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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성공이라는 더 큰 욕심믿음의 실상과 허상
허호익 교수(전 대전신대) | 승인 2022.07.31 15:24
▲ 호주 멜번의 City Life 교회 ⓒhttp://www.dko.com.au

중학교 물상(물리) 시간에 볼록렌즈와 오목 렌즈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실상과 허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상 선생님이 볼록 렌즈는 초점 안에 있는 사물은 허상으로 보이게 하고, 초점 밖에 있는 사물은 실상으로 보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절 놀렸습니다. 그때는 일제 잔재가 아직 남아 있어서 김 씨를 김 상, 이 씨를 이 상 하던 때였기에 허가(許家)인 저보고 허 상이라고 놀렸습니다. 반에서는 저 혼자만 허가였던가 봅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 세상에는 허상과 실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성씨가 허상이지만 실상을 좇아서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 11:01)이라는 성경 말씀을 들은 후, ‘그렇다면 믿음에도 실상과 허상이 있을 것이니, 믿음의 허상은 쫓지 말아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일평생 열심히 목회의 길로 달려왔는데, 결국은 허상을 좇은 꼴이 된 목회자도 적지 않습니다. 인물도 좋으시고 키도 크시고 열정과 신념도 넘쳐서 목회도 잘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새로 건축한 7-8층의 그 교회를 방문하고 대단한 목사님이라고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교회가 무리하게 건축을 하고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해 은행에 경매 처분을 받게 되었고, 결국은 이단이 이 교회를 인수하고 말았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10년 전 통계인데, 한국교회가 건축을 위해 은행 대출을 받은 총액이 4조 5천만 원이고 매년 2000억의 이자를 상환하고 있다는 신문보도를 보았습니다. 거룩한 헌금 2000억 원 은행 이자로 고스란히 넘어가는 것이지요.

대출은행과 설계업자와 시공업자가 컨소시엄을 만들어 건축이 필요로 하는 교회를 섭외하여 책임지고 은행대출하고 설계하고 시공해 준다고 “목사님들은 기도만하세요”라고 부추기고 그래서 무리하게 교회를 지어 고생하는 목사들과 교회가 많았습니다.

이자를 갚지 못해 경매 처분된 교회들이 서울·경기 지역에만 30여개가 넘는데, 그 대부분이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단이 인수하여 십자가를 떼고 하나님의 교회 간판을 달고 교회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그 교회들의 전후 사진을 모두 게재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김성동 작가의 <만다라>라는 소설에는 세상 욕심을 버리고 도를 깨달아 해달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출가한 두 승려를 모습을 그려져 있습니다. 한 분은 온갖 계율을 지극정성 지키는 고행을 마다하지 않고, 다른 분은 떠돌아다니며 세상사를 다 접해 봅니다. 기억나는 내용은 계율을 열심히 지키는 승려가 떠돌이 승려의 파계를 비난하자 이렇게 반문합니다. “세상 욕심을 다 버리고 출가했으나, 해탈이라는 더 큰 욕심에 사로잡혀서는 절대로 해탈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보면 목회자들 중에서 세상 욕심과 세상 풍조 다 버리고 오직 주님만 따르겠다고 목회에 나선 이들 중에는 ‘목회 성공이라는 더 큰 욕심’에 사로잡혀 경쟁적으로 교회 건축에 열을 올리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목회를 잘하기 위해서 교회를 크게 건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최우선 과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를 크게 짓기만 하면 교인들이 많이 몰려 올 것이고, 그렇다면 부채도 아무리 많아도 이를 갚을 수 있다는 허상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가 생각이 됩니다.

오래전에 저희 아파트에 하나님의 교회 청년이 전도지를 전해 주고 갔습니다. 열심히 전도하는 모습이 측은하여 보였습니다. 이 청년의 열심을 보면서 투우 생각이 났습니다. 투우 경기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지요. 그런데 투우를 볼 때 마다 소들이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합니다. 붉은 보자기를 비록 현란하지만 그것이 허상인지 모르고 그것을 향해 목숨을 걸고 질주하다가 지치고 투우사의 창에 무수히 찔려 죽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 놀라운 모습 중에 하나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제사장들이나 율법학자나 사두개파를 심하게 비판하고, 종교적 열심히 남다른 서기관과 바리새파에 대해서는 “화 있을 진저”라며 저주와 분노를 퍼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책망한 것이 그들이 믿음의 허상을 좇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믿음의 열심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도 아주 대단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할수록 하나님의 뜻과는 더욱더 멀어지는 비극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곳에서 신앙의 허상과 실상이 있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7장 21절 이하에서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우리가 일평생 주님을 좇느라고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것이 허상이어서 우리 주님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 한다’고 하신다면 얼마나 끔직한 일이겠습니까?

허호익 교수(전 대전신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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