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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주의하라하늘에 쌓은 보물(마태복음 6:19-21)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7.31 15:21
▲ 재물에 눈이 멀어 이웃에게 고통을 안겨 줄 때는 없는지 항상 주의해야 한다. ⓒGetty Image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

성령강림 후 여덟째 주일입니다. 오늘 전해드릴 본문은 3년 전에 이미 전해드린 적이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이번 성서일과에 지정된 본문이기도 하고, 당시에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도 있기에 같은 본문이지만 조금은 다른 말씀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6장 21-24절의 말씀은 누가복음 12장 33절 이하에도 나타납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만이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 중 하나입니다. 다만 두 본문은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6장 19-34절은 오늘 본문으로 시작해서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이 순서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본문이 먼저 나오고 다음에 오늘 본문과 유사한 말씀이 나타납니다.

또 마태복음에서는 보물을 땅(게 γη)이 아닌 하늘(우라노스 ουρανος)에 쌓으라고 말하는 반면에 누가복음은 ‘낡아지지 않는 배낭(돈주머니, 발란티온 βαλλαντιον)’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이 하늘에 있는 어떤 곳간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면, 누가복음은 여행을 위한 가방, 돈주머니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두 본문 중에서 아마 누가복음의 말씀이 예수님께서 본래 하셨던 말씀에 가까울 것으로 보입니다. 두 복음서 모두 거기에는 좀 벌레(세스 σης)가 없다고 말하는데, 세스는 일반적으로 천을 갉아먹는 벌레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에서도 좀 벌레로 번역했습니다.

좀 벌레는 돈을 먹지도 못하고, 곡식보다는 포대를 먹습니다. 본래의 말씀이 곳간이 아닌 돈주머니였다면, 좀 벌레의 언급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곳간이 되었을 경우에 좀 벌레의 등장은 조금 이상합니다.

혹시나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우리나라 방역 기업인 세스코의 이름은 헬라어 세스와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혹시 세스코가 헬라어를 따왔는가 해서 찾아봤는데, 세스코의 전신인 전우제방을 영어로 바꾼 뒤에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라고 합니다.

각설하고, 좀 벌레의 언급이 이상해서인지, 마태복음은 뒤에 브로시스 아파닉세이(βρωσις αφανιζει)라는 말을 추가해 놓았는데, 브로시스는 일반적으로 ‘먹는 일’, ‘식사’를 의미합니다. 아파닉세이는 파괴한다는 말입니다. 이 둘이 합쳐져서 ‘먹어 없앤다’는 말이 됩니다. 보통 오늘 본문에서 사용된 브로시스를 ‘부식’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에서는 구리에 끼는 녹을 의미하는 동록으로 번역해놓았습니다.

또 누가복음의 경우 ‘도둑이 가까이 오지 못한다’라는 표현으로 배낭을 노리는 도둑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 반면에, 마태복음은 ‘도둑이 뚫고(디오뤼스소 διορυσσω) 훔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도둑이 뚫고 들어온다는 표현은 누가복음 12장 39절에 나타나는데, 이 본문의 말씀은 혼인집의 종 된 사람들은 주인이 올 때까지 깨어 준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도둑이 어느 때에 집을 뚫고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간혹 마태복음 6장 20절의 본문이 누가복음 12장 33절과 39절을 합쳐놓은 형태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누가복음 12장 39절은 마태복음 24장 43절에 거의 유사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누가복음 12장 39절의 본문을 따왔다기보다 곳간의 이미지로 변형시키는 가운데 단어를 추가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본래 전하신 말씀은 아마도 여행 또는 순례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언제 구멍이 뚫릴지 모르는 배낭, 도둑이 언제 훔쳐 갈지 모르는 배낭이 아닌 ‘없어지지 않을 배낭’을 하늘에 만들라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님의 본래 명령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말씀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제자들을 향한 말씀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이 각 마을을 두루 다니는 중에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재물을 남겨두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더 확대해서 보자면, 앞선 ‘염려하지 말라’는 본문과 연결해 보았을 때, 내일을 염려하며 주머니를 채워두려고 하지 말고, 남은 음식, 남은 돈은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나누라는 말씀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출애굽 시기 하나님께서 딱 하루치의 만나만을 허락하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식량과 재물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의미

오늘 본문이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해야 하늘에 보물이 쌓인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예전에 말씀드렸습니다. 누가복음이 전하는 말씀이 예수님의 본래 말씀에 더 가깝다면,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의도 그대로를 자신의 복음서에 반영하고 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구제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듯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꼭 구제라고 단정 지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출애굽 시기의 만나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소유를 금지하신 말씀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경우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변형시켜 놓았습니다. 말씀의 배치 순서가 바뀐 것도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24절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삽입해 놓습니다. 이 말씀은 누가복음 16장 13절에 나타나는데,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 마지막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인 점은 분명하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어떤 복음서에 놓인 위치가 맞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두 복음서 모두 단편적인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위치에 배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복음이 자신의 소유를 챙기려하지 말고 남을 위해 사용하라는 데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마태복음은 재물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라는 교훈을 전합니다. 두 복음서 모두 재물을 중요하게 여기지 말라는 점에서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누가복음은 구제를, 마태복음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오늘 본문 뒤에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배치해두었고, 33절에 나타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말씀에는 누가복음과 다르게 ‘그의 의’를 추가해 놓았습니다.

마태복음이 이야기하는 ‘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지난번 같은 본문으로 말씀을 전할 때 설명드렸습니다. 마태복음 6장을 보면, 외식하는 자들과 다르게 의를 행하라는 말씀이 나타납니다. 이때 언급된 내용이 ‘구제’, ‘기도’, ‘금식’이었습니다. 또한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이 ‘은밀하게 행하라’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은 우리에게 재물을 바라보며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사람에게 드러내는 신앙이 아닌 하나님께 드러내는 신앙생활입니다.

재물과 하나님

성경은 분명 재물을 쫓는 일을 경계하고 하나님만을 쫓으라고 말합니다. 이 둘을 함께 쫓는 일은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마태복음은 약간의 사유 재산은 허용하고 있는 듯하지만, 누가복음은 거의 모든 재산을 구제에 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도 이런 말씀이 얼마나 통용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사도행전이 이야기하는 초대교회는 자신의 재산을 다 바친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재산을 감추는 이들도 존재했을 것입니다.

또 누가복음-사도행전을 제외한 나머지 복음서와 서신들은 어느 정도 사유 재산을 허용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정도로 강하게 재산 소유 금지를 말씀하셨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오히려 교회가 앞장서서 재물을 모았던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을 잘 섬기면 재물을 모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타락했다고, 회개해야만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재물의 문제는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습니다.

과거에도 이러했는데,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는 재물과 하나님을 완전히 구분하여 재물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는 말씀은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완화해서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은 채워주신다고 말할 순 있겠지만, 일용할 양식 이상을 추구하는 지금 사회에서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의 귀에 전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 이상을 추구하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의식주 문제를 놓고 본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주거지 문제일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대출로 집을 사거나 전세로 들어가 있습니다. 어쩌면 먹는 문제보다도 집 대출금 갚는 문제가 더 시급한 문제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식으로건 재물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재물에서는 완전히 눈을 돌리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시라는 말씀을 드리진 못하겠습니다.

다만 조금 다른 방식의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재물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더욱 처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노예가 존재하던 시기이기 때문에 가지지 못한 이들은 결국 자신의 몸을 팔 수밖에 없는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는 일용할 양식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전했고, 가진 이들에게는 그런 사람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멈추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전해질 수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 자신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무엇인가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던, 지금도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보게 되시길 바랍니다.

또 오직 돈의 논리만으로 따져서 남의 손해를 헤아리지 않고 내 이익만 추구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내 행동 하나가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돈 때문에 벌어지는 악한 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돈 앞에서는 가족도 없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재물을 외면한 초연한 삶을 추구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모든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누군가로부터 빼앗으며 자신이 살아가려 하지 않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추구하며 이루어가는 일이 지금 시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상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세상이고, 지금 시대에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제자의 삶일 것입니다. 이런 세상,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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