하고 땅에 보화를 쌓았습니다. 이것은 모두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영생으로 가는 길에 짐이 될 뿐입니다. 또한 이 길은 영생의 길이 아니라, 심판의 길입니다. 이것은 비록 개인뿐만이 아닙니다. 나라와 민족에도 해당이 됩니다. 구약의 말씀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말씀을 볼까요?

3. 땅이 공허하게 되고 황폐하게 되리라!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 백성과 제사장이 같을 것이며 종과 상전이 같을 것이며 여종과 여주인이 같을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같을 것이며 빌려주는 자와 빌리는 자가 같을 것이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같을 것이라.”(사 24:1-2)

이사야 13장부터 23장까지는 이스라엘 주변 12개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4장부터 27장까지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과 또 그 이후에 도래할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평화와 번영의 시대에 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24장 말씀은 여호와께서 땅을 벌하시는 말씀입니다. 땅을 공허하게 하고 황폐하게 하시며 주민을 흩어버리시겠다는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서 이 말씀을 한번 더 반복합니다. 확실히 심판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사 24:3-6)

이렇게 심판의 날에 세상 백성 중에서 높은 자가 쇠약해집니다. 부자 청년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심판의 이유는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 세 본문 말씀의 맥락에서는 사랑과 믿음의 교제로 선을 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이들이 탄식합니다. 기쁨이 그치고 울부짖음이 가득합니다.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 소고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 노래하면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라. 약탈을 당한 성읍이 허물어지고 집마다 닫혀서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도다. 성읍이 황무하고 성문이 파괴되었느니라.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사 24:7-13)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이사야는 경고합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가 사랑과 믿음의 교제로 선을 행하지 못하면, 세상 민족과 나라들처럼 심판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그때는 즐거워하는 웃음소리가 끊어지고 노래와 수금 타는 소리가 사라질 것입니다. 모든 즐거움이 사라지고 땅의 기쁨이 소멸될 것입니다.

4. 심판의 날에 ‘윙맨’이신 예수님을 따라!

▲ 영화 <탑건: 매버릭> 포스터와 탑건들

최근 개봉된 영화 가운데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 매버릭>(2022)이 있습니다. 1986년에 <탑건>이 개봉되었으니, 36년 만에 2편이 나온 것입니다. 아무튼 1편에서 미국의 적(敵)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 인도양의 ‘어떤 가상’ 국가입니다. 냉전의 산물이죠? 그러나 2편에서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이란의 핵시설이 적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냉전의 시작을 예고합니다. 영화 자막에서는 이란의 핵시설을 그냥 ‘핵시설’로 번역했지만, 영화 속에서는 ‘Iranian nuclear facility(이란의 핵시설)’이라고 정확하게 이야기합니다.

아무튼 어떤 이들은 이 영화를 에스겔 38-39장과 요한계시록 29장 8절에 나오는 마곡 땅의 왕인 곡과의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아마겟돈 전쟁의 시작을 영화가 미리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아마도 러시아가 이란과 결합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이스라엘을 쳐들어가거나, 혹은 중국과 동맹하여 유럽 연합(EU)과 미국과 싸우게 되면 에스겔과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맞아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 번역가는 한국과 이란의 관계를 알고, 저 페르시아의 후손인 이란을 배려하여 번역에서 ‘이란의 핵시설’을 빼고, 그냥 ‘핵시설’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핵무기는 미국이 가장 많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의 시작은 아마도 미국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튼 이러한 마지막 종말의 때에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왕 영화 <탑건>에 관해 말씀드렸으니, 조금 더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요? 영화를 깊이 읽어보면, <탑건> 1, 2편의 핵심 주제는 모두 ‘윙맨(wingman)’입니다. 윙맨은 전투기 편대 비행시, 오른쪽에서 호위하는 전투기를 뜻합니다. 왼쪽에서 호위하는 전투기는 행맨이라고 부르죠? 뒤쪽은 백맨이라고 부릅니다. 윙맨은 전투기 편대에서 반드시 필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될 수 없고, 아무나 시킬 수 없는게 윙맨입니다. 나의 목숨을 지켜줄 사람이기 때문에 믿을 만한 사람이여야 하고,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1편은 아이스맨(발 킬머 분)의 윙맨인 매버릭(톰 크루즈 분), <탑건: 매버릭>은 매버릭의 윙맨 루스터(마일스 텔러 분)를 소개합니다. 따라서 <탑건> 1, 2를 기독교식으로 읽으면, “예수는 나의 윙맨!”이 되는 것입니다. 〔화엄불교로 읽으면, “인드라망에서 서로 서로가 윙맨!”, 유교 오륜(五倫)으로 읽으면, “붕우유신(朋友有信), 장유유서(長幼有序)로서 윙맨!”, 철학으로 읽으면 이성(1편 아이스맨, 2편 매버릭)과 본능(1편 매버릭, 2편 루스터)의 조화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마지막 심판의 때에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는 사랑과 믿음의 교제로 서로가 서로에게 윙맨이 되어 선을 행하는 공동체입니다. 부자 청년처럼 계명을 잘 지켰지만, 탐욕과 소유욕 때문에 예수님을 떠나거나,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불의한 땅의 민족과 나라가 아닙니다. 빌레몬처럼 사랑과 믿음이 가득하여 선을 행함으로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생의 길은, 가장 먼저 십자가로 우리의 ‘윙맨’이 되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가 서로에게 윙맨이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미주

(1) 김용규,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駱駝)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주간조선』 2232호 참조.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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